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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미래

호열자 배경 ‘토지’ 생사 가르는 정보판별능력

등록 2020-02-09 19:09수정 2020-02-10 10:46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는 전염병이 창궐할 때 정보를 판별하는 힘에 따라 운명이 엇갈리는 사례로 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최참판 일가는 권력과 부를 가졌지만 괴질의 정체를 모른 채 죽음을 피하지 못한다. 반면 서울을 드나들며 호열자(콜레라)가 세균을 통해 전염된다는 정보를 안 조준구는 음식물을 끓여 먹으며 살아남는다. 해결책과 정체를 모르는 불안한 상황일수록 새로운 정보에 대한 욕구는 크다. 신종 코로나 관련 가짜 뉴스가 창궐하는 배경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허위 정보가 심각하다며 ‘정보전염병(infodemic)’을 경고했다. 의학적 대응에 분주한 국제기구가 허위 정보가 보건을 위협하는 상황마저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인포데믹은 정보(information )와 전염병(epidemic)을 합성한 용어로, 왜곡 정보가 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 전염병처럼 빠르게 번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정보사회의 역기능을 일컫는 용어로 주로 루머나 왜곡 정보가 금융시장을 요동치게 할 때 사용되어 왔는데, 진짜 바이러스처럼 보건을 위협하는 상황이다. 바이러스 유래와 관련해 터무니없는 음모설이 나돌고 있고 건강을 위협할 엉터리 치료법이 난무하고 있다.

미심쩍은 정보를 검증하기 어느 때보다 간편해졌지만 왜곡 정보의 영향력과 위험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이번 사태는 거짓 정보를 가려내는 능력이 정보사회에서 핵심능력이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가짜뉴스는 변종 바이러스처럼 계속해서 진화하고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에 박멸이 어렵다.

그럴수록 장기적이고 본질적 접근이 요구된다. 사람은 원래 사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능력이 뛰어나지 못하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윈스턴 처칠은 “진실이 바지를 챙겨입기도 전에 거짓말은 지구를 반바퀴 돈다”고 말한 바 있다. 유발 하라리는 현생 인류의 ‘허구를 만들어내고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세상을 지배하게 만든 능력이라고 말한다. 똑똑한 도구와 늘어난 교육기간이 인간의 가짜 판별 능력엔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중요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온 정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은 본능이다. 그러나 그런 정보일수록 비판적으로 따져보고 수용하는 능력은 비본능적이다. 비판적 사고를 길러 정보판별 능력을 갖추는 게 생존을 위한 개인적·사회적 과제가 된 이유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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