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세종기지 연구자들은 펭귄들을 기지 바로 앞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동하는 젠투펭귄들의 긴 행렬. 극지연구소 제공
펭귄 몸에 추적장치 달아놓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
남극세종기지에서 바닷새 연구
나는 2014년부터 극지 바닷새의 행동을 연구하고 있다. 동물의 행동을 연구하는 일이 연구실 책상에 앉아 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남극과 북극을 찾아다니면서 극지 동물을 직접 관찰한다.
올 1월부터 2월까지 한국이 가장 추운 시기엔 남극세종과학기지에서 지냈다. 한국이 겨울일 때 남극은 여름이라 그곳은 평균 섭씨 1~2도 정도로 비교적 따뜻했다. 7월과 8월엔 북극 그린란드에 있었다. 그곳 고위도 북극에선 여름 평균기온이 4~5도 정도여서 시원하다 못해 춥게 지내다 얼마 전에야 한국의 연구실로 돌아왔다. 다시 몇 달 뒤엔 남극으로 떠나야 한다. 극지 동물을 연구하느라 고생한다며 걱정해주는 분도 있지만, 어쩌다 보니 한국의 혹한과 폭염을 피해 다니며 지내게 되었다.
바다를 보며 바위에 앉아 있는 필자가 궁금했던지 다가온 펭귄.
남극은 최저 기온이 영하 93도를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로 추운 대륙이다. 하지만 매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남극에 여름이 찾아오면 기온이 오르고 생명이 움튼다. 눈이 녹은 자리엔 극지 식물이 자라고 동물이 모여든다. 그래서 이 시기엔 연구자들도 분주해져, 과학조사를 위해 남극기지를 찾는다.
이른 아침이면 삽을 들고 흙을 찾아 떠나는 토양학자부터 망치로 돌을 캐러 다니는 지질학자까지,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을 볼 수 있다. 정해진 일정 안에 계획한 연구를 마치고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늦은 밤까지 조사·연구가 끝나지 않는 때도 많다. 아무리 여름이라 해도 강한 눈보라가 자주 들이치는 지역이라 늘 두터운 의복과 방한용품을 챙겨 다녀야 한다.
세종기지에서 바닷새를 연구하는 나와 동료들은 해안을 따라 걸어서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펭귄 번식지로 향한다. 펭귄이 사는 곳은 바다와 닿아 있는 언덕이라 거센 바람이 부는 곳이다. 동물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선 긴 시간을 참고 기다리며 관찰해야 한다. 간혹 해안가에서 열 시간씩 하염없이 펭귄을 기다리는 날도 있는데, 그럴 때면 한국에선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추위가 몰려와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지만 다른 연구자들도 그렇듯, 긴 기다림이 힘든 만큼 펭귄의 행동을 알아가는 즐거움도 크기에 잠시 몸이 고된 것은 견딜 수 있었다.
남극을 대표하는 동물은 누가 뭐래도 펭귄이다. 우리는 흔히 펭귄이 뒤뚱뒤뚱 얼음 위를 걷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사실 펭귄은 대부분의 시간을 바다에서 보낸다. 나와 같은 동물행동학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그들의 물속 생활이다. 얼마나 깊이 잠수하는지, 얼마나 멀리 나가는지, 어떤 먹이를 먹는지 알기 위해 나는 펭귄 몸에 작은 추적장치를 달았다가 다시 수거하는 방법으로 그들의 수중 생활을 엿보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새끼에게 먹이를 주는 어미 젠투펭귄. 정진우 제공
지금까지 기록된 정보를 살펴보니, 젠투펭귄은 무려 183m까지 잠수하며 한번 먹이를 먹으러 바다에 나가면 평균 25㎞ 바깥의 외해까지 열 시간 이상 돌아다니며 남극크릴을 사냥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번식 기간엔 엄마 아빠 펭귄이 이렇듯 번갈아가며 바다로 헤엄쳐 나가 크릴을 잔뜩 먹고 와서는 다시 토해내어 새끼들을 먹인다.
펭귄이 있는 곳엔 펭귄 알과 새끼를 노리는 도둑갈매기가 있다. 이들은 남극기지 주변에서 음식쓰레기를 뒤지기도 하고 코끼리물범 새끼 옆에서 어미젖을 몰래 훔쳐 먹기도 한다. 혹시 자기 둥지 주변에 오는 사람이 있다면 맹렬히 공격한다. 도둑갈매기의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한국의 까치처럼 똑똑해 보여, 혹시 사람을 구분할 줄 아는지 시험을 해보았다. 역시나 예상대로 자기 둥지에 한번 왔던 사람을 잘 기억했다. 인가 주변에 사는 동물이 아닌데도 남극 바닷새가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은 새롭게 안 놀라운 사실이었다.
한국에도 새가 많은데 왜 극지까지 가서 연구하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물론 극지 동물에 대한 개인적인 궁금증과 호기심을 빼놓을 순 없지만, 극지는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하기에 학문적 중요성이 높아 이미 많은 과학자가 주목하는 지역이다.
남극세종기지가 있는 서남극 지역은 급속한 온난화로 빙하와 해빙이 줄어들고 있다. 이런 변화는 남극 동물을 위태롭게 한다. 남극 생태계는 그 근간을 받치는 핵심 생물종인 크릴을 중심으로 비교적 단순한 연결고리를 이루고 있는데, 플랑크톤 서식처인 해빙이 줄면서 플랑크톤을 먹는 크릴도 급감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먹이사슬을 따라 연쇄적으로 크릴을 먹는 상위 포식자에게도 영향을 끼쳐 결국 펭귄의 생존도 위협받게 되었다.
최근 연구를 보면, 아델리펭귄과 황제펭귄은 앞으로 100년 안에 멸종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남극 생태계의 상위 포식자인 펭귄이 처한 위기는 지구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인류에게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지금 내가 하는 연구는 고작해야 펭귄의 물속 생활을 엿보는 정도지만 이런 작은 연구들이 모여 극지 생태계의 변화를 이해하고 보호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연구원(동물행동학)
모래텐트에서 별 보고 잠자며
곤충처럼 열사의 땅 기어다녀
미국 유타주 사막 야생담배 연구
독일 막스플랑크 화학생태학연구소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는 동안 일 년에 몇 주씩 미국 유타주에 있는 그레이트베이슨 사막에서 지냈다. 야생담배 식물을 연구하기 위해서다. 섭씨 40도를 쉽게 넘는 뜨거운 한낮에도 대부분 밖에서 식물을 관찰하며 실험했고 한밤에도 여전히 뜨거운 트레일러 안에서 일을 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2014년 여름부터 다시 한국에서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을 땐 한국의 여름 정도는 잘 견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대단한 착각임을 깨달았다.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밤에 잠을 잘 수 없었고 낮에는 되도록 실내에서 생활했다. ‘지난 몇 년간 사막에서 어떻게 생활할 수 있었지?’ 하고 스스로 궁금해하며 올여름을 견뎠다.
야외 실험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던 어느 날 사막의 멋진 구름을 배경으로 선 필자.
사막에 있는 야외 실험장에 도착하면 침낭과 커다란 수건 그리고 모기장으로 둘러싸인 1인용 텐트를 받는다. 모래가 잔뜩 묻어 있는 침낭에 누워서 달을 보거나 하늘 가득한 별을 보며 잠을 자는 것으로 보통 첫날 일정을 마무리한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면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야생담배가 자라고 있는 밭으로 향한다. 이때 복장은 최대한 허름하게 그리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걷는다. 사막 가운데서 농사를 지으면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금방 헌 옷이 되기 때문이다. 늘 모자를 쓰고 다니기 때문에 머리 스타일도 중요하지 않다.
이런 복장으로 뜨거운 흙바닥을 기어다니면서 어떤 곤충이 얼마만큼 식물을 먹었나 관찰하다 보면, 나는 식물이 만든 좋은 데이터를 먹기(?) 위해 돌아다니는 곤충이 된다. 야생담배는 어떻게 이렇게 뜨거운 곳에서 다양한 병해충의 공격을 이기고 생존할 수 있었을까? 그늘진 땅바닥에 앉아 고민을 하다 보면 나는 식물이 된다. 야외 저녁식사 시간에 연구책임자(지도교수)가 참여하는 미팅은 그야말로 격식 없고 자연스럽다. 가장 편한 자세로 이곳저곳에 앉아 서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특히 미팅 중에 ‘자연 관찰 보고’가 있는 순서에선 그날 본 신기한 식물, 곤충, 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서 보여준다. 이때는 모두가 다윈이 되고, 그 이전에 살았던 수많은 자연사학자의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이 된다.
“제가 영감을 얻는 곳은 도서관도 강의실도 아닙니다. (…) 영감이 찾아오는 시간은 야외로 나가 자연을 관찰할 때입니다.”(토머스 아이스너 <전략의 귀재들 곤충>에서)
자연을 관찰할 때 생기는 궁금함을 가지고 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다시 찾는 자연은 그곳이 아무리 덥거나 추워도 충분히 즐거웠다. 그 즐거움을 잊지 못해, 사막에서 생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지금도 야생담배를 연구하고 있다. 더위를 준 자연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편한 마음으로 자연에 가까이 가서 더위를 이겨야겠다.
김상규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 식물연구팀장(식물생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