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9월 23일, 서울 안국동 안국빌딩에서 새 신문 창간 발의자 총회가 열렸습니다. 새 신문 창간의 뜻을 처음으로 공식 선포한 자리입니다. 전현직 언론인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송건호 새 신문 창간위원회 위원장이 창간 발의문을 읽었습니다. 196명의 발의자 명단도 발표했습니다. 이들은 새 신문 창간을 위해 50만원씩 먼저 출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모은 1억 원의 돈은 창간 때까지 실무 자금으로 쓰였습니다. 아래에 새 신문 창간 발의 선언문 전문, 그리고 발의자 명단을 공개합니다. _한겨레 아카이브팀
1987년 9월 1일, 서울 안국동 사무실에서 창간 발의자 총회가 열렸다. 송건호(가운데)가 ‘새 신문 창간 발의’라고 붓글씨를 적은 뒤 웃는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는 오늘 마침내 새 신문의 창간을 발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언론의 자유를 초석으로 하는 참민주주의 실천을 눈앞에 둔 지금, 시대의 요청과 민중의 기다림에 응답하려는 것이며, 바르고 용기 있는 언론이 없음으로 하여 겪은 국민들의 고통과 분노의 세월을 종식시키는 것이며, 언론으로부터 쫓겨나고, 그러나 언론인임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치른 10여 년 인고(忍苦)의 시간 동안 우리들이 깨달은 언론의 정도(正道)를, 언론의 진실과 용기를 이 땅에 새로 구현하려는 뜻입니다. 또한 이는 시대의 어둠을 깨고 이 땅의 민중을 일으켜 자유와 평등을 실현케 하고, 세계를 숨 쉬게 하여, 나라의 주권과 민족의 자존을 지키게 하려던 1896년, 그 독립신문이 있은 이래 비뚤어진 민족 언론사의 정통성을 바로잡아 계승하려는 책임감과 긍지의 발로이기도 합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근대사 전체가 그러하듯, 한 세기가 채 못 되는 우리 언론사가 바로 수난의 역사이기도 하였지만 그중에서도 지난 20년의 기간은 독재권력에 의해 언론의 본질이 뿌리 봅히고, 언론 그 자체가 부정당하는 암흑의 과정이었습니다. 5·16 쿠데타 이래 권력의 언론 탄압 공작은 애초부터 집요하였지만 ‘유신’ 이후의 그것은 세계 언론사에 유래가 없는 혹독한 것이었습니다. 차츰 빈도를 더해가던 체포와 투옥의 긴급조치 시대는 1974년 10·24 자유언론선언, 동아일보의 광고 탄압, 1975년 3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 160여명의 해직·파면·투옥에 이어 급기야 1980년 저 광주사태의 현장보도 통제에 항거한다 하여 수십 명의 기자들이 가지가지 죄목으로 투옥되었고, 700여명의 기자들이 언론으로부터 추방되는 폭거로 결과 지어졌으며, 아직도 동료를 옥중에 남겨두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체험이며, 오늘의 언론 현실입니다. 통한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불행한 일은 추방된 해직 기자들이 감옥에서, 거리에서 그래도 끝내 언론인임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데 비해, 언론 그 자체는 그렇지 못한 사실입니다. 일간지에서 월간지에 이르기까지는 총 1000만 부를 자랑하는 발행부수와, 제각기 1000명이 넘는 종업원 수, 다투어 지어올린 현대식 고층사옥과 전자화된 최신 인쇄시설 등이 경탄할 만한 거대기업으로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언론은 한낱 배타적, 독점적 이권 집단일 뿐입니다. 일찌감치 권력에 투항해 기자들을 혹은 축출하고 혹은 매수하면서 권력체제의 일부로 편입되어 온갖 은폐와 왜곡, 선정적이고 상업적인 보도에 급급함으로써 주권자의 시야를 가리고, 비판의식을 마비시키며, 권력 지탱의 가장 중요한 구실을 해온 이들 언론기업들만큼 명백한 언론의 자기부정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제도 언론은 민중의 죽음으로써 쟁취한 민주화의 대세에 기민하게 편승하여 머잖아 언론 탄압의 희생자고, 자유 언론의 기수로 변신하면서 수난의 역사를 그들의 것으로 가로채 갈 것입니다.
이같은 악순환으로 해서, 불행하게도 우리는 ‘민주 사회에서의 신문다운 신문’을 접해본 적이 없는 반민주·반언론의 참담한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한글을 막 깨친 어린이로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동시대 국민 모두에게 한글로 된 정도(正道)의 언론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싶은 간절한 열망, 아니, 생전에 반드시 보여주어야 한다는 절절한 소망이야말로 우리들이 새 신문을 내려는 참뜻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이제까지 없었던 새로운 신문의 창간은 이리하여 역사의 필연적 요청에 부응하는 길이며 사회의 간절한 부름에 응답하는 길입니다. 이는 비록 폭력으로 유배당했다 하더라도 언론인으로서 우리들의 회피할 수 없는 역사에의 책임이며, 사회에서의 부끄러움을 씻는 빚 갚음입니다.
우리는 새 신문을 만들 것입니다. 진실과 용기 그리고 긍지를 바탕으로 새 신문은 그 어떤 세력의 간섭도 용납지 않을 것이며, 어떤 폭력에도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새 신문은 민주주의적 모든 가치들의 온전한 실현, 민중의 생존권 확보와 그 생활수준 향상, 분단의식의 극복과 민족통일의 지향을 주요 방향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 실천을 위하여 새 신문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은 물론 대자본으로부터의 독립, 광고주로부터의 독립을 확고히 할 제도적 장치 위에서 출범할 것입니다. 제도 언론에 책임 있는 인사들을 배제하고 경영, 편집진을 혁신적으로 구성할 것이며, 국민적 자본참여를 통해 경영권의 독과점을 불가능케 할 것이며, 편집·제작진의 경영 참여를 제도화하여 편집권의 독립을 실현케 할 것입니다. 선정주의를 가장 큰 금기로 삼아 민중의 눈으로 ‘보도할 가치가 있는 사실’만을 중점적으로 깊이 있게 보도할 것이며, 광고지면까지 정보화를 지향하여 광고의 가치기준을 수립해 나갈 것입니다. 동시에 편집진의 특권의식과 독단주의를 철저히 배격하고 고답적 엘리트주의를 경계하여 가장 쉬운 표현을 쓸 것이며 독자의 반론권을 최대한 보장할 것입니다.
우리는 새 신문이 그 엄숙한 사명으로 하여, 방대한 소요자금의 조달을 위하여, 민주적·민중적 정통성에 기반하기 위하여,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하여, 민주적 경영과 편집을 현현키 위하여 반드시 ‘주식의 공모’를 통한 전 국민적 참여로 창설될 수밖에 없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새 신문을 기다리는 국민적 여망을 이미 확인하였으며, 우리의 발의에 호응할 국민적 열의를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습니다. 우리들의 새 신문, 민중의 자유의 방패이자 민주주의의 보루가 될 새 신문을 찍는 우렁찬 윤전기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창간 발의자 명단(총 196명)
※ 가나다순. ( ) 안은 해직 당시 또는 재직 중인 언론사. 41명은 익명으로 참여
강운구(동아일보) 강정문(동아일보) 고승우(합동통신) 고준환(동아일보) 국흥주(동아일보) 권근술(동아일보) 권태선(한국일보) 김대곤(현대경제) 김대은(동아일보) 김동현(동아일보) 김두식(동아일보) 김명걸(동아일보) 김민남(동아일보) 김병익(동아일보) 김선주(조선일보) 김성균(동아일보) 김성원(현대경제) 김순경(동아일보) 김양래(동아일보) 김언호(동아일보) 김영용(조선일보) 김영진(동양통신) 김영환(동아일보) 김유원(조선일보) 김윤자(한국일보) 김인한(동아일보) 김재문(조선일보) 김종원(조선일보) 김종철(동아일보) 김주언(현 한국일보 기자) 김진홍(동아일보) 김창수(동아일보) 김태진(동아일보) 김태홍(합동통신) 김형배(조선일보) 노서경(한국일보) 노향기(한국일보) 문영희(동아일보) 문창석(조선일보) 박노성(동아일보) 박선애(조선투위의 고 마상원씨 부인) 박성득(경향신문) 박순철(동아일보) 박영규(합동통신) 박영배(신아일보) 박우정(경향신문) 박원근(합동통신) 박정삼(한국일보) 박준영(중앙일보) 박화강(전남매일) 배동순(동아일보) 백맹종(현대경제) 서재일(전남매일) 서창모(조선일보) 성유보(동아일보) 성한표(조선일보) 손정연(전남매일) 송건호(동아일보) 송관율(동아일보) 송재원(동아일보) 송준오(동아일보) 신동윤(영남일보) 신연숙(한국일보) 신영관(동아일보) 신태성(동아일보) 신현국(조선일보) 신홍범(조선일보) 심재택(동아일보) 심정섭(동아일보) 안민영(동아투위의 고 안종필씨 장남) 안상규(동아일보) 안성암(조선일보) 안정숙(한국일보) 양한수(동아일보) 오봉환(동아일보) 오성호(조선일보) 오정환(동아일보) 오흥진(동양방송) 왕길남(현대경제) 유영숙(동아일보) 유장흥(조선일보) 윤광선(국제신보) 윤석봉(동아일보) 윤성옥(동아일보) 윤활식(동아일보) 윤후상(합동통신) 이경일(경향신문) 이광우(국제신보) 이규만(동아일보) 이기한(현대경제) 이기홍(경향신문) 이대우(문화방송) 이동운(동아일보) 이명순(동아일보) 이문양(동아일보) 이병주(동아일보) 이병효(동양방송) 이부영(동아일보) 이상현(현대경제) 이시호(현대경제) 이영록(동아일보) 이영일(한국일보) 이원섭(조선일보) 이의범(조선일보) 이종대(동아일보) 이종덕(동아일보) 이종욱(동아일보) 이종욱(동아일보) 이지선(동아일보) 이창화(조선일보) 이태호(동아일보) 이태희(전남일보) 이해성(동아일보) 이흥재(중앙일보) 임부섭(동아일보) 임응숙(동아일보) 임재경(한국일보) 임채정(동아일보) 임학권(동아일보) 임희순(조선일보) 장윤환(동아일보) 전희천(중앙일보) 정교용(중앙일보) 정남기(합동통신) 정동익(동아일보) 정상모(문화방송) 정연수(중앙일보) 정연주(동아일보) 정영일(동아일보) 정재우(조선일보) 정태기(조선일보) 정흥렬(동아일보) 조강래(동아일보) 조성숙(동아일보) 조수은(국제신보) 조영호(동아일보) 조학래(동아일보) 최병선(조선일보) 최병진(조선일보) 최성민(한국방송) 최욱(한국일보) 최장학(조선일보) 최학래(동아일보) 최형민(중앙일보) 하봉룡(영남일보) 허육(동아일보) 현이섭(현대경제) 홍선주(동아일보) 홍수원(경향신문) 홍정선(동아투위의 고 조민기씨의 부인) 홍휘자(동아일보) 황명걸(동아일보) 황용복(동양방송) 황의방(동아일보) 황헌식(조선일보) 외 4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