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전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격차사회와 포용국가\' 주제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2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과 함께한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 ‘격차사회와 포용국가’ 세션에서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불평등 양상을 진단하고 복지를 늘리기 위한 확장적 재정정책 활용 등 다양한 해법을 논의했다.
좌장을 맡은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어떻게 하면 격차사회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토론의 문을 열었다. 조 원장은 “20대80이었던 사회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1대99의 사회로 가면서 전세계적으로 격차가 더 벌어져가는 우울한 현실에 처해 있다”며 “경제, 사회, 환경 문제가 ‘지속가능’의 기본적인 주제일 텐데 사회분야에서는 격차해소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데 중요한 고리”라고 말했다.
로버트 페이지 영국 버밍엄대학교 사회정책학 교수.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기조연설에 나선 로버트 페이지 영국 버밍엄대학교 사회정책학 교수는 “불평등은 영국과 미국에서도 큰 이슈”라며 발표를 시작했다. 페이지 교수는 ‘기회의 평등’에 집중해 영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불평등 논의 논의를 소개했다. 그는 “영국에서는 사회 시설을 국유화 해야 할지, 자본을 통제하지 않고도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고, “예술과 스포츠 등의 분야에서는 능력이 탁월한 개인은 어디까지가 운이고, 수용가능한 노력은 무엇인지, 어디부터는 보정되어야 할 차이인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미래에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영국의 노동당의 1974년 정당선언문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1974년 선언문에는 ‘불가역적인 부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는 부분이 있다”며 “어느 정도까지 평등한 경제 정책을 펼칠 수 있을지, 복지와 관련된 사회 서비스는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한다”고 말했다.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국의 사회격차 및 해소방안에 대해 이야기한 김태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현실’을 진단했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은 외형상 빠르게 발전했지만, 수도권·비수도권 격차, 도·농간 격차, 교육 격차 등 내부적으로는 아직 치유되지 못한 사회적 문제들이 여럿 발생하고 있다”며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그래프를 보면 지난해 1분위의 소득은 많이 떨어졌지만 5분위는 저소득층에 비해 많이 올라서 격차가 커졌다. 노인 빈곤이 죄송할 정도로 상당히 높게 나타나고 있고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점이 지난해 소득분배 악화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해법으로 복지확대를 주문하며 “국가는 가난하더라도 국민은 가난하지 않도록, 국가가 과감히 책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를 늘리는 것은 현재 빚을 후세대에 떠넘기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일본을 보면 우리보다 국가채무비율이 훨씬 높다”며 “이런 모습을 보면 ‘국가가 가난한게 맞나 국민이 가난한게 맞나’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재원 확보에 대한 반론에는 “또 다른 사회보장을 준비하고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라는 것이 시대적 요구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명중 닛세이기초연구소 준주임연구원.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명중 닛세이기초연구소 준주임연구원은 일본의 불평등에 대해 설명하며 “노조원 비율 감소와 역할 변화”를 짚었다. 그는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가 증가하면서 소득격차가 커지고 있고 일본의 빈곤율은 선진국 중 가장 높다”고 일본의 현실을 설명했다. 김 연구원이 발표에서 제시한 ‘노조원 수 동향’ 그래프를 보면 1990년대 이후 노조가입자는 줄어드는 추세이고, 같은 기간 비정규직 노조원 숫자는 매년 빠르게 늘고 있다. 김 연구원은 이에 대해 “노조 가입자들의 연령이 높아지면서 청년의 임금 증가보다는 고용안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24일 오전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격차사회와 포용국가\' 주제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각국의 현실을 설명한 발제가 끝난 뒤 첫 번째 토론자로 나선 주은선 경기대학교 사회복지전공 부교수도 “복지 확대”를 말했다. 주 교수는 “아동수당처럼 넓은 범위의 대상에게 낮은 급여를 주는 정책이 불평등을 제어하는데 여전히 한계가 있다”며 “이를 넘어서는 복지 발전이 필요하다. 재원의 누진성 강화 조치를 고민하는 등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제안했다. 노인빈곤과 관련해서는 “중장년에서 일어나는 실업, 파산, 저소득 문제가 심각한데 여기에 대응하는게 노인빈곤 대응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홍식 인하대하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윤 교수는 “일본의 수출규제로 외국에서 부품을 수입하는 대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과 생존을 할 수 없게 됐다”며 “국내 산업을 강화하는 방식의 경제발전이 성공하면 재벌 대기업 중심의 성장체제를 뒤집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4일 오전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호텔에서 열린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에서 \'격차사회와 포용국가\' 주제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김재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원장은 경제는 크게 성장했지만 국민이 행복하지 않은 현실을 지적하며 ‘시민의 각성’을 촉구했다. 김 부원장은 “한국전쟁 이후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이뤄서 짧은 기간에 세계 11위 경제대국이 됐지만 유엔이 발표하는 행복지수를 보면 54위에 머무르고 있다”며 “주말없이 1년 365일 일을 하며 한국사회를 만드는 원동력 됐지만 왜 자살율이 높고 불행한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행복지수 1,2,3위는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로 모두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이들 나라는 경제위기가 찾아왔을 때 성장률이 다른 나라보다 높은데 복지제도가 국민들을 받쳐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여전히 압축적 성장의 달콤한 환상에 빠져서 분배를 하면 성장을 희생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불평등 악화를 막도록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문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도 ‘울분’이라는 키워드로 불평등과 관련한 정신적 문제를 짚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의 ‘울분 연구’를 언급하며 “만성 울분을 느끼는데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공정성과 관련한 신념이 무너지고 사회가 불평등하다는 생각이 드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공정한 방식으로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지고 있는데, 이런 인식이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빈곤감을 느끼면 당장 손에 들 수 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과장일수 있지만 빈곤이라는 정서는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구조가 만들어 낸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