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2010년 한겨레는 ‘범죄 수사 및 재판 취재보도 시행 세칙’을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부각된 범죄수사 보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논의하여 세부 지침을 만든 것입니다. 아래에 세칙 전문을 공개합니다. _한겨레 아카이브팀
한겨레가 만든 범죄수사 보도 시행세칙에는 기사에 피의자의 혐의가 사실로 확정된 것처럼 표현하는 문장을 쓰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 사진은 2017년 8월 검찰이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사무실에서 압수수색을 벌이는 모습. 김성광 기자
2. 균형 보도 1) 범죄사건의 보도에서 수사 및 재판을 받는 이의 견해는 충실히 반영돼야 한다. 당사자의 견해를 직접 들을 수 없을 때는 변호인이나 가족, 지인, 동종 직업 종사자 등 관련 사안을 알 만한 사람에게서 견해를 들을 수 있다. 급박한 보도가 필요한 상황에서도 피의자(혐의자, 피고인) 쪽의 견해를 듣고 보도에 반영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을 했음에도 견해를 들을 수 없었을 때는 그런 노력을 했다는 사실이 보도에 반영되어야 한다. 피의자 쪽의 견해는 후속 보도를 통해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특히 범죄사건에서 수사기관이나 일반인이 의혹을 품고 있는 중요하고 핵심적인 사항에 대한 피의자(혐의자, 피고인) 쪽의 견해는 반드시 보도에 반영해야 한다. 당사자가 견해를 밝히지 않는 경우, 밝히지 않았다고 보도한다. 2) 피의자가 받고 있는 범죄 혐의와 직접 관련이 없으면서도 당사자의 신뢰를 해칠 수 있는 수사기관의 일방적 진술에만 의존하는 보도는 하지 않는다. 수사기관이 전한 피의자(혐의자, 피고인)의 말과 태도를 보도할 때는 그런 수사기관의 전언이 피의자(혐의자, 피고인)의 권리와 이익을 침해하거나 이에 어긋나는 게 아닌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3) 일반인의 건전한 상식에 비춰, 수사나 재판을 받는 사람의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거나 거짓임이 분명한 때, 자신의 권리를 지키는 것 외에 다른 이익을 얻거나 다른 부당한 목적과 관련된 것임이 분명한 때는 이를 싣지 않을 수 있다.
3. 기사의 표현 1) 독자의 생각과 판단을 오도할 수 있는 감정적, 단정적, 과장된 표현은 배제한다. 2) 확정 판결이 있기 전까지, 범죄사건의 수사 및 재판에 관한 기사에서 피의자 또는 피고인 등이 받는 혐의 내용은 아직 확정된 게 아니라 수사기관이 밝힌 잠정적 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야 한다. 3) 기사의 맨 앞 문장은 피의자의 혐의가 사실로 확정된 것처럼 표현하지 않도록 한다. 혐의내용을 마치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보이게 하는 들머리(리드) 문장의 사용은 되도록 피한다. 4) 수사 및 재판을 받는 사람은 기소 이전에는 혐의자 또는 피의자, 기소 이후에는 피고인으로 표현한다. 다만, 피의자가 수사기관의 강압이 아닌 자신의 뜻에 따라 범죄사실을 자백하고 범죄를 인정할 만한 분명한 증거가 있거나, 인질 사건과 같이 범죄행위가 다수인에게 공개된 경우에는 관련 보도에서 범인이라는 뜻의 여러 표현을 쓸 수 있다. 이 경우에도 범인을 모욕하는 표현은 삼가야 한다.
4. 제목의 표현 1) 독자의 생각과 판단을 오도할 수 있는 감정적, 단정적 제목은 배제한다. '혐의' '의혹' 등의 말을 덧붙여 사실이 아닐 가능성을 남겨둔다. 2) 범죄 수사 및 재판 보도 기사에서는 제목에 되도록 수사, 기소, 재판 중이거나 판결로 확정된 사안이라는 점이 드러나게 표현한다. 경찰이나 검찰, 변호인 등 정보의 출처도 드러날 수 있게 한다. 수사기관이 발표한 혐의 내용도 수사기관이 그렇게 주장한다는 점을 나타내도록 한다. 3) 기사에 표현된 전문(傳聞) 내용은 이를 듣고 전해준 사람(취재원)의 말로 표현하도록 하거나 전언임을 알 수 있도록 표현한다.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비공식으로 얘기한 수사내용이나 의혹 제기, 법정 진술, 전언을 제목에 담을 때는 인용 부호를 다는 등 일방적 주장일 가능성이 있음을 분명히 한다. 다만, 피의자 쪽이 인정하면 인용부호를 달지 않을 수 있다. 4) 피의자와 변호인 쪽의 주장이 제목에도 반영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5. 출처 표기 1) 공개적 수사 브리핑은 브리핑하는 이의 신원을 분명히 밝힌다. 취재원이 익명을 요구할 경우에는 취재보도 준칙의 익명처리 원칙에 따른다. 2) 기사가 제시하는 혐의 내용 등 사실관계를 어디서 인용한 것인지도 최대한 자세하고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수사기관이 공개한 보도자료나 수사 브리핑을 인용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재판 과정에서도 피고인이나 증인의 진술인지, 법정에 제출된 수사기록인지를 밝혀야 한다.
6. 신원 공개 1)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의자(피고인, 혐의자)와 증인, 피해자, 그 가족의 이름과 상세한 거주지 등은 원칙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보도하지 않는다. 미성년자에 대해서는 그 신원이 드러나지 않도록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2) 고위 공직자 또는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 의혹의 대상이 되거나 수사 대상이 된 경우에는 그 실명 또는 얼굴 사진 등을 공개할 수 있다. 사회적 관심이 큰 범죄 사건의 경우에는 공인이 아니더라도 예외적으로 그 이름을 공개할 수 있다. 범인의 체포와 추가 피해의 예방 등 수사상 필요할 경우 등 공개의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판단될 때는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할 수 있다. 의혹의 대상이 되거나 수사 밎 재판을 받는 피의자의 신원을 공개할 때에도 피의자한테 모욕감을 주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7. 선정적 보도의 자제 1) 범죄의 동기와 과정, 범죄의 성립에 관련돼 있지 않거나 독자들이 사건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지 않은 내용은 보도하지 않는다. 호기심 충족 말고는 달리 공개할 이유가 없는 범죄 관련자의 사생활은 보도하지 않는다. 2) 피의자(피고인, 혐의자)의 전과나 전력은 범죄의 동기와 배경 등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경우에만 보도한다. 전과나 전력에 대한 보도는 피의자(피고인, 혐의자)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3) 혐의 내용과 무관한 국적, 피부색, 지역, 종교, 성별, 학력, 정치적 성향 등을 밝힘으로써 사회적 편견을 강화하는 보도를 배제한다. 4) 범행의 수법과 과정을 상세하게 묘사하면 모방범죄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다만 범죄의 전모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경우, 인명 등 중대한 피해가 예상되는 진행중인 사건에서 범죄자 검거에 도움을 줄 수 있거나, 금융사기 등 범죄수법에 대한 정보가 추가적인 유사한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에는 그에 필요한 상세한 내용을 보도할 수 있다. 5) 피의자나 피고인의 사진을 보도할 때 오랏줄(포승)에 묶이거나 수갑을 찬 상태가 드러나 보이지 않도록 한다. 다만 그 모습 자체가 보도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8. 수사 절차의 보도 1) 출국금지, 압수수색, 체포, 구속 등 수사 절차에 대한 과잉 보도를 자제한다. 2) 범죄사건의 보도 및 취재, 논평에서 불구속 수사와 재판이 원칙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취재 보도와 편집, 논평을 맡고 있는 신문 구성원이 법률적 기준에 맞지 않게 자신의 선호나 사안의 성격에 따라 특정인의 체포 또는 구속을 촉구하는 등의 태도를 배척한다.
9. 오보 등의 바로잡음 1) 오보나 표현의 실수, 보도 내용과 표현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이 인정되면 당사자의 권익이 최대한 빨리 회복될 수 있도록 분명하고 충분하게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 오보는 사과문 게재도 고려해야 한다. 사실관계나 그에 대한 판단을 두고 의견이 맞서면 이해당사자의 반론권을 적극 보장한다. 2) 사회적 관심을 끈 범죄 사건이 무죄로 확정 판결이 나거나 검찰의 기소 내용 가운데 중요하거나 핵심적인 내용을 법원이 무죄로 인정하면, 독자들이 무죄 판결 이유와 구체적 내용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상세히 보도한다. 다만, 그런 보도가 피고인의 범죄 행위를 다시 상기시키는 등 피고인에게 추가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10. 무리한 속보 보도 지양 1) 취재기자와 데스크는 최선을 다해 취재한 사실을 근거로 보도하고, 무리한 속보 보도를 지양해야 한다. 2) 사회적 관심을 끄는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일 때 기사의 양과 지면 배치를 예단해서 무리하게 보도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11. 시행 이 시행 세칙은 2010년 1월 4일자로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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