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우주정거장(ISS)의 전체 모습. 인데버 우주왕복선이 우주정거장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하기 전 2011년 5월29일에 찍은 사진. 출처: NASA
1960년대 말까지 유인 우주비행은 발사와 우주에서의 임무수행, 그리고 귀환까지 하나의 우주선으로 전 과정을 수행했다. 우주에서 우주인이 활동하는 모듈, 탑승한 우주인의 안전을 위한 장비, 대기권 진입 후의 고온을 견디는 귀환 모듈, 궤도 수정과 역추진을 위한 추진엔진 등 유인 우주비행에 필요한 장비의 질량이 이미 상당하다. 이 때문에 유인 우주비행에서 여러 임무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한 충분한 공간을 우주선 하나만으로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주정거장(space station)은 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
우주정거장은 우주인이 우주에서 각종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만든 공간으로, 별도의 발사체로 미리 우주에 실어날라 설치한다. 이후 발사하는 우주선은 우주인과 화물을 우주정거장으로 실어 나르는 목적으로 사용하고, 우주인은 우주정거장으로 이동해서 주요 활동을 수행한다. 설치는 무인 인공위성처럼, 사용은 유인 인공위성처럼 하는 셈이다. 오랫동안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정거장에는 우주선이 여러 번 방문할 수 있기 때문에, 우주정거장 하나로 다양한 우주 임무를 순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우주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충분히 공급하면, 수백일에 이르는 장기간 유인 우주체류도 가능하다.
미국에서 1962년에 구상했지만 만들어지지 않은 우주정거장 디자인. 출처: NASA
미국보다 먼저 우주정거장을 설치한 소련
유인 달탐사 경쟁에서 미국에 완벽하게 밀린 소련은 우주정거장 설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인류 최초의 우주정거장은 소련의 살류트 1호로, 미국이 아폴로 유인 달탐사에 집중하고 있던 시기였던 1971년 4월19일에 프로톤-K 로켓에 실려 지구 저궤도에 올려졌다. 살류트 1호의 총 질량은 18.425톤이고 최대 지름 4m, 길이 20m인 크기에 내부 공간의 부피는 99㎥였다.[1] 당시 소련의 주력 유인 우주선 소유즈에서 우주인이 활동하는 공간인 궤도 모듈(orbital module)의 크기가 긴 방향으로 2.6m, 짧은 방향으로 2.2m이고, 내부 생활 공간 부피가 4㎥인 것을 고려하면, 살류트 1호 우주정거장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2]
살류트 1호에는 소유즈 유인 우주선이 2차례 다녀갔다. 우주정거장이 발사된 지 3일 후에 발사된 소유즈 10호는 우주선을 우주정거장에 고정하는 소프트 도킹에는 성공했으나 완전한 도킹에는 성공하지 못해, 우주인이 살류트 1호로 이동하지 못했다. 1971년 6월6일에 발사된 소유즈 11호는 완전한 도킹까지 성공해 3명의 우주인이 살류트 1호로 이동했고, 23일 동안 머물면서 임무를 수행했다. 주요 임무의 하나는 살류트 1호에 설치된 오리온 1호 자외선 우주망원경을 이용한 관측이었다. 동양에서는 직녀성으로 알려진 거문고자리의 베가와 센타우루스자리의 ‘베타 센타우리’의 별빛을 200~380nm 파장의 자외선으로 측정했다.[3]
소유즈 11호는 6월30일 살류트 1호를 떠나 지구로 귀환했지만, 탑승한 우주인 전원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대기권에 진입하기 전에 귀환 모듈의 공기가 빠져나가서 우주인들이 질식해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4] 대기권 안에서가 아닌 우주에서 우주인이 사망한 유일한 기록이다. 귀환 모듈의 내부공간이 좁아서 3명의 우주인이 탑승해서 우주복을 착용하지 않았던 것도 사고를 피할 수 없었던 이유의 하나였다. 1973년 9월27일 발사된 소유즈 12호부터는 우주복을 착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우주선 탑승 인원을 3명에서 2명으로 줄였다. 탑승 인원이 다시 3명으로 늘어난 때는 1980년으로 새로 디자인된 소유즈 우주선을 사용하면서 부터이다. 175일 동안 우주에 머무른 살류트 1호는 1971년 10월11일 역추진으로 속도를 줄여 태평양 상공의 대기권에 진입해 파괴되었다.
소련의 살류트 우주정거장. 단일 모듈 우주정거장으로 살류트 1호부터 5호까지는 하나의 우주선만 도킹할 수 있었고, 살류트 6호와 7호는 동시에 2개의 우주선이 도킹할 수 있었다. 살류트 2호는 우주정거장으로 운용하는 데 실패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수명 다한 우주정거장은 어떻게 폐기할까?
상대적으로 크기가 큰 우주정거장의 경우 대기권 진입 후 대기의 공기저항만으로 모두 태우지 못할 수 있다. 타고 남은 잔해가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 떨어지면 인명과 재산 피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수명이 다한 우주정거장을 폐기할 때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에 추락시킬 필요가 있다. 추락 지점으로 주로 선택하는 곳은 ‘남태평양 무인지대(South Pacific Ocean Uninhabited Area)’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다.
우주정거장을 추락시키는 과정은 우주정거장이 200km 정도의 고도까지 내려올 때까지 기다린 후 역추진을 하면서 시작된다. 역추진으로 우주정거장의 속도를 줄이면, 지구를 반 바퀴 더 돌고난 후에 우주정거장의 위치는 지구에 가까워진다. 이 근지점(perigee)을 충분히 낮추면, 우주정거장은 지구 대기권에 진입한다. 역추진하는 위치로 우주정거장의 대기권 진입과 추락 위치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200km의 고도에서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려면 초속 35m 정도를 감속해야 한다. 200km 고도에서 우주정거장의 궤도 공전속도인 초속 7.8km의 200분의 1 정도다.
지구 주위를 돌던 유인 우주선이 지구로 귀환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유인 우주선은 보통 폐기 직전의 우주정거장보다 더 높은 고도의 궤도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귀환하기 때문에,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려면 더 많이 감속해야 한다. 400km의 고도에서 임무를 마친 우주선이 대기권에 재진입하려면 초속 90m 정도를 감속한다.
우주정거장을 폐기하는 과정. 우주정거장을 폐기하기로 결정하면 고도가 200km로 낮아질 떄까지 기다린다. 1차 역추진으로 감속해 반대쪽 지구 근지점을 지구에 더 가깝게 낮추고, 2차 역추진으로 더 감속해 근지점의 고도를 더 낮춰 우주정거장을 대기권에 진입시켜 파괴한다. 남은 잔해의 추락 지점은 사람이 사는 곳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남태평양 무인지대’다. 그림에서는 지구가 자전하는 것은 표현하지 않았고, 시각적으로 잘 보이도록 궤도의 고도를 과장했다.
살류트 1-5호와 6~7호의 차이
살류트 우주정거장은 1호부터 7호까지 모두 7개가 우주에 설치됐다. 모두 하나의 모듈로 만들어 한 번의 발사로 우주에 올린 단일 모듈 우주정거장이었다. 이 가운데 1973년 4월3일 발사된 살류트 2호 우주정거장은 고도 유지와 내부 압력 유지에 실패하면서 우주인이 방문하지 못했다. 1974년 6월25일 발사된 살류트 3호부터 1982년 4월19일 발사된 살류트 7호까지 성공적으로 설치되어 여러 우주인들이 방문했다.
살류트 5호까지는 우주선과 도킹하는 부분이 한 곳밖에 없었다. 귀환할 우주선 없이 우주정거장에 머물면 긴급 상황에 대비할 수 없기 때문에, 우주정거장에서의 임무를 마친 우주인들은 타고 온 우주선으로 모두 지구로 귀환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이런 상황은 우주선과 도킹할 수 있는 부분이 2개로 늘어난 살류트 6호부터 바뀌었다.
1977년 9월29일 발사된 살류트 6호를 처음 방문한 우주인은 소유즈 26호를 타고 온 우주인 2명이었다. 정확히 1달 후 소유즈 27호가 다른 우주인 2명을 태우고 살류트 6호에 도착했고, 이들이 짧은 우주 임무를 마치고 6일 후에 귀환할 때는 이미 도킹해 있던 이전 우주선인 소유즈 26호를 타고 귀환했다. 소유즈 26호를 타고 왔던 우주인들은 96일간 우주정거장에 머물다가 이듬해 3월16일 소유즈 27호를 타고 지구로 귀환했다. 소유즈 26호와 소유즈 27호 우주인들이 우주정거장에서 일종의 환승을 한 셈이다.[5]
스카이랩 우주정거장의 모습. 스카이랩 4호가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돌아오기 전에 찍은 사진. 출처: NASA
소련보다 늦었던 미국의 첫 우주정거장 ‘스카이랩’
아폴로 유인 달탐사의 달탐사 프로그램을 수행하면서 미국은 당시 가장 강력한 발사체였던 새턴 5형 로켓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폴로 프로그램 이후 새턴 5형 로켓의 다음 임무는 미국의 첫 우주정거장인 스카이랩(skylab) 발사였다. 새턴 5형 로켓의 상단부 3단을 ‘궤도 작업 모듈’(orbital workshop)로 개조한 스카이랩은 1973년 5월14일 발사됐다. 최대 지름 6.6m, 길이 25.1m였고, 내부 공간의 부피는 351.6㎥로 살류트 1호보다 3.5배 이상 컸고, 질량은 76.54톤으로 4배 이상 컸다.[6]
스카이랩에는 3명씩 3번에 걸쳐 총 9명이 방문했다. 1973년 5월25일 발사된 스카이랩 2호의 우주인은 28일간 스카이랩에 머물렀고, 1973년 7월28일 발사된 스카이랩 3호의 우주인은 59일, 1973년 11월16일 발사된 스카이랩 4호의 우주인은 84일간 스카이랩에 머물렀다. 스카이랩에는 ‘아폴로 망원경 마운트’(Apollo telescope mount)가 부착되어 발사된 후 우주에서 펼쳐졌다. 이 망원경은 가시광선과 자외선, 그리고 엑스선의 일부로 태양을 관측할 수 있는 망원경이다. 스카이랩으로 간 우주인이 직접 수동으로 작동했고, 관측 결과를 찍은 필름을 직접 지구로 가져와 분석했다.
다른 우주정거장과 마찬가지로 스카이랩의 고도도 조금씩 낮아졌다. 우주정거장이 위치한 고도에 남아 있는 아주 미량의 공기에 의한 공기저항 때문이다. 우주정거장의 고도가 계속 낮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로켓추진으로 우주정거장의 고도를 높이는 작업을 정기적으로 해야 한다. 우주인을 실어 나른 스카이랩 2, 3, 4호가 도킹한 후 로켓을 추진해 스카이랩의 고도를 높이는 작업을 수행했다. 우주왕복선(space shuttle)으로 스카이랩의 고도를 높이는 계획도 있었지만, 우주왕복선 투입이 지연되면서 스카이랩의 고도는 점점 낮아졌다.
스카이랩은 역추진을 위한 자체 로켓엔진이 장착되어 있지 않아서 지구 대기권 진입을 통제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1979년에 지구로 떨어질 당시 스카이랩이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이런 스카이랩의 추락은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추락 1주일 전 나사(NASA)는 1979년 7월10~14일에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고 그 중 12일에 추락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발표했다.[7] 대기권 진입 직전에는 1시간26분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돌고 한 바퀴 돌 때마다 지구 자전으로 인해 적도에서는 서쪽 방향으로 약 2400km씩 이동하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 대기권 진입에 진입하는지 특정할 수 없는 스카이랩은 지구 어느 곳에 떨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7월11일에 추락한 스카이랩은 오스트레일리아 서부의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은 지역과 인도양에 잔해가 떨어졌고, 추락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다.
소련의 동맹국 초청 프로그램 ‘인테르코스모스’
유인 우주비행이 자리잡은 1967년 소련은 인테르코스모스 프로그램을 발족했다. 동맹국들이 소련의 우주비행에 참여하는 계획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유인 우주비행은 살류트 우주정거장이 자리잡으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실행되기 시작했다. 첫 수혜자는 체코슬로바키아 우주인 블라디미르 레멕이었다. 소련이나 미국 소속이 아닌 첫 우주인이었다. 사령관 알렉세이 구바레프와 함께 1978년 3월2일 발사된 소유즈 28호로 살류트 6호 우주정거장에 도착한 후 3월10일까지 머물면서 무중력에서의 클로렐라 성장 관찰, 구리, 납, 은, 염화 구리를 녹이는 실험, 인간 신체조직에서 산소를 측정하는 과학 실험을 수행했다.
1981년까지는 폴란드, 동독, 불가리아, 헝가리, 베트남, 쿠바, 몽골, 루마니아 등 소련 동맹국의 우주인들이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살류트 우주정거장에 머물렀다.[9] 이 기간 동안 미국은 유인 우주비행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1982년부터는 소련 동맹국이 아닌 프랑스, 인도,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일본, 영국, 오스트리아 우주인들도 인테르코스모스를 통한 유인 우주비행에 참여했다. 살류트 우주정거장에 방문한 우주인은 중복 방문을 포함해 총 80명이다. 이 가운데 11개국 11명이 인테르코스모스 프로그램으로 참여했다. 살류트 우주정거장 이후에 건설된 미르 우주정거장에도 7개국 7명의 우주인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우주정거장에 방문했다.[8]
미르 우주정거장 전경. 1998년 1월 29일 인데버 우주왕복선에서 찍은 사진. 출처: NASA
첫 모듈형 우주정거장 ‘미르’의 등장
소련의 미르 우주정거장은 이전까지의 단일 모듈 우주정거장에서 벗어나, 여러 개의 모듈을 순차적으로 발사해 우주에서 큰 규모로 조립해 건설한 첫 우주정거장이다. 미르 우주정거장 건설은 1986년 2월19일에 발사된 첫 모듈부터 시작됐다. 1996년까자 약 10년에 걸쳐 건설된 미르 우주거장은 모두 7개의 모듈로 구성되어 있다. 최장 길이는 31m였고 질량은 129.7톤에 이르렀다. 내부 공간의 부피는 350㎥로 스카이랩과 비슷했다. 296km에서 421km 사이의 고도를 유지했다.[10]
미르 우주정거장이 운영 중이었던 1991년 12월에 소련이 해체되었고, 1992년 6월에는 미국과 러시아 정상들이 우주탐사 협력에 합의하면서 미국 우주왕복선이 미르 우주정거장에 도킹하는 등 양국 사이의 우주 협력이 본격화됐다. 30번의 소유즈 우주선과 9번의 우주왕복선 비행을 통해 12개국의 125명의 우주인이 미르 우주정거장을 방문했다. 그중에는 1994년 1월8일부터 1995년 3월22일까지 437일 17시간 동안 연속해서 우주에 체류한 기록을 지니고 있는 발레리 폴랴코프도 포함되어 있다. 1988년 8월29일부터 1989년 4월27일까지 240일 22시간 동안 우주에 체류한 기록을 더하면, 폴랴코프의 우주체류시간 총합은 678일이 넘는다.[11]
미르 우주정거장 모듈 구성도. 이름 밑의 숫자는 모듈을 발사한 날짜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미르 우주정거장은 15년 31일 동안 지구 주위를 돌았고, 서서히 낮아지는 고도를 높이는 로켓추진 작업은 주로 러시아의 프로그레스 무인 화물우주선이 담당했다. 미르 우주정거장은 2001년 3월23일에 계획한 대로 지구 대기권에 진입해 파괴됐다. 미르 우주정거장은 평균 고도가 220km로 낮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화물 대신 충분한 로켓 연료를 실은 프로그레스 M-5 우주선이 미르와 도킹했고, 이 우주선의 로켓 역추진으로 미르의 공전궤도 근지점을 165km 높이까지 낮췄다. 지구를 2바퀴 더 돈 후 다시 로켓을 역추진해 계획한 위치의 대기권에 진입했다. 대기의 공기저항으로 타고 남은 미르의 잔해는 사람이 살지 않는 남태평양 해상에 떨어졌다.[12]
국제우주정거장(ISS)과 도킹한 인데버 우주왕복선. 지구로 귀환하는 소유즈 우주선에서 2011년 5월23일에 찍은 사진. 출처: NASA
국제 협업으로 만든 국제우주정거장
미르 우주정거장의 퇴역이 다가오면서 더 큰 규모의 ‘국제우주정거장’(ISS: International Space Station)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우주정거장 모듈 제작에서부터 미국, 러시아, 유럽 우주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캐나다, 일본이 참여한 국제 협업 우주 프로젝트였다. 우주에 올라간 첫 모듈은 러시아 제작한 자랴 모듈로 1998년 11월20일 러시아의 프로톤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이후 여러차례 새로운 모듈이 추가되어, 2023년 현재 총 16개 모듈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6개는 러시아가 제작한 모듈이고, 8개는 미국, 나머지 2개는 각각 일본과 유럽연합이 제작한 모듈이다. 국제우주정거장 전체 질량은 우주선이 도킹하지 않았을 경우 약 420톤이고, 내부 공간의 부피는 스카이랩과 미르 우주정거장의 3배 정도인 1000㎥에 이른다.[13]
국제우주정거장은 약 400km 고도에서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 이 고도의 우주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아주 미량의 대기로 인해, 우주정거장의 고도는 1달에 약 2km씩 낮아진다.[14] 이 때문에 우주정거장은 로켓 추진으로 고도를 높이는 작업을 주기적으로 시행한다. 우주에 돌아다니는 잔해와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추진도 필요하고, 자세를 제어하기 위한 추진도 필요하다. 우주정거장은 고도유지, 우주잔해 충돌방지, 자세제어를 위해 매년 약 7톤의 로켓 연료를 사용한다.[15]
국제우주정거장이 건설된 이후부터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상업 우주여행도 시작됐다. 첫 민간인 우주인은 미국인 데니스 티토로 2001년 5월6일 발사된 소유즈 TM-32 우주선을 타고 우주정거장을 방문해 8일간 머물렀다. 당시 그는 우주여행 비용으로 2000만달러를 지불했다. 2022년 4월8일 발사된 스페이스엑스의 ‘크루 드래건’(Crew Dragon)을 타고 우주정거장를 방문해 17일간 머물렀던 민간인 우주여행객들은 1인당 5500만달러를 지불했다.[16] 국제우주정거장에는 13명의 민간인 우주여행객을 포함해 현재까지 20개국 260명이 넘는 사람이 방문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한 톈궁 우주정거장. 출처: Wikimedia Commons
중국의 독자적 우주정거장 ‘톈궁’
독자적인 발사체 기술로 유인 우주비행을 성공한 세번째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은 양리웨이를 태우고 2003년 10월15일에 발사된 선저우 5호의 첫 유인 우주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8년 후인 2011년 9월29일에는 단일 모듈 우주정거장 톈궁 1호를 설치함으로써, 단독으로 우주정거장을 설치한 세번째 국가가 되었다. 소련의 첫 우주정거장인 살류트 1호와 비교하면, 톈궁 1호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였다. 총질량은 8.5톤이었고 내부 공간의 부피는 15㎥로 살류트 1호의 6분의 1 정도였다.[17] 선저우 9호와 10호로 총 6명의 우주인이 방문했다. 톈궁 1호는 발사 후 6년 6개월 후인 2018년 4월2일 남태평양 상공의 대기에 진입해 대부분이 타서 소멸되었다.
우주정거장 규모 비교. 우주정거장과 도킹하는 우주선은 옅은 색으로 처리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중국의 두번째 우주정거장인 톈궁 2호도 톈궁 1호와 같은 크기로 2016년 9월15일 발사돼 2년 10개월 후인 2019년 7월 19일 남태평양 상공 대기권에 진입해 소멸되었다. 톈궁 2호에는 선저우 11호로 2명의 우주인이 방문했다.
중국은 2021년 4월29일 첫 모듈 발사를 시작으로 톈궁 우주정거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현재 총 3개 모듈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모듈의 질량은 약 22톤이다. 내부 공간은 약 340㎥로 소련의 미르 우주정거장과 비슷한 규모다.[18] 약 390km 상공을 공전하고 있는 톈궁 우주정거장에는 지금까지 선저우 12호부터 16호까지 다섯개의 우주선으로 총 15명의 우주인이 방문했다. 2024년에는 쉰톈 우주망원경이 설치될 예정이다.
주)
[1] “Salyut 1 - Spacecraft - the NSSDCA - NASA”, NASA, https://nssdc.gsfc.nasa.gov/nmc/spacecraft/display.action?id=1971-032A
[2] “ESA - The Russian Soyuz spacecraft”, ESA, https://www.esa.int/Enabling_Support/Space_Transportation/Launch_vehicles/The_Russian_Soyuz_spacecraft[3] “Observed Energy Distribution of α Lyra and β Cen at 2000–3800 Å”, G. A. Gurzadyan & J. B. Ohanesyan, Nature, 239, 90 (1972)
[4] “Soyuz 11 - Spacecraft - the NSSDCA - NASA”, NASA, https://nssdc.gsfc.nasa.gov/nmc/spacecraft/display.action?id=1971-053A
“Soyuz 11”,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Soyuz_11
[5] “Salyut 6 - Spacecraft - the NSSDCA - NASA”, NASA, https://nssdc.gsfc.nasa.gov/nmc/spacecraft/display.action?id=1977-097A“Salyut 6”,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Salyut_6
[6] “50 Years Ago: The Launch of Skylab, America’s First Space Station”, John Uri, NASA, https://www.nasa.gov/history/50-years-ago-the-launch-of-skylab-americas-first-space-station/
“Skylab”,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Skylab
[7] "Foreign Astrologers, Soothsayers Make Skylab Predictions". Spartanburg Herald. Associated Press. (1979).
[8] “Interkosmos”,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Interkosmos
[9] 불가리아의 조지 이바노프가 타고간 소유즈 33호는 엔진의 문제로 살류트 6호 우주정거장과의 도킹에 실패하고 조기 귀환했다.
[10] “Mir Space Station”, NASA, https://history.nasa.gov/SP-4225/mir/mir.htm
“Mir - NASA - NSSDCA - Spacecraft - Details”, NASA, https://nssdc.gsfc.nasa.gov/nmc/spacecraft/display.action?id=1986-017A
“Mir”,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Mir
[11] “Polyakov, Valeri Vladimirovich”, Biographies of USSR / Russian Cosmonauts, http://www.spacefacts.de/bios/cosmonauts/english/polyakov_valeri.htm
[12] “Mir FAQs - About the re-entry”, ESA, https://www.esa.int/About_Us/Corporate_news/Mir_FAQs_-_About_the_re-entry
[13] “International Space Station”, NASA, https://www.nasa.gov/reference/international-space-station/
“International Space Station”,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International_Space_Station
[14] “What Prevents The ISS From Falling Out Of Orbit?”, Forbes, 2018년 4월 18일, https://www.forbes.com/sites/quora/2018/04/18/what-prevents-the-iss-from-falling-out-of-orbit/
“International Space Station”,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International_Space_Station
https://spacemath.gsfc.nasa.gov/weekly/5Page35.pdf
[15] “Space tourism”,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Space_tourism
[16] “ISS Propulsion Module”,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ISS_Propulsion_Module
[17] “Tiangong 1 - Spacecraft - the NSSDCA”, NASA, https://nssdc.gsfc.nasa.gov/nmc/spacecraft/display.action?id=2011-053A
“Tiangong-1”,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Tiangong-1
[18] “Tiangong space station”, Wikipedia, https://en.wikipedia.org/wiki/Tiangong_space_station
윤복원/미국 조지아공대 연구원(전산재료과학센터·물리학) bwy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