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통운’은 항상 친절을 생각하며 영업한다. 〈한겨레신문〉처럼 이웃과 함께하며 성실히 일하는 우리의 이웃들이다.
[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95년 5월 15일 한겨레신문 39면
이학주(35)씨는 지난 90년 인천시 서구 석남동에 속셈웅변학원을 열면서 이름을 뭘로 할까 고민하다 '한겨레'란 이름을 붙였다.
"7살 난 아들 이름도 한겨레로 지었습니다. 한겨레신문처럼 통일을 위해 큰일을 하라는 뜻에서죠."
88년 5월15일 <한겨레신문>이 창간된 뒤 '한겨레'란 상호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해졌다.
이 상호를 쓰는 '사업주'들은 대개 이학주씨처럼 한겨레신문에 대한 애정뿐만 아니라 통일과 민주화에 대한 열정을 상호에 담아냈다.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한겨레약국' 주인 최은경(32·여)씨는 손님들에게 약을파는 것 외에 한겨레신문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받아줘야 하는 등 이름값을 톡톡히 치른다. 심지어는 배달이 잘 안 된다고 최씨에게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하는 손님도 있다. 최씨는 한겨레신문에 대해 "속이 시원하다" "읽기 편하다" "역시 한겨레다"라는 칭찬을 들을 때면 절로 으쓱해진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한겨레공인노무사'.
이 사무실을 운영하는 차인철(46)씨는 지난 90년 외국인노동자 문제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하자 이들을 돕기 위해 당시 운영하던 농장을 처분하고 노무사의 길로 들어섰다.지난해 2월 사무실을 새로 차리면서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할 수 있는 이름을 찾다 보니 '한겨레'가 생각났다고 차씨는 말했다.
차씨는 "사실 외국인노동자들의 처지가 너무 어려운 실정이라 착수금 없이 상담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그는 "약자를 옹호하는 유일한 신문 한겨레를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과거 민주화운동에 몸담았던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자신의 사업장에 자연스레 '한겨레'라는 이름을 붙인 경우도 많다.
지난 85년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삼민투 위원장을 지낸 허인회(31)씨는 92년 컴퓨터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주)한겨레전자유통(93년)과 한겨레PC지원센터(94년)를 잇달아 설립했다.
허씨는 '한겨레'라는 상호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중소기업으로 자본을 모아 민족자본 운동을 벌여나가고 싶은데 '한겨레'가 이런 목표에 딱 들어맞는 이름"이라고 말했다.
인천시 부평구 부평4동 '한겨레문고' 사장 정화영(48)씨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된 '전력'을 갖고 있다. 89년 2월 부평역 지하상가에서 조그마한 '한겨레서점'으로 사업에 발을 내디뎠는데, 사업이 계속 번창해 1년 만인 90년 3월 현 위치에 지하 1층 지상 2층 연건평 3백평 규모의 서점을 차릴 수 있었다. 지난해 2월에는 남동구 만수동에 지점까지 설립해 현재 인천지역 서점 가운데선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정씨는 이런 고속성장에 대해 "한겨레라는 이름이 내게 복을 가져다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시 동구 산수동 '한겨레부동산' 주인 김영복(41)씨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상무대 영창에 33일 동안 구금됐던 쓰라린 기억이 '한겨레'라는 이름을 고집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 밖에도 전국 곳곳엔 '한겨레'란 이름으로 한겨레신문이 지향하는 바를 항상 되새기며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한겨레신문 창간 직후 전북 전주시 덕진구 인후2동에 '한겨레사진관'을 연 김천웅(38)씨는 최근 부인이 설립한 현상소 이름도 '한겨레'로 붙여, 한겨레 쌍둥이를 가졌다는 우스갯소리를 자주 듣는다.
또 수원시 권선구 고등동 '한겨레서점'(주인 조수훈), 광주시 북구 우산동 '한겨레금방'(주인 채일섭·37), 경기 용인군 기흥읍 고매리 '한겨레탁자'(대표 이규정·57), 서울 은평구 대조동 '한겨레통운'(대표 유인혁·45) 등이 '한겨레'의 의미를 소중히 되새기고 있다.
민주주의와 민족통일, 민중생존권의 보장을 지향하는 <한겨레신문>처럼, '한겨레 정신'을 지닌 한겨레 가족들이 이땅 구석구석에서 작은 빛을 내고 있는 것이다.
민권사회1·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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