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리너 10호의 수성 탐사 궤적 상상도. 위키미디어 코먼스
수성 탐사선 매리너10호의 중력도움 항법
지구에서 목성까지의 거리는 가장 짧을 때도 6억km에 이른다. 반면 태양에 가장 가까운 행성인 수성까지의 거리는 가장 짧을 때 7700만km이고 가장 멀 때는 2억2천만km다. 이렇게 수성이 목성보다 훨씬 지구에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첫 수성 탐사와 첫 목성 탐사 시기는 비슷하다. 처음으로 목성에 가까이 간 우주선인 파이오니어 10호는 1972년 3월3일 발사되어 1973년 12월4일 목성에 가장 가까이 간 반면, 최초의 수성 탐사선인 매리너 10호(Mariner 10)는 1973년 11월3일 발사되어 1974년 3월29일 수성에 가장 가까이 접근했다.
수성을 탐사하려면 수성을 향해 날아가야 한다. 그런데 지구의 공전속도를 덤으로 얻은 우주선의 빠른 속도가 이를 어렵게 만든다. 똑같이 방향을 바꾸더라도 우주선이 빠를수록 더 큰 속도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로켓 추진으로 지구 공전궤도 안쪽의 수성을 향해 가려고 해도 지구 공전방향으로 떠밀려 방향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 만들어진다. 배를 타고 노를 저어 물살이 빠른 강을 건널 때, 강가에 서 있는 사람이 보면 배는 빠른 물살에 떠밀려 강물의 흐름과 별 차이 없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비슷하다.
다행히 지구와 수성 사이에 있는 금성이 이 문제를 좀 더 쉽게 만든다. 금성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이고 공전궤도도 지구의 공전궤도에서 비교적 가까운 편이다. 금성을 향해가도록 방향을 바꾸는 것도 것도 상대적으로 쉽다. 매리너 10호가 발사되기 12년 전인 1961년에 이미 매리너 2호 (Mariner 2)가 금성에 3만5천km까지 접근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금성에 가까이 접근하면 우주선은 금성의 중력에 끌린다. 다가가는 방향과 거리가 적절하면 우주선은 금성의 중력으로 금성 주위를 감아돌고 빠져나오면서 방향을 수성을 향하게 할 수 있다. 이렇게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우주선의 방향을 바꾸는 것도 중력도움 항법이다.
매리너 10호(Mariner 10)는 발사한 지 약 3개월 뒤인 1974년 2월 5일 금성에 접근하는 중력도움 항법을 시행해 수성으로 향했다. 단순히 방향만 바꾼 것이 아니라 속도도 조절했다.[9] 그 결과로 태양 주위를 도는 공전궤도가 줄어들어, 매리너 10호는 금성궤도와 수성궤도를 걸치는 타원 모양의 궤도로 태양 주위를 176일에 한 바퀴씩 돌았다. 수성이 태양주위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인 88일의 두배다. 매리너 10호가 수성에 접근한 다음 176일만에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오면, 그 사이 수성은 태양을 두 바퀴 돌고 돌아와 매리너 10호와 다시 만나는 것을 반복할 수 있었다. 1975년 3월 24일 통신이 끊기기 전까지 매리너 10호는 세번에 걸쳐 수성에 가까이 접근해 탐사했고 그 결과를 지구로 송신했다. 이렇게 금성에 접근하는 중력도움 항법으로 수성에 주기적으로 접근하는 아이디어를 제시한 사람은 이탈리아 수학자이면서 엔지니어인 주세페 콜롬보(Giuseppe Colombo)였다.[10] 최근 발사된 수성탐사선 ‘베피콜롬보’가 바로 그의 애칭이다.
그림 5. 금성에 접근하는 중력도움 항법으로 수성을 향해 날아간 매리너 10호의 궤적. 금성을 근접비행한 후 매리너 10호는 태양주기를 176일에 한 번씩 돌면서 수성을 반복적으로 만났다. 중력도움 항법으로 방향과 속도를 조절한 매리너10호의 공전주기가 수성의 공전주기의 두배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1970년대 초에 주세페 콜롬보(Giuseppe Colombo)가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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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저 1호와 2호의 마지막 단계 중력도움 항법
1977년 9월 5일에 발사된 보이저 1호는 목성에 접근하는 중력도움 항법으로 속력을 높여, 지금은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보다 100배가 넘는 거리에서 더 멀어지고 있다. 속도는 아직도 초속 17km에 이른다. 그런데 보이저 1호가 토성에 접근해 마지막으로 시행한 중력도움 항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목성에 접근할 때와는 달리 보이저 1호는 토성의 아래쪽(남극)으로 접근했다. 토성의 중력에 이끌린 보이저 1호는 토성의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감아돌아 날아가면서 방향을 바꿨다. 중력도움 항법의 주목적이 방향을 바꾸는 것이었던 대표적인 경우다. 보이저 1호는 현재는 태양계 행성이 만드는 면과 약 35도의 각도를 이루면서 위쪽으로 멀어지고 있다. 현재 태양에서의 거리는 지구와 태양 사이 거리의 140배가 넘는다.
보이저 1호와 2호가 날아가는 방향. 태양계 행성들이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이는 쪽이 위쪽이라고 할 때 보이저 1호는 현재 위쪽 35도 각도로 날아가고 있고, 보이저 2호는 아래쪽 48도 각도로 날아가고 있다. (이미지 출처: NASA JPL) Planetary Voyage, Jet Propulsion Laboratory, https://voyager.jpl.nasa.gov/mission/science/planetary-voyage/
보이저 2호는 태양계 행성들이 만드는 면에 계속 머물면서 토성, 천왕성, 해왕성을 차례로 근접비행했다. 마지막 행성인 해왕성 근접비행 때는 해왕성의 중력을 이용해 태양계 아래쪽으로 방향을 바꿔, 현재 태양 아래방향 48도 각도로 날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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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를 줄이는 중력도움 항법
매리너 10호는 176일에 한 번씩 수성 가까이 지나치기는 했어도, 수성 근처에 계속 머물면서 관측할 수는 없었다. 가까이에서 지속적으로 수성을 관측하려면 수성 주위를 도는 수성의 인공위성이 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최초로 수성의 인공위성이 된 수성탐사선은 메신저(Messenger)호로 매리너 10호보다 무려 30여년이 지난 후인 2004년 8월3일 발사됐다. 메신저호가 실제 수성의 인공위성이 된 때는 발사후 6년 7개월이 지난 2011년 3월18일이었다.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린 이유는 여러 번의 중력도움 항법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수성과 태양 사이의 거리는 4600만km에서 7천만km까지 변화가 비교적 큰 편이다. 그 중간거리를 기준으로 잡으면 수성의 공전속도는 초속 47.8km정도다. 반면 지구 공전궤도에서 지구 공전속도인 초속 29.8km로 날아가는 우주선이 방향만 바꿔서 수성을 향한다고 하면, 이 우주선이 수성에 접근할 때의 속도는 초속 61km에 이른다.[11] 높은 곳에서 떨어뜨린 돌멩이가 지구중력으로 아래로 떨어지면서 속도가 커지듯이, 우주선도 태양의 중력으로 태양에 더 가까운 수성으로 떨어지면서 속도가 더 커진다. 줄어든 위치에너지만큼 운동에너지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수성의 공전속도와 비교하면 초속 13km이상 더 빠른데, 이 속도 차이는 수성의 인공위성이 되기에는 너무 크다.
수성은 태양계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행성이다. 태양계 행성들 중에 중력도 가장 작아서, 수성의 중력을 완전히 벗어나는 데 필요한 속도인 중력 탈출속도는 초속 4.2km에 불과하다. 탐사선이 수성보다 초속 4.2km만 빨라도 수성의 중력을 완전히 벗어나기 때문에 수성의 인공위성이 될 수 없다.[12] 이 속도마저도 수성에 매우 가깝게 접근하는 것을 가정하는 경우다. 실제 상황에서는 탐사선의 속도를 최대한 수성의 공전속도에 가깝게 줄여야 하고 수성에 접근하는 거리와 방향도 적절해야 수성의 중력에 갇혀 수성의 인공위성이 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중력도움 항법을 시행하면 로켓 추진체의 역추진을 최소화하면서 탐사선의 속도를 줄이고 방향도 바꿀 수 있다.
중력도움 항법으로 우주선의 속도를 줄이려면 우주선이 행성의 공전방향과 비슷하게 다가가고, 공전방향과 다르게 멀어져야 한다. 우주선 속도를 높이는 중력도움 항법과는 반대 방식이다. 이 경우도 태양의 중심 위치에서 보는 우주선의 속도도 행성의 중심 위치에서 본 우주선의 속도에 행성의 공전속도가 ‘벡터 더하기’ 방식으로 더해진다. 그 결과 <그림 6>에서와 같이 우주선의 속도는 행성에 다가갈 때보다 행성에서 멀어질 때 더 작다. 단순히 행성 가까이 지나치는 것만으로 우주선의 속도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최초의 수성탐사선인 매리너 10호도 금성에 접근하는 중력도움 항법으로 탐사선의 속도를 시속 37.0km에서 초속 32.3km까지 줄였다.
그림 6. 중력도움 항법으로 속도를 줄이는 전형적인 방법: (윗 그림) 우주선이 행성에 접근하는 방향은 행성이 공전하는 방향과 비슷하고, 우주선이 멀어지는 방향은 행성이 공전하는 방향과 달라야 한다. (아랫 그림) 행성 위치에서 본 우주선의 속도(왼쪽)는 다가갈 때나 멀어질 때나 같다. 반면 태양 위치에서 본 우주선의 속도(오른쪽)는 행성의 공전속도가 더해져서(벡터 더하기) 다가갈 때 더 크다. 두 경우 모두 행성에서의 거리가 같을 때의 속도를 비교했을 경우다.
그런데 금성에 접근하는 중력도움 항법을 한 번만 실행해서는 우주선의 궤도를 수성의 공전궤도와 비슷하게 줄일 수 없다. 한쪽에서는 수성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지만 태양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오면 금성의 궤도로 되돌아오는 타원 모양의 궤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수성의 공전궤도와 비슷하게 하려면 금성 쪽으로 멀어진 한 쪽의 궤도도 줄여야 한다. 이 경우에는 수성에 접근하는 중력도움 항법을 시행해 우주선의 속도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반복함에 따라 우주선의 궤도는 수성의 공전궤도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
메신저호는 지구에 한 번, 금성에 두 번, 그리고 수성에 세 번, 이렇게 총 여섯 번의 중력도움 항법을 시행했다. 중력도움 항법을 할 때마다 탐사선 방향은 조금씩 바뀌고 속도도 줄어들었다. 수성에 접근하는 세 번의 중력도움을 통해 탐사선의 궤도는 수성의 공전궤도와 거의 비슷하게 줄어들었다. 발사후 수성의 인공위성이 되기까지 총 7년 7개월 동안 메신저호는 중력도움 항법 사이에 추진체를 이용한 소폭 궤도수정도 여러번 시행했다. 중력도움 항법을 잘 할 수 있도록 궤도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2018년 10월20일 발사된 수성탐사선 ‘베피콜롬보’호도 메신저호와 유사한 중력도움 항법 과정을 시행할 예정이다.[13] ‘메신저’호의 7년 7개월보다는 약간 더 짧은 7년 1개월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베피콜롬보’가 시행할 중력도움 항법의 횟수는 총 아홉번이다. 구체적으로는 지구에 한 번, 금성에 두 번, 수성에 여섯 번 접근한다. 베피콜롬보호도 메신저호와 마찬가지로 중력도움 항법을 할 때마다 방향을 바꾸고 속도를 줄여서 탐사선 궤도를 수성의 공전궤도와 가깝게 줄여 나간다. 중력도움 항법 사이에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추진체로 이온 추진체(ion thruster)를 사용하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14] 베피콜롬보호는 수성의 인공위성이 됨과 동시에 탑재된 두개의 수성 궤도선이 분리되어 서로 다른 거리에서 수성 주위를 돌면서 탐사활동을 벌인다.[15]
태양탐사선 파커(Parker)호도 6년 동안 모두 일곱번에 걸쳐 금성에 근접하는 중력도움 항법을 시행한다.[16] 파커호는 행성의 인공위성이 아닌 태양 주위를 도는 ‘인공행성’이 된다. 반복되는 중력도움 항법을 통해 탐사선의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바꿔 태양에 다가가서, 태양에서 616만km 거리까지 접근하는 것이 목표다. 태양의 지름보다 4.4배 정도밖에 안되는 거리다. 금성을 이용하는 중력도움 항법만 시행하기 때문에 최종 궤도에 이르러서도 태양에서 가장 멀 때는 금성의 공전궤도에 이르는 타원 모양의 공전궤도를 돌게 된다.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88일로 계획되어 있다.
정리해 보면 중력도움은 로켓 추진 없이 우주선의 속도를 높이거나 줄이고 방향을 바꾸는 항법으로 우주탐사에 두루두루 쓰인다. 특히 우주선 속도 조절에는 행성의 중력뿐만 아니라 행성의 공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림 7>에서 볼 수 있듯이, 우주선의 속도를 높이려면 공전 방향과 다르게 행성에 접근하고 공전방향과 비슷하게 멀어져야 하고, 반대로 우주선의 속도를 줄이려면 공전 방향과 비슷하게 행성에 접근해서 공전 방향과 다르게 멀어져야 한다. 중력도움 항법을 여러번 시행하는 경우에는 목표한 천체까지 도달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추진체로 할 일의 대부분을 중력도움항법으로 대신 하는 만큼 발사체의 크기를 줄일 수 있고 로켓 연료도 절약할 수 있는 장점은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한국도 최근 자체 개발한 누리호 시험 발사체를 성공적으로 발사했고, 기상 및 우주 관측 위성인 천리안 2A호도 자체 개발해 성공적으로 적도 상공 3만6천km의 정지궤도에 성공적으로 올렸다. 앞으로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개발이 뒤따르면, 달뿐만 아니라 다른 행성이나 소행성 또는 혜성에 탐사선을 보낼 수 있으리라 본다. 자체 개발한 발사체로 우주 탐사선을 보내기 위해 중력도움 항법을 계획해 계산하고 실행하는 때도 곧 오길 기대해 본다.
그림 7. 중력도움 항법으로 우주선 속도를 높이거나, 줄이거나, 방향만 바꾸는 방법: 탐사선의 속도를 높이려면 행성의 공전방향과 다르게 접근해서 비슷하게 멀어져야 한다. 반대로 탐사선의 속도를 줄이려면 행성의 공전방향과 비슷하게 접근해서 다르게 멀어져야 한다.
*(상)편 보기
윤복원/미국 조지아공대 연구원(전산재료과학센터·물리학)
bwyoon@gmail.com
<주>
[9] Mariner Venus/Mercury 1973 Status Bulletin 1974년 2월 6일, Jet Propulsion Laboratory, http://ser.sese.asu.edu/M10/BULLETINS/bul-18.pdf
[10] Giuseppe 'Bepi' Colombo: Grandfather of the Fly-by, History of ESA in Space, ESA, https://www.esa.int/About_Us/Welcome_to_ESA/ESA_history/Giuseppe_Bepi_Colombo_Grandfather_of_the_fly-by
[11] 수성의 중력에 끌려 증가한 속도는 고려하지 않은 속도다.
[12] 우주선의 속도가 수성의 공전 속도보다 초속 4.2km 느려도 수성의 인공위성이 될 수 없다.
[13] BepiColombo Factsheet. European Space Agency. http://www.esa.int/Our_Activities/Space_Science/BepiColombo/BepiColombo_factsheet
[14] BepiColombo Electric Propulsion Thruster and High Power Electronics Coupling Test Performances, 33rd International Electric Propulsion Conference. 6?10 October 2013. Washington, D.C. IEPC-2013-133, S.D. Clark, et al. (2013).
[15] Mission Operations - Getting to Mercury, European Space Agency. http://sci.esa.int/bepicolombo/48871-getting-to-mercury/
[16] Parker Solar Probe, NASA, http://parkersolarprobe.jhuapl.edu/index.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