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웹우주망원경으로 발견한 ‘CEERS-93316’ 은하. 138억년 전 빅뱅이 있고 나서 2억3500만년이 지난 시점의 은하로 ‘가장 오래된 은하’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에든버러대 제공
태초에 탄생한 최초의 은하 또는 별을 찾는 것은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의 핵심 관측 목표 가운데 하나다.
허블우주망원경의 7배에 이르는 거대한 거울의 집광력과 우주 먼지의 안쪽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적외선 투시력, 빛의 파장을 아주 미세하게 가려낼 수 있는 분광력, 미약한 열 에너지도 감지할 수 있는 영하 230~260도대의 극저온 등이 이를 실행하는 도구들이다. 덕분에 제임스웹은 허블보다 100배나 뛰어난 관측 능력을 갖추고 있다.
제임스웹이 활동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안돼 이 강력한 도구들의 힘으로 ‘가장 오래된 은하’ 관측 기록을 속속 경신해가고 있다.
천체 관측에서 공간은 곧 시간이다. 우주에서 빛의 속도는 일정하기 때문에 더 먼 거리에서 빛나는 별이 더 먼저 생겨난 별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천체일수록 더 오래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더 멀리 있는 별을 찾을수록 태초의 우주 모습에 가까워진다.
영국 에든버러대 천문학자들이 중심이 된 미-영-프-덴마크 공동연구진은 제임스웹망원경의 초기 관측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138억년 전 우주 탄생의 빅뱅이 일어나고
2억3500만년이 지난 시점의 은하를 포착했다고 지난달 25일 사전출판논문 온라인저장소 ‘아카이브’에 제출했다.
‘CEERS-93316’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은하는 지구에서 350억광년 떨어져 있다. 빛의 속도는 일정하지만 우주공간 자체가 가속팽창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거리는 빛이 날아온 거리보다 훨씬 더 멀다. 우주의 팽창 속도는 대략 300만광년 멀어질 때마다 초속 70km씩 더 빨라진다.
연구진은 “빅뱅 후 2억3500만년은 최초의 은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생각되는 시기와 가까우며 최초의 별이 태어난지 약 1억3500만년 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번 발견은 ‘우주 진화에 관한 초기 관측자료 과학 조사’(CEERS)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된 분석 작업의 결과다.
발견자들이 메이지은하로 명명한 빅뱅 2억9천만년 후의 은하(오른쪽 아래 확대 사진). 오스틴텍사스대 제공
연구진의 일원인 레베카 바울러 영국 맨체스터대 연구원은 우주 전문 미디어 ‘유니버스투데이’에 “지난 몇 주는 허블이 유지했던 모든 기록이 깨지는 것을 지켜보는 초현실적인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연구 주저자인 에든버러대 박사과정 연구원 칼럼 도넌(Callum Donnan)은 “관측 데이터의 첫번째 집합에서 그렇게 먼 은하 후보를 발견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국제연구팀은 같은 날
빅뱅 2억9천만년 후의 은하를 발견했다는 관측 결과를 내놨다. 이들은 연구 책임자 스티븐 핑켈스타인 오스틴텍사스대 교수의 딸 이름을 따 이 은하에 ‘메이지’라는 별칭을 붙였다. 24시간 관측을 통해 발견한 이 은하는 큰곰자리에 있는 북두칠성의 국자 손잡이 근처에 있다.
핑켈스타인 교수는 “허블 관측에서 하나의 점이었던 것이 제임스웹에선 아름다운 모양의 완전체 은하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빅뱅 후 3억년이 지났을 때인 135억년 전의 은하 ‘GLASS-z13’.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이들보다 며칠 앞선 지난달 19일엔 하버드-스미소니언천체물리학센터 천문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25명의 국제연구진이 빅뱅 3억년 후의 은하
‘GLASS-z13’을 발견했다고 ‘아카이브’에 발표했다. 이 은하와의 거리는 330억광년이다.
이 은하는 아직 별들이 왕성하게 탄생하는 어린 은하로 크기는 우리은하의 100분의 1에 불과하지만 질량은 벌써 태양의 10억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진은 “이 정도 질량을 가지려면 보통 5억년이 걸린다”며 “초기 우주에선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별이 생겨났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발표 당시만 해도 이 은하는 역대 가장 오래된 은하로 주목받았지만 ‘7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허블우주망원경으로 2015년 발견한 빅뱅 4억년 후의 은하 GN-z11.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제임스웹이 등장하기 이전에 천문학계가 공인한 ‘가장 오래된 은하’는 2015년 허블우주망원경을 이용해 큰곰자리에서 발견한 빅뱅 4억년 후의 은하
GN-z11이었다. 이 은하와의 거리는 320억광년이다.
그러나 제임스웹이 등장하자마자 사정이 급변했다. 지난달 관측에서만 ‘가장 오래된 은하’의 주인공이 벌써 ‘3억년→2억9천만년→2억3500만년’으로 3차례나 손바뀜을 했다. 이 은하들의 발견 소식에 하버드-스미소니언천체물리학센터가 찾아낸 ‘GLASS-z11’은 허블이 발견한 ‘가장 오래된 은하’와 비슷한 시기의 것임에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할 정도였다.
은하의 나이는 빛의 적색편이 정도(z값)를 토대로 추정한다. 빛이 멀어질수록 파장이 길어지면서 붉은색을 띠는 것에 착안해 만든 측정 방법이다. 적색편이 값이 높을수록 멀리 있는, 오래된 별이다. 적색편이 값이 10이라는 건 맨처음 별에서 나온 빛의 파장이 10배나 길어졌다는 걸 뜻한다. 값이 10을 넘으면 우주 나이가 10억년이 안 된 시점에서 방출된 빛이다. 이런 은하는 적외선 스펙트럼에서만 관측할 수 있다.
빛은 우리 눈에서 멀어질수록 파장이 길어지며 붉은색을 띠고(적색편이), 가까워질수록 파장이 짧아지며 파란색이 짙어진다(청색편이). 위키미디어 코먼스
허블망원경이 발견한 GN-z11은 적색편이 값이 11이었다. 제임스웹 이전엔 관측한 은하 중 적색편이 값이 10을 넘은 건 이 은하가 유일했다.
이번에 발견한 빅뱅 2억3500만년 후의 은하 ‘CEERS-93316’의 적색편이 값은 16.7이다. 빅뱅 2억9천만년 후인 메이지은하의 값은 14, 빅뱅 3억년 후인 ‘GLASS-z13’의 값은 13이다.
허블은 1.6㎛(1㎛=100만분의 1m), 제임스웹의 근적외선카메라는 5㎛, 중적외선기기는 28㎛의 적외선 파장까지 잡아낼 수 있다. 제임스웹이 허블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 멀리 있는 천체를 포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에든버러대 연구를 이끈 칼럼 도넌 연구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정말 놀랍다”며 “이번 관측 결과는 이 놀라운 장비를 사용해 앞으로 몇주, 몇달, 몇년 안에 이뤄질 많은 중요한 관찰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7월12일 처음으로 공개한 관측 사진 ‘SMACS 0723’ 은하단. 131억년 전의 은하가 포함돼 있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이를 예고라도 하듯 미주리대의 하오징 얀 교수(천체물리학)는 지난달 23일 ‘아카이브’에 깜짝 놀랄 만한 관측 결과를 제시했다.
초기 공개 데이터(ERO)를 분석한 결과, 적색편이값이 20인 은하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빅뱅이 일어나고 1억8천만년이 안 돼 생겨난 은하다. 1억8천만년은 천문학자들이 생각하는 은하 탄생 시점보다 훨씬 앞선다. 얀 교수는 ‘뉴사이언티스트’에 “전혀 예상밖의 결과로 이전의 모든 예측과 상충된다”며 더는 상세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영국 맨체스터대 네이선 애덤스 교수는 “제임스웹의 관측 능력은 적색편이값 20도 잡아낼 수 있지만, 실제로 그것이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며 “극단적인 결과는 여러 사람의 면밀한 관찰과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발표된 제임스웹의 모든 관측 기록들은 아직 학계의 엄격한 검토를 거치지 않았다. 천문학계로부터 공인받지는 못한 상태다. 추후 연구가 보강되고 검증 작업도 추가돼야 한다. 지난 4월 하버드&스미소니언천체물리학센터 연구진이 당시 ‘가장 오래된 은하’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던 ‘
은하 HD1’도 검증을 기다리고 있는 은하 후보다. HD1은 빅뱅 3억4천만년 후의 은하로, 적색편이값은 13.27이다.
칼럼 도넌 연구원은 “은하 ‘CEERS-93316’의 적색편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선 분광법을 사용한 후속 관측이 필요하다”며 “아직은 은하 후보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은하가 ‘가장 오래된 은하’로 인정받더라도 그 이름을 유지하는 날이 오래갈 것같지는 않다. 초기 관측 데이터에서부터 쏟아지는 놀라운 관측 결과들이 천문학의 새로운 혁명을 예고하고 있으니 말이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