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북부의 한 무인카메라에 잡힌 인도차이나호랑이의 모습. 밀렵으로 호랑이가 줄어들어 발자국조차 보기 힘들게 된 반면 승냥이가 가축 피해를 만들고 있다. 야생동물보전협회 라오스지부 제공
[토요판 / 생명] 호랑이 이야기-라오스
▶ 최근 학계에서는 한국호랑이의 역사·생태적 복원이 모색되고 있다. 과연 가능할까? 지금도 라오스 북부에서는 사람과 호랑이가 쫓고 쫓기는 일이 벌어진다. 호랑이에 대한 유일한 한국인 현지 연구자 임정은(미국 위스콘신대 넬슨환경연구소 박사과정)씨가 라오스의 인도차이나호랑이를 소개한다. 다음 회에는 시베리아 아무르지방에서 한국호랑이를 쫓은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흔히 호랑이가 사는 곳이라 하면 깊은 산골 혹은 울창한 밀림을 떠올리겠지만, 호랑이 역시 물과 가깝고 이동이 수월한 곳을 좋아한다. 사실 호랑이는 사람들과 가까이 살아왔다. 지구상에서 얼마 남지 않은, 호랑이와 사람이 함께 사는 나라인 라오스에서도 그렇다. 2010년 현장조사에 이어 2012년 5월 말 라오스를 다시 찾았다. ‘라오스 호랑이의 마지막 희망’이라 불리는 남에트-푸루에이(Nam Et-Phou Louey) 국립보호구역에 도착할 때는 이제 막 우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라오스의 호랑이 역사를 살펴보면, 놀랍게도 우리나라 호랑이의 멸종 역사와 비슷하다. 안타깝게도 2000년대 이전 라오스의 인도차이나호랑이에 관한 문헌은 매우 드물었지만, 시장경제가 도입되지 않았고 인구밀도 또한 낮았기 때문에 호랑이를 비롯한 야생동물이 비교적 잘 보호돼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야생동물보전협회 라오스지부에서 실시한 마을 사람들과의 인터뷰 기록을 보면, 호랑이가 사람들이 키우는 버펄로나 소를 잡아먹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고, 심지어 산속으로 채집 활동을 가거나 방목지의 간이숙소에서 머물다 호랑이를 목격하고 혼비백산 도망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호랑이가 마을로 내려오거나 사람이 공격당한 적은 매우 드물었다. 마치 우리나라 고려시대처럼 호랑이와 사람이 서로의 공간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공존’이 이뤄진 것이다.
갓 결혼한 여자를 빼앗긴
남편이 끝내 호랑이를 죽이고
아내를 되찾았다는 전설을
몽족인들은 실제 믿고 있었다 맹수와의 아슬아슬한 공존은
2000년대 들어 깨지기 시작했고
대신 승냥이떼의 습격
가축 피해가 전보다 심해지자
사람들은 점점 옛날이 그립다
“호랑이야 돌아오라” 2000년대 들어 호랑이는 점점 살 곳을 잃어갔다. 인구가 늘어나자 보호구역 내에서조차 화전농업은 불가피한 선택이 되어 숲은 농지로 점점 변해갔고, 사슴과 멧돼지 등 호랑이의 먹잇감 역시 마을 사람들의 중요한 식량자원으로 인식되면서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마치 농지 개간이 본격화되면서 호랑이 개체수가 급감한 조선시대를 보는 듯했다. 2010년까지도 7~23마리의 호랑이가 3000㎢의 핵심보호구역에 살고 있던 것으로 추정됐으나, 불법 밀거래가 성행하자 호랑이들은 점점 자취를 감추었다. 2009년은 공식적으로 호랑이에 의한 가축 피해가 보고된 마지막 해이고, 마을 사람들은 2012년 한 해 동안 3마리의 호랑이가 밀렵되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같은 해 핵심보호구역 전역의 무인카메라에 찍힌 호랑이는 겨우 2마리에 불과했다. 예전엔 우기가 되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던 호랑이 발자국도 구경하기 힘들어졌다는 게 마을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결국 사람들은 오랜 이웃을 몰아내며 호랑이로부터 자신들의 가축을 지키는 데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승냥이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더 골치 아픈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정확한 수는 집계되지 않았으나 집단사냥을 하는 승냥이에 의한 가축 피해는 과거 호랑이에게 입은 가축 피해보다 훨씬 크고 광범위했다. 인터뷰 기간 내내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가 있었을 때엔 승냥이가 이렇게 활개를 치지는 않았다”며 호랑이의 부재를 아쉬워했고, “호랑이는 다음 세대를 위해, 생태계의 균형을 위해 그리고 국가의 자랑이기 때문에 꼭 보전되어야 한다”며 입을 모았다. 몇 해 전까지 호랑이에게 가축 피해를 입었던 당사자들에게서 나온 말이기에 더욱 놀랍고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호랑이가 살고 있는 북부 라오스에는 여러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인 몽족이 사는 마을을 방문했을 때다. 베트남 전쟁 이후 심한 박해를 받고 라오스 북부 산속으로 숨어들어갔던 안타까운 역사를 가진 이 민족은 솜씨 좋은 사냥꾼이자 목축업자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생활하는 곳은 호랑이의 핵심 서식지와 겹쳐 있었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가축, 호랑이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 갈등은 불가피해 보였다. 실제 상당수 호랑이 밀렵도 몽족이 저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몽족에게 전해지는 유명한 호랑이 전설이 있다. 어느 날 호랑이가 갓 결혼한 몽족 여자를 납치해서 자신의 아내로 삼았다. 평범한 삶을 살던 남편은 갖은 고생 끝에 호랑이를 쫓아가 최후의 결투를 벌였고, 이윽고 호랑이를 죽이고 아내를 되찾았다는 이야기다.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져서, 어린아이에서부터 나이 많은 어르신까지 매일같이 시청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의 ‘곶감과 호랑이’ 정도의 전래동화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일부 마을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허구가 아닌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집집마다 휴대전화 등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면서도 “아내를 납치해 갈 수 있기 때문에 호랑이가 가장 무섭습니다”라고 말하는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아내를 납치하고, 가축을 잡아먹는 호랑이에게 호의적이진 않을 테니 충격은 이내 우려로 바뀌었다. 과연 사람이 호랑이와 이웃이 되는 것은 가능이나 할까?
호랑이와 함께 살기는 결코 녹록지 않다. 특히 생활이 궁핍하고 그래서 호랑이와 경쟁관계에 있으며 호랑이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일 경우에 공존은 더욱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방목이나 화전을 대체할 농축산 기술을 보급해 호랑이와 직접적인 경쟁을 줄이고, 밀렵 단속을 강화하면 호랑이는 다시 늘어날 수 있다. 또한 마을 사람들에게 호랑이의 보전 가치와 피해 예방법을 전하는 노력을 꾸준히 한다면 호랑이와의 공존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실례로 인구밀도가 라오스보다 더 높은 타이나 인도에서는 이미 사람들은 호랑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호랑이와 공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호랑이를 ‘이웃’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호랑이 보전을 위한 노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승냥이 피해 덕분인지 점점 호랑이를 그리워하는 마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가까운 미래에 다시 호랑이가 라오스 사람들의 이웃이 되기를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임정은 위스콘신대 박사과정
*한국호랑이 보전단체인 사단법인 한국범보전기금(savetiger.kr)과 러시아 피닉스기금은 어린이 호랑이 그림대회를 연다. 20일까지 어린이가 ‘한국호랑이·표범의 하루’를 주제로 그림을 그려 기금 사무국으로 보내면, 수상작으로 달력을 제작해 전세계에 배포한다. 문의 (02)880-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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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보호구역 내에 자리잡은 몽족 마을. 임정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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