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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과학 미래

로봇은 인간의 사회성을 강화할까, 파괴할까?

등록 2019-03-07 15:44수정 2019-04-05 10:04

인간과 휴머노이드 인공지능과의 감정적 관계를 그린 영화 '엑스 마키나'
인간과 휴머노이드 인공지능과의 감정적 관계를 그린 영화 '엑스 마키나'
[구본권의 사람과디지털]
사랑, 우정, 협력, 교육은 인간의 본질적 사회성
수십만년 동안 형성된 인간본질, 로봇 등장으로 ‘위기’
예일대 교수 “로봇과 살아갈, 새로운 사회협약 필요”
로봇은 인간성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까? 최근 미국 대학에서 이뤄진 실험들은 인간성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1. 소규모 그룹들에게 인간형(휴머노이드) 로봇과 함께 가상공간에서 철로를 건설하는 과제를 주었다. 하나의 그룹은 세 사람과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구성돼, 사각테이블에 둘러 앉아 태블릿을 통해 공동과제를 수행하도록 요구됐다. 로봇은 종종 실수를 하도록 설계됐고, 그때마다 “얘들아, 미안해. 이번에 내가 실수를 했어”라고 말하게 돼 있었다. 로봇은 “믿기 어려울 수 있지만, 로봇도 실수를 한단다”라고 재치있는 말을 덧붙였다. 이 로봇은 집단내 의사소통을 개선하고 더 많이 웃게 만듦으로서 개선된 실적을 보였다. 한편 단조로운 답변만을 하도록 한 로봇과 함께 작업한 대조집단의 성과는 그에 비해 낮았다.

#2. 4000명을 20명씩의 그룹으로 나누고 그룹내에 각 개인에게 친구를 할당하는 가상실험을 진행했다. 과업이 주어졌는데 각 개인은 3가지 색깔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자신의 색깔이 할당된 친구의 색깔과 일치하지 않았다. 일부 그룹엔 종종 실수를 하는 로봇이 구성원으로 포함됐다. 로봇과 직접 연결된 사람들은 훨씬 유연성을 보였고 개인보다 그룹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했다. 유연성은 네트워크 전체로 확산돼 로봇과 직접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실수하는 로봇과 과업을 수행한 그룹은 실수않는 로봇과 함께 한 그룹보다 실적이 뛰어났다. 로봇은 사람들이 서로 돕는 일을 촉진했다.

#3. 온라인 게임에서 수천명에게 게임머니를 지급한 뒤 이용자들이 머니를 보유하거나 기부할 수 있게 했다. 이용자가 누군가에게 머니를 기부하면 온라인게임사가 그만큼을 보태 기부받는 금액을 2배로 만드는 매칭기부였다. 게임 초반에는 이용자의 3분의 2가 이타적으로 행동했다. 누군가에게 기부하면 다음번에는 기부받은 사람도 기부에 참여하는 결과로 이어져, 전체적인 호혜 구조가 형성됐다. 이 게임에 사람과 구별할 수 없는 로봇을 투입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도록 했다. 자신의 머니는 보유하고 상대로부터 기부를 받기만 하는, ‘무임승차’ 규범을 지닌 로봇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도 로봇의 행태를 닮아갔다. 결국 인간 이용자들은 서로 협력하기를 중지했다. 이기적 로봇은 이타적 사람들을 이기적으로 행동하도록 변화시켰다.

예일대 사회학과 니컬러스 크리스태키스 교수
예일대 사회학과 니컬러스 크리스태키스 교수
위 사례는 미국 예일대학의 니컬러스 크리스태키스 교수(사회학)가 진행한 일련의 심리실험이다. 크리스태키스 교수는 미국의 월간지 <디 애틀랜틱> 4월호에 위의 실험결과가 포함된 기고(‘인공지능이 우리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실어, 인공지능이 인간성에 끼치는 영향을 조명했다. 의학과 공중보건학 학위도 있는 크리스태키스는 예일대에서 ‘인간성 연구실(Human Nature Lab)’을 운영하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사람과 사회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오랫동안 공상과학 소설과 영화의 단골 주제였다. 그러나, 최근 인공지능과 로봇은 인류가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해온 인간성에 대한 전례없는 영향력을 행사해, 인간성을 변화시키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인간성은 몇 차례 중대한 변화의 고비를 거쳤다. 1만여년 전 도시의 출현으로, 사람들은 제한된 관계의 유목적 삶을 떠나 높은 인구밀도의 복잡한 사회적 삶을 살게 됐다. 근대 이후 인쇄술, 통신 기술의 발전은 사회의 정보유통과 소통 구조를 혁신시켰다. 이런 혁신이 인류의 삶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지만, 인간성과 인간행동의 근본적 영역에 대한 영향은 크지 않았다.

 <네이처> 2017년 5월호엔 자율형 로봇이 인간의 사회성과 협력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관한  크리스태키스 교수의 논문이 실렸다.
<네이처> 2017년 5월호엔 자율형 로봇이 인간의 사회성과 협력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관한 크리스태키스 교수의 논문이 실렸다.
크리스태키스 교수가 ‘사회적 도구 모음(social suite)’이라고 부르는 사랑, 우정, 협력, 교육은 인류가 수십만년 진화과정에서 발달시켜온, 인간의 핵심적 능력이다. 이러한 인간의 사회적 속성은 도시화나 기술과 도구의 사용에도 거의 달라지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유지되어온 인류 공통의 자질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최근 인공지능과 로봇이 등장해 사람들과 관계맺기를 시작하면서 인간의 ‘사회적 도구 모음’ 또한 근본적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위 실험 사례에서 보듯 로봇은 인간의 사회적 속성을 강화할 수도, 파괴할 수도 있다. 더욱이 페이스북과 같은 사회관계망을 이용해 누군가 의도적으로 편향된 정보를 퍼뜨려 특정한 반응을 유도하면 인간의 사회적 속성 또한 조작 대상이 될 수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은 사람이 기계와 관계맺는 방식만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과 관계 맺는 방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술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수많은 경쟁자들 속에서 지구 생태계의 지배자가 된 주요 배경은 높은 수준의 협력을 가능하게 한 소통과 공감능력이다. 사람처럼 행동하고 판단하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등장은 이러한 인간의 공감, 소통, 협력 능력과 작동방식에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크리스태키스는 “인공지능 이전까지는 사랑, 우정, 협력, 교육 능력이 인류 사회에 유전적으로 전달되어왔지만, 인간은 로봇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선천적 능력을 진화시킬 시간이 없다”며 “로봇으로 인해 인류 사회가 파괴되지 않도록 새로운 사회적 협약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한다.

구본권 선임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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