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후보들이 26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수도권 합동연설회에서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강병원·황명선·김용민 최고위원 후보, 홍영표·송영길·우원식 당 대표 후보, 전혜숙·서삼석·백혜련·김영배 최고위원 후보.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의 당심이 민심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일부 열혈 당원들의 의견은 ‘전체’ 당심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민주당 원내에서 자유로운 토론과 소신 발언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 과도한 집단행동을 벌이는 ‘일부’ 당원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공천을 위한 당내 경선 등에서 표적 후보를 떨어뜨리는 등의 파워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소통과 의사 교환을 위한 해법은 무엇인지 전문가들의 제언을 들었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책임연구원(더가능연구소 대표)은 “먼저 ‘행동파’ 지지자들의 ‘억울함’을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인신공격 수준의 의견표출 방식은 잘못된 방식이지만, 비판에 앞서 왜 이런 행동을 보이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는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20~30대 초선 의원들이 ‘반성문’을 쓰면서 선거 패인을 ‘조국 사태’와 재보선에서 후보를 내기 위한 ‘당헌·당규 개정 투표’로 꼽은 것은 “열성 지지자들을 기분 나쁘게 건드린 코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정 안건을 당원 투표에 부친 당 지도부와 애초 조국 전 장관 임명을 강행하며 검찰개혁을 ‘윤석열’ 대 ‘조국’의 대결로 몰아붙인 청와대·여당의 책임은 빠진 채 선택지가 별로 없었던 지지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는 “극단적인 성향의 일부 유권자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일부 극단적인 정치인을 살펴봐야지 먼저 당심-민심 분리부터 문제 삼긴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강성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과대대표되는 것은 어느 정당에서나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데 대체로 동의했다. 유재일 대전대 교수는 “미국도 열성 공화당원들의 눈치를 보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같은 노선을 비판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도 5%의 열성적 보수 당원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열성 당원들의 의견과 나머지 다수 당원의 생각이 멀어지는 현상은 한국과 같은 양당 체제에서 더 많이 발생하기 쉽다. 두개의 거대 정당만이 힘을 갖다 보니 정당 한곳에서 대변해야 하는 계층이 너무 다양화되며 당의 노선을 선명하게 정하는 게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임성호 경희대 교수는 “한국의 정당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표심을 얻으려는 ‘캐치올 파티’(포괄정당)를 지향한다”며 “수권 능력을 갖춘 공당이 되기 위해 사회 일부 계층을 대변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국민 전체를 바라보면서 정당이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비대면 방식으로 열린 ‘제4차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염태영(왼쪽부터), 신동근, 양향자, 김종민, 노웅래 신임 최고위원이 꽃다발을 들어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제공
민주당은 1년도 채 남지 않은 대선에서 돌아선 민심을 돌려세워야 하는 절박한 처지다. 학자들은 민주당 재집권을 위해선 외부로 표출되는 강성 당원들의 의견을 ‘전부’가 아닌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강성 당원들과 의견이 다른 여러 목소리를 당이 어떤 방식으로 담아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서복경 책임연구원과 지병근 교수는 당원을 중심으로 의견 수렴하는 과정에서 장기적인 변화를 주문했다. 서 책임연구원은 “당내에서 핵심적으로 활동하는 당원뿐 아니라 나머지 의견이 다른 다수의 당원도 초대해서 말할 공간을 열어줘야 한다”며 “이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당원들의 의견이 100%가 아니라는 것을 당내에 확인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과정을 제도화해 당원들의 의견을 서로 청취하며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도록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 교수는 “강성 지지자들에게 눌려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온건한 당원들에게도 말할 기회를 공평하게 배분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가령 한 사람이 게시글을 50번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너무 지나친 선동적인 글은 중앙당 차원에서 본인의 동의를 얻어 내리게 한다는 등의 다양한 방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것은 소신 발언을 하는 사람들의 방패가 되어주는 오피니언 리더들”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임성호 교수와 유재일 교수는 민주당이 국민 여론을 더 많이 반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성호 교수는 “국민에게 좀 더 문호를 개방하면 권리당원도 영향을 받을 테고, 그러면 일부의 과도한 목소리가 희석될 것”이라고 짚었다. 유재일 교수도 “당 지도부가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며 “특히 대선을 앞두고 있어 일반 당원이나 국민들의 의견을 더 많이 들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16년 분당 뒤 ‘친문재인계’ 일색으로 꾸려졌던 당 지도부의 리더십이 이제 변화의 기로에 섰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는 “보궐선거 결과는 더는 일부 열성파가 주도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인데 처음엔 이에 부응하려고 하다가 유야무야되고 있다”며 “쇄신파가 결집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당 밖의 세력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지지 그룹을 만들어내는 일밖엔 답이 없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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