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수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기조강연을 하는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가 수학 문제 풀이가 가득한 연구실 칠판 앞에서 수학 하기의 즐거움과 아름다움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오철우 기자
[한겨레가 만난 사람] 세계수학자대회 기조강연하는 황준묵 교수
지구촌의 수학 지성들이 오는 8월 서울에 모인다. 저명하거나 무명이거나, 신진이거나 노장이거나, 선진국과 개도국의 수학자 500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오늘날 수학의 성과를 나누며 풀어야 할 난제를 탐색하고 논의하는 세계수학자대회(ICM)가 8월13일 서울에서 개막한다. 1897년 첫 대회 이후 세계 수학을 대표해온 이 대회는 서울에서 제27회를 맞는다. ‘노벨 수학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의 수상자가 발표되고 시상식이 열려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 대회에서 전체 참석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조강연자로 선정된 황준묵 고등과학원 교수를 지난 4일 연구실에서 만나 수학과 수학자대회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기조강연은 한국인 수학자로서는 처음이다. 황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 교수를 거쳐 15년째 연구에 전념하는 고등과학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난해한 복소기하학을 연구하는 그는 2010년 ‘국가과학자’로 선정됐다. 인터뷰에서 그는 순수 수학의 기쁨과 가치는 결과보다 과정에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문제 풀이와 증명의 통쾌함과 아름다움에 빠져 사는 수학자의 수학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인 첫 기조강연 영광 얻어
우리 수학의 높아진 위상에 뿌듯 혁신적 생각 발전시키려 택한 수학
증명 안되는 문제 풀이 난제 많지만
깨끗하게 정리되는 아름다움에 빠져 황병기·한말숙 부모님 덕분에
스토리텔링 익숙해 연구에도 도움 -어떤 성격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가?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순수수학이 중시하는 문제는 응용과 무관한 게 많다. 대표적인 예로, 불가능함과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데에 순수수학은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예컨대 ‘√2는 유리수가 아니다’라는 명제가 있다. ‘유리수 표현이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문제인데, 이런 부정적인 결과는 어디에 써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도 수학자한테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고대 그리스 수학이 이룬 가장 중요한 명제를 꼽으라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수학에선 이처럼 ‘불가능함’ ‘존재하지 않음’ 같은 부정적인 논증이 훨씬 더 큰 깊이를 지닌다.” -예를 들면? “고대 그리스 수학에서 제기된 문제로 ‘눈금 없는 자와 컴퍼스만을 써서 주어진 각도를 3등분하는 방법을 찾으라’는 오랜 난제가 있는데, 19세기에 ‘그런 방법은 없음’이 증명됐다. 무언가를 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은 사실 수학을 응용하는 입장에서 보면 쓸모가 없는 일이다. 또 다른 예로 페르마의 문제도 그렇다. ‘어떤 방정식의 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의 문제인데, 300년 훨씬 넘은 오랜 문제로 유명했다. 1990년대에 비로소 증명돼 ‘세기의 증명’으로 불렸다. 어떤 방정식에 해가 없음을 증명한 뒤에 응용하는 것이나 그냥 해가 없다고 믿고 응용하는 것이나 수학을 응용하는 데에선 별 차이가 없지만, 증명되지 않은 명제는 수학자들한테 참을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도 이런 문제 풀이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뭘까? “증명 과정에서 이전 수학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수학이 도입되곤 한다. 증명 과정에서 얻은 것은 다른 수학에도 영향을 주고, 나중에 쓸모 있는 것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런 증명 과정에서 수학자들은 어떤 통쾌함을 느낀다. 무언가 너저분한 것을 다 잡아 없애고 깨끗하게 정리한 느낌을 얻곤 한다. ‘우아함’(엘레강스) 같은 느낌이랄까, 어떤 아름다움을 느낀다. 사실 ‘없음’보다 더 큰 아름다움은 없지 않나?(웃음)” 황 교수는 애초 물리학자를 꿈꾸었으나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다가 수학으로 학문의 길을 바꾸었다. 그는 “혁신적인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며 “수학이 그런 지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혁신적인 생각을 아무나 하긴 힘들다. 수학의 언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수준이 되고 난 뒤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능수능란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기보다는 문제 풀이에 골몰하면서 능수능란해진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대학원 생활을 할 때 굉장히 어려운 문제에 도전했다. 지금도 못 푸는 난제다. 지도교수가 이 문제를 풀어 박사학위 논문을 써보라면서 던져준 문제다. 어떻게 풀지 몇년간 생각했다. 밑바닥에서 도전하는 과정이었다. 결국 문제는 못 풀었지만 거기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연관된 문제를 풀어 학위 논문을 완성했다. 당시 3~4년 동안 아무런 진전도 없이 문제 풀이만 생각했다. 요즘에는 그런 경험의 기회를 학생들에게 주질 않는 것 같다.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해야 학위를 주는 풍토이니, 접근방법이 잘 알려진 문제만을 다룬다. (풀 수 없는 문제에 도전할 기회를 얻었던)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가야금 명인 황병기 선생과 소설가 한말숙 선생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예술이 수학에 영향을 준 바는 없는지? “요즘 와서 생각하면 내가 수학에서 상대적으로 스토리텔링에 익숙한데 부모님 덕을 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곤 한다. 요즘에도 틈틈이 소설을 읽는다. 주인공의 마음속에 들어가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는데 영화를 통해선 얻을 수 없는 경험이다. 연구에도 긍정적 영향이 있는 것 같다. 또한 소설을 통해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게 되는데 사실 수학에서도 그건 중요하다. 남의 논문을 볼 때에는 저자의 의식 흐름을 읽어야 어떻게 그런 발견에 이르게 됐는지 이해할 수 있고, 내 연구를 발표할 때 청중의 의식 흐름을 좇아야 아이디어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흥미로운 얘기를 많이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요즘 수학의 상황은 어떤가? “최근 몇 년 동안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 같은 대학에서 수학과에 최상위권 학생들이 많이 지원한다고 들었다. 수학과가 이렇게 인기 높았던 적은 없었다고 하는데 수학계에서도 그 이유를 궁금해하고 있다. 수학자대회의 서울 개최도 그렇고, 요즘 희망을 본다.” 인터뷰/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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