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 내의 콜레스테롤(주황색)과 적혈구(빨간색).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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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병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생체 지표 몇가지를 꼽으라면 혈압, 혈당과 함께 콜레스테롤 수치를 빼놓을 수 없다.
콜레스테롤은 세포막을 구성하는 지질로 막을 보호하고, 혈관벽이 찢어지는 것을 예방하며 적혈구의 수명을 오래 보전시켜주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하지만 혈관을 막는 혈전의 주요 성분이기도 해서 지나치게 많이 쌓이면 심장마비, 뇌졸중 등 심혈관 및 뇌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원인 물질이기도 하다.
콜레스테롤은 대부분 간에서 만들어진 뒤 단백질과 결합해 지질단백질이란 분자 형태로 혈관을 따라 이동한다. 지질단백질 중에서 콜레스테롤을 혈관벽에 쌓아주는 것이 저밀도 지질단백질(LDL), 일명 ‘나쁜 콜레스테롤’이다. 반면 고밀도 지질단백질(HDL)은 혈관에 쌓인 콜레스테롤을 간으로 운반해주는 청소기 역할을 한다.
미국 생명공학기업 버브테라퓨틱스가 유전자 편집을 이용해, 약물 없이도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임상 시험을 실시한 결과를 최근 미국심장협회 연례회의에서 발표했다. 이번 임상 시험은 그동안 희귀 질병 치료에만 시도하던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일반인들이 흔히 겪는 질병에도 적용한 첫 사례다.
임상시험에 사용한 유전자 편집 기술은 DNA 이중나선 가닥을 잘라내는 크리스퍼-캐스9이 아닌 염기 편집 기술이다. 2018년 개발된 염기 편집 기술은 DNA 가닥을 끊지 않고 특정 염기만을 골라 화학적으로 변경하는 것이어서 좀 더 정교한 편집이 가능해 크리스퍼2.0으로도 불린다. 이 기술은 올해 초 ‘MIT 테크놀로지리뷰’가 선정한
‘2023년 10대 혁신 기술’에도 포함된 바 있다. 사람의 체내에서 직접 염기 편집을 시도한 것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영국에서 승인 받은
겸상 적혈구병 유전자 치료제는 세포를 채취해 체외에서 유전자를 편집한 뒤 다시 몸 속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염기편집 치료제를 고용량 투여하자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39~5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 정교해진 기술…염기 하나만 바꾼다
임상시험 결과엔 좋은 소식도 있고 나쁜 소식도 있다.
우선 좋은 소식은 유전성 질환인 가족성 고콜레스테롤혈증 질환을 앓고 있는 10명을 대상으로 임상 1상 시험을 시행한 결과, 가장 높은 용량의 치료제(VERVE-101)를 투여한 3명의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39~55% 감소했다는 점이다. PCSK9 효소 단백질 수치는 47~84% 감소했다. 이는 최신 치료 약물과 비슷한 효과다.
전문가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피츠버그대 리투 탐먼(심장전문의)은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매일 약을 복용하는 대신, 한 번에 모든 걸 끝내는 새로운 관상동맥 질환 치료법을 열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유전자편집 전문가인 캘리포니아 버클리 혁신게놈연구소의 표도르 우르노프는 뉴욕타임스에 “이번 발표는 좋은 의미에서 루비콘 강을 건넌 것과 같다”며 “작은 발걸음이 아니라 새로운 영역으로 도약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제약 대기업 일라이릴리의 과학의료담당 임원 대니얼 스코브론스키 박사는 “지금까지 우리는 유전자편집을 다른 치료법이 없는 매우 희귀한 질병에 대한 치료법으로만 생각했다”며 “그러나 유전자편집을 안전하면서도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기술로 만들 수 있다면 흔한 질환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명했다. 일라이릴리는 이 치료법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버브테라퓨틱스에 6천만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향후 투자에도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임상시험에서 연구진은 환자들에게 정맥 주사를 통해 지질 나노 입자를 딱 한 번 투여했다. 이 입자 안에는 콜레스테롤을 합성하는 조직인 간에서 단 하나의 유전자를 편집하는 유전자 편집 도구가 들어 있다. PCSK9라는 단백질 생산에 관여하는 이 유전자는 나쁜 콜레스테롤(LDL) 수치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유전자 편집 도구의 임무는 이 유전자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것이다. PCSK9 단백질은 혈액에서 콜레스테롤을 제거하는 효소를 분해하므로 PCSK9를 비활성화하면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진다.
유전자 편집 도구는 두개의 RNA 분자로 구성돼 있다. 하나는 DNA에 있는 특정 염기를 편집하는 명령이 담긴 메신저 RNA 분자이고, 다른 하나는 이 도구를 표적 유전자로 안내하는 가이드 RNA 분자다.
지질 나노입자에 포장된 상태로 몸 속에 들어간 유전자 편집 도구는 혈액을 따라 간으로 이동한 뒤 방출된다. 이어 가이드 RNA를 따라 간 세포 핵의 염색체 있는 표적 염기에 도착하면 메신저 RNA가 아데닌(A) 염기를 구아닌(G) 염기로 바꿔준다. 크리스퍼-캐스9과 같은 가위질 방식이 아니라, 잘못 쓴 글자(염기)를 지우고 새 글자(염기)를 써넣는 지우개-연필 시스템이다. 새 염기로 바뀐 PCSK9 유전자는 더는 작동을 하지 않게 된다.
이 유전자 치료법의 목표는 단 한 번의 치료로 평생을 콜레스테롤이 일으키는 심장 질환 위험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이다.
심각한 부작용 소식에 주가 폭락도
하지만 나쁜 소식도 있다. 효과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부작용도 있었다. 고용량을 투여받은 사람들은 몇시간 동안 발열과 두통, 몸살 등 독감과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특히 두 사람한테선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 가운데 한 명은 5주 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부검 결과 관상동맥의 일부가 막힌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한 명은 약물 투여 다음날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이 사람은 약물 투여 전부터 가슴 통증이 있었지만 연구진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이 알았다면 치료를 하지 않았을 사안이었다. 독립적 조직인 안전성위원회는 이들이 갖고 있는 기저 심장질환 때문에 부작용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시험을 중단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소식에 버브테라퓨틱스 주가는 40% 가까이 급락하기도 했다. 이는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유전자 요법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유전자는 한 번 바뀌면 원상회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치료 약물에 비해 정서적 거부감이 클 수 있다. 안전하고 효과 좋은 다른 치료법이 있다면 굳이 유전자에 손을 대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효과가 확인되더라도 장기적인 안전성까지 검증하려면 더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 유전자 편집이 표적이 아닌 염기에도 영향을 미쳤다면 추후 어떤 건강 문제가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유전자 치료법의 또 다른 걸림돌은 비용이다. 지금까지 나온 것들은 치료 비용이 최고 수십억원대에 이른다. 버브테라퓨틱스는 이보다는 저렴할 것으로 내다봤다.
예방도 가능…안전성·지속성 지켜봐야
이 치료 방법의 출발점은 10년 전 콜레스테롤 수치가 매우 낮은 사람들을 조사한 결과, 이들의 PCSK9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이 유전자 기능을 억제하는 항체가 개발돼 치료에 쓰였다. 현재 고지혈증 환자들은 정기적으로 항체 또는 RNA 주사를 맞거나 콜레스테롤 합성 억제제(스타틴) 같은 약물을 매일 복용한다.
그러나 유전자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하면 이런 번거로운 치료 과정이 필요 없이 단 한 번에 치료를 끝낼 수 있다. 또 유전적으로 고콜레스테롤 위험을 안고 태어난 사람들은 젊은 나이에 미리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유전자 편집 치료 기술의 효과와 안전성, 장기간 지속성이 확인된 후의 일이다. 이번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가 유전자 편집 치료를 받은 것은 불과 6개월 전이다. 올해 초 발표된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49~69% 낮아졌으며, 2년 반 동안 효과가 지속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임상시험은 영국과 뉴질랜드에서 이뤄졌다. 버브테라퓨틱스는 내년엔 미국에서 임상시험을 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미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임상시험 승인을 받았다. 이어 2025년에는 임상 2상 시험을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버브테라퓨틱스는 유전자 편집 치료법에 대한 FDA 규정에 따라 앞으로 14년간 임상시험 참가자를 추적 관찰할 계획이다.
최근에 개발된 크리스퍼 3.0(프라임 편집) 기술을 사용하면 오류 가능성이 더 낮아질 수도 있다. 이 기술은 DNA를 덩어리째 삽입할 수 있다. 질병 유발 유전자 전체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언젠가는 고혈압이나 특정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유전자를 유전자 코드에 추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리뷰’는 그 시기를 10~15년 후로 내다봤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