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 출판인
‘알’이 주저앉은 이유
[토요판 / 생명] 김보경의 달콤한 통역 왈왈
[토요판 / 생명] 김보경의 달콤한 통역 왈왈
지난 2년 동안 앞집 사람들이 집을 비울 때면 대신해서 마당에 사는 닭과 토끼에게 ‘밥 셔틀’을 하는 재미가 좋았는데 그 집이 이사를 갔다. 처음에는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다가오지 않던 녀석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곁을 주기 시작했고 “얘들아, 밥 먹자” 하고 마당에 들어서면 쪼르르 달려오는 모습이 신기했는데.
“개랑 똑같지. 어릴 때 마당에 닭을 길렀는데 학교 갔다 오면 졸졸 따라다녔어.”
엄마의 말에 내가 도시에서만 살아서 직접 만나본 동물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1년 정도 되었을까 이름이 ‘알’이인 닭이 갑자기 다리를 못 쓰고 주저앉았고, 원인을 찾지 못했다. 오래 못 살 거라는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알이는 말을 듣지 않는 다리와 날개를 이용해서 힘겹게 움직이면서도 밥도 잘 먹고, 햇볕을 쫓아 볕도 쬐고는 했다. 나는 이때까지도 알이가 잘 먹으면 다시 벌떡 일어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알이가 갑자기 떠났고 나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알이를 추억하다가 이내 알이가 주저앉은 원인을 알게 됐다.
‘바보야, 알이가 주저앉은 이유는 공장식 축산 때문이잖아.’
공장식 축산에 대해서 책에서 읽고 입으로 떠들고 다녔으면서도 정작 눈앞에서 벌어진 일과는 연결시키지 못했다.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닭은 생후 40일 즈음에 잡혀 사람들의 식탁에 오를 수 있게 최적화되어 태어난다. 도살될 시기에 맞춰 아주 빨리 아주 비대하게 커지도록 세팅되는데 알이는 이 시기를 훌쩍 넘겨 살고 있으니 비대해진 몸뚱이를 연약한 다리가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은 것이다. 그러니 다시 일어나길 바란 것은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가.
동물보호활동이 발달한 미국에는 분야별로 동물보호단체가 있는데 가축 동물을 위한 단체인 팜생크추어리의 보호소에도 알이와 같은 닭, 소, 돼지 등이 많다. 기껏 농장에서 구조해왔지만 비대해지는 몸을 감당하지 못해 주저앉아 버리는 동물들. 특히 미국의 닭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가슴살이 커지도록 유전자 조작이 되어 있는데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차고 넘치는 몸매 가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근육 만드는 데는 닭 가슴살이 최고라고 선동하고 있지 않는가.
주저앉은 이유를 알고 나니 떠난 알이가 더 애틋해졌다. 언젠가 알이가 낳은 귀한 ‘알’을 선물받기도 했다. 공장식 농장에서 닭은 거의 매일에 가깝게 달걀을 생산하지만 자연환경에서는 흔하지 않은 귀한 것이었다. 동네 길고양이랑 붙어도 늘 이기던 여장부 암탉, 곁을 주지 않던 녀석이 어느 날 옆으로 다가와서 쓰다듬을 수 있게 가만히 있던 순간, 여름이면 열린 창문 너머로 들리던 ‘꼬꼬댁 꼬꼬꼬’ 하는 낮은 울음소리가 그립다. 알이 가족은 농장에서 살았으면 한달 만에 잡아먹히거나 알만 낳다가 죽었을 텐데 그래도 흙 밟으며 2년여 살다가 양지바른 곳에 묻혔으니 괜찮다고 하는데 나만 아직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 방목 양계장이 소개됐는데 다른 곳도 이렇게 바뀌면 좋겠다는 리포터의 말에 농장주는 “이렇게 키워서 요즘 사람들이 먹는 걸 충족시키려면 우리나라 땅을 다 양계장으로 해도 모자랄 것”이라고 말했다. 과장된 말일 수도 있지만 결국 소비의 문제라는 얘기다.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의 인기 덕분에 아이를 둔 친구들이 이 책을 많이 읽은 모양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결말이 잔인하고 이해하기 어렵단다. 나는 주인공 잎싹이 기꺼이 족제비 새끼의 먹이가 되면서 생명의 선순환 속으로 들어가는 결말이 가장 아름답던데. 아마도 사람들은 현실에서는 핫윙, 통큰치킨을 먹으면서도 시골 어딘가에는 평화롭게 모래목욕을 하면서 제명대로 살아가는 닭이 있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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