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시작되며 전력 수요가 크게 오르고 있다. 이번 주중 공급 예비력이 4000메가와트(㎿)까지 떨어질 것이란 정부 전망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10년 전 ‘9·15 정전 사태’가 소환되고 있다. 그러나 그때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지점이 있다.
9·15 정전의 아찔한 기억
9·15 정전은 2011년 9월15일 오후 전력 예비력이 4000㎿ 이하로 떨어지자 전력 당국이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을 막기 위한 사전 조처로 전국에서 지역별 순환 단전을 실시해 발생한 정전을 말한다.
당시 순환 단전은 지역별로 오후 3시께부터 30분 단위로 5시간 가까이 시행돼 전국 곳곳에서 엘리베이터에 승객이 갇히고, 생산 시설이 멈추거나 일부 금융기관 지점에서 업무가 중단되는 등의 피해가 잇따랐다. 야구 경기장의 조명이 꺼져 경기가 중단되고, 30여개 대학에서는 수시모집 원서 처리가 안 돼 접수 마감일을 하루 연장하기도 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도로의 신호등까지 꺼져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순환 단전은 전력 당국이 때늦은 무더위로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을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에 따라 긴급방송 등 예고 조차 없이 급박하게 시행해 더욱 혼란을 키웠다.
한국전력거래소가 공개하는 전력정보를 보면 19일 오전 11시20분 전력 수요는 8만1671㎿로 지난주 같은 시점에 기록된 수요 7만8247㎿보다 3424㎿ 늘어났다. 이런 상태로 폭염이 이어진다면 이번 주 최저 전력 예비력이 4000㎿까지 떨어질 것이란 산업통상자원부 전망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산업부는 지난달 말 발표한 ‘여름철 전력 수급 전망 및 대책’에서 이번 주 전력공급 능력이 최대 9만7200㎿인 상황에서 전력수요는 최대 9만3200㎿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산업부가 전망한 이번 주 최저 전력 예비력 4000㎿는 10년 전 9월15일 전력당국이 지역별 순환 단전 조치에 막 들어갈 때의 예비력과 같다. 당시 전력공급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는 “일부 발전소 가동을 중단하고 정비에 돌입한 상황에서 이례적인 전력 소비 급증으로 예비전력이 4000㎿ 미만으로 떨어져 전국 순환 단전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전력거래소는 이날 오후 3시부터 예비전력이 4000㎿ 미만으로 떨어지자 1차 조치로 자율 절전과 직접부하 제어를 시행했으나, 이후에도 전력 수요가 급증하며 예비전력이 계속 4000㎿를 밑돌자 순환 단전 조처에 들어갔다.
예비전력량은 10년 전과 같지만…수요반응 제도 도입 후 추가 전력 공급 가능
하지만 10년 전 전력 예비력이 4000㎿에 도달한 상황과 이번 여름 예비력 4000㎿에 도달할 경우의 상황에는 큰 차이가 있다. 10년 전에는 없었던 수요반응(DR) 자원을 통해 전력 공급을 늘리는 효과를 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014년 국내에 도입된 수요반응 자원 제도는 전기 사용자가 전기 수요를 줄인 것을 전기를 발전한 것과 동등하게 보상해주는 제도다.
수요반응 자원은 수요관리 사업자가 전력 소비를 감축할 의사가 있는 기업들을 모집해 공급하게 된다. 강제성을 띤 것이 아니라 전력 소비를 줄인만큼 보상을 받으려는 기업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지는 형태다. 수요관리 사업자가 평소 전력거래소의 입찰에 참여해 제공하는 ‘자발적 수요반응’과 전력거래소가 수요관리 사업자에게 요청해 제공받는 ‘신뢰성 수요반응’ 자원 형태가 있다. 둘 다 기본적으로 수익을 목적으로 사전에 자발적으로 등록된 자원을 대상으로 한다. 이때문에 수요반응 자원 동원은 전력 당국이 전력수급 조절에 실패해 기업들에 피해를 주는 것과 구분된다.
산업부 집계를 보면, 지난해의 경우 4638개사가 4280㎿를 수요반응 자원으로 등록해 여름철 전력수급대책기간(7월6일~9월18일) 하루 평균 900㎿·최대 2700㎿의 전력을 공급하는 효과를 냈다. 올해 수요반응 자원 등록 기업과 규모는 5154개사·4650㎿로 늘었다. 이 전력량은 원전 4기의 발전량에 해당한다. 수요반응 자원 대부분은 평상시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전력거래소가 비상 상황을 대비해 남겨두기 때문이다. 수요반응 자원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신뢰성 자원’은 공급 예비력이 5500㎿ 밑으로 내려가 전력수급경보 발령이 예상될 때 동원된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올 여름 들어 현재까지는 신뢰성 수요반응 자원은 동원되지 않고 자발적 수요반응 자원 형태로 매일 통상 100㎿ 정도만 활용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전력이 부족할 경우 신뢰성 수요반응 자원까지 동원하면 등록된 자원량의 70~ 80% 가량 공급을 늘리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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