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세포 연결망의 영상. 캐나다 토론토아동병원 제공
최근의 몇몇 연구 결과들이 기억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던져주고 있다. 이런 연구들은 신경세포(뉴런)의 활성을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기법(‘광유전학’)이 등장하면서, 이전까지 실험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던 기억의 특성을 신경세포 수준에서 보여주고 있다.
■ 두 기억의 연결, 기억세포의 경쟁 멋진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 기억, 곧이어 집을 나서 계단을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딜 뻔한 기억은 왜 쉽게 연결되어 회상될까? 지난달 캐나다 토론토아동병원과 토론토대학 등의 연구진은 가까운 시간에 일어난 두 사건의 기억이 동일한 신경세포 집합에 겹쳐 저장된다는 동물실험 결과를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왜 그럴까? 연구진은 기억이 생성될 때 흥분한 신경세포의 활성이 한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뒤이은 기억의 생성에도 같은 신경세포들이 손쉽게 선택된다는 설명을 제시했다. 신경세포의 ‘흥분성’이 기억 세포 집합에 참여하는 데 일종의 경쟁력이 된다는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박성모 토론토대학 박사후연구원은 “단일 기억을 주로 다룬 이전 연구와 달리 이번 연구에선 두 가지의 연합 기억이 어떻게 생성되는지의 메커니즘을 새로 밝혀주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기억 세포들의 활성을 선별적으로 조절하면 가까운 시간대의 두 기억이 분리되기도, 먼 시간대의 두 기억이 연결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연결을 잃었을 뿐 경험하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곧 기억의 소실을 뜻하지는 않음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도 제시됐다. 지난 4월 일본 이화학연구소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 등 연구진은 알츠하이머 질환을 지닌 쥐를 이용한 이런 연구 결과를 <네이처>에 냈다. 연구진은 어떤 경험을 하고도 곧 잊어버리는 치매 증세의 쥐 뇌에서 기억 세포들의 연결지점을 일부러 활성화하는 자극을 가하자 실험 쥐가 기억을 회상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회복된 기억은 한동안 지속됐다. 이는 기억이 기억 세포들에 저장되더라도 그 기억 장소가 제대로 연결되지 못할 때 회상되지 못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로 주목받았다.
■ 기억은 견고할까, 기억 바꾸기 같은 연구진은 2013년 7월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기억 세포들의 활성을 일부러 조절함으로써 쥐들이 겪지 않은 경험을 마치 실제 겪은 듯이 회상하게 하는 ‘가짜 기억’을 만들어냈다. <사이언스>에 실린 이 연구는 기억의 생성과 저장이 특정한 신경세포 집합에서 이뤄지며, 기억 세포 활성을 조절하면 기억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2009년 <사이언스>에 ‘공포 기억 지우기’라는 논문을 낸 한진희 카이스트 교수는 “이런 실험 결과는 기억이 실제 경험이 아니라 기억 세포의 활성 조절에 의해서도 일어남을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오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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