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조강연 리프킨 미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 김은미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마르투치 WHO 아·태 환경보건센터장
“불평등 심화·생태적 위험성 두 개의 위기에 빠진 세계 새로운 에너지 문명 전환 시급 태양은 청구서를 보낸 일이 없다” 김은미 “기술 플랫폼으로 격차 해소” 마르투치 “재활용 통한 순환경제를”
제10회 아시아미래포럼 참가자들이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호텔에서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의 영상 강연을 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9 아시아미래포럼 첫날인 23일 ‘두 개의 위기,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는 주제로 영상 메시지를 전한 제러미 리프킨 미국 경제동향연구재단 이사장은 “200년 동안 유지됐던 화석연료 문명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했지만 새로운 전환은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리프킨 이사장은 “10여년 안에 인류 문명을 전환해야 한다”는 유엔 기후 패널 과학자들의 주장을 전하며 “인류와 지구 생태계를 구하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글로벌 경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칼날처럼 짧은 시간”이라고 했다.
리프킨 이사장은 저성장에 따른 실업과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적 위험성을 ‘두 개의 위기’로 상정했다. 그는 “오랫동안 축적된 동식물의 사체를 석탄·석유라는 형태로 마구잡이로 사용해왔다. 이렇게 산업화한 방식으로 인류의 부를 축적해온 것”이라며 “하지만 이 시기 동안 화석연료를 태우며 너무 많은 이산화탄소를 대기권에 배출했고 지구를 위협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석유와 석탄으로 돌아가던 산업화 시대가 저물고 있는데다 화석연료의 부산물이 지구의 생존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리프킨 이사장은 “탄소 기반 문명에서 탈출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며 “개발도상국과 선진국 모두 신속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인류가 화석연료를 대체할 ‘디지털 3차 산업혁명’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며 희망을 이야기했다. 인공지능을 강조하는 4차 산업혁명은 정보만 있고 기반시설과 관련 없는 “가상의 마케팅 용어”라고 일축한 그는 “1차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2차는 전기, 3차는 디지털이 대표한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형인 3차 산업혁명의 증거는 새로운 의사소통, 에너지, 운송수단이다. 리프킨 이사장은 스마트폰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세계인이 하나로 연결”됐고 “수백만명의 사람, 가정, 기업 그리고 정부까지 자력으로 태양열·풍력 에너지를 사는 곳 근처에서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된 전기는 전기차와 수소전지차를 움직인다. 화석연료 없이도 살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화석연료가 중앙집권형 경제체제를 구축했다고 분석했다. “화석연료와 원자력발전은 추출·운반·정제·배송에 비용이 많이 드는 에너지여서 투자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수직적으로 규모를 확장”했으며 “1·2차 산업혁명에서 만들어진 플랫폼은 인류가 더 큰 집단들 속에서 에너지를 관리하고 경제활동이 가능하도록 국가 차원의 시장을 구성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개인이 전기를 생산하는 3차 산업혁명의 기반 구조는 중앙집권이 아닌 분권형이다. 한계비용이 거의 0으로 수렴되는 디지털 세계에선 전혀 다른 사업 모델이 출현한다. 리프킨은 “한국의 대중가수 싸이는 디지털로 노래와 춤을 만들고, 3개월 안에 30억명의 관객을 불러들이는 데 거의 아무런 고정비용도 들지 않았고 0에 가까운 한계비용이 발생했다”며 “이게 바로 혁명”이라고 했다. 리프킨의 ‘세계적 위기 탈출’ 처방은 자연스레 에너지 전환으로 연결된다. 그는 “태양열과 풍력 관련 고정비용은 원자력, 석유, 천연가스의 비용보다도 훨씬 저렴하다”며 “태양은 우리에게 청구서를 보낸 적이 없다”고 했다.“한국은 여전히 중앙집권화돼 있고 옛날 방식의 에너지 체계인 원자력·화석연료 시스템을 운영 중인데, 곧 쓸모없다는 게 판명 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화석연료 관련 기업이 과대평가돼 있는 상태를 ‘탄소 거품’이라고 이름 붙이며 “태양에너지와 풍력에너지 가격의 급락으로 2028년까지 화석연료 문명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를 인위적으로 거스르고 대전환을 거부한다면 인류 절멸의 대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리프킨 이사장은 “만약 우리가 15년 안에 변화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면, 80년 후엔 지구에서 인류의 생존에 위협이 되는 환경적 재앙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전환의 방책은 기조강연자로 나선 김은미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가 제시했다. ‘유엔 글로벌 지속가능성 보고서 2019’ 작성에 참여한 김 교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적 노력’이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기후변화 심화 △생물 다양성 감소 △세계적 불평등 강화 △빈곤퇴치의 퇴행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엔 글로벌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는 이를 포함한 17개 과제를 선정했는데 기근 퇴치가 환경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것처럼 과제 달성이 상충할 가능성도 있다. 김 교수는 “칸막이식 사고에서 벗어나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국가 내외부에 존재하는 불평등 문제도 주목하며 세계 모든 사람이 기술이 주는 혜택에 접근할 수 있는 기술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했다. 잘사는 나라(북반구)와 못사는 나라(남반구) 간의 기술 격차를 줄이기 위해 남반구의 과학기술 인재 양성도 강조했다. 빈곤 문제의 주요 피해자인 여성에 대한 교육, 그리고 성평등도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중요 과제라고 했다.
또 다른 기조강연자인 마르코 마르투치 세계보건기구(WHO) 아시아태평양환경보건센터장은 ‘환경 위기와 건강 불평등’이라는 주제로 환경문제에 따른 지구적 불평등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전세계 사망의 23%가 공기·수자원·토양 오염 등 환경문제에서 비롯된다고 했고 특히 지역적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했다. 그가 보여준 그래픽에선 인도·아프리카 대륙의 사망률이 붉은색으로 강조돼 있었다. 폐기물 수출도 여전하다. 마르투치 센터장은 “유해한 독성물질이 고임금 국가에서 저임금 국가로 옮겨가고 있다”며 우려했다. 그는 재활용이 강조되는 ‘순환경제’를 해법으로 내놓았다. “순환경제로 인해서 인간 활동에 따른 여파와 천연자원·원자재에 따른 악영향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 제러미 리프킨 영상 특별강연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