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텨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맞고 나서 생각해보니 훈육을 위해서 치는 회초리가 아니라 화가 나서 때리는 몽둥이 찜질이었다. 야당 때는 그렇게 도덕적·정치적으로 정밀한 잣대를 들이대더니 정부 여당이 되고 나서는 자기들에게는 봄기운처럼, 남한테는 추상같이 대한다는 느낌을 받은 국민들이 대실망한 거다.”
지난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얼얼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1년 만에 무섭게 변한 민심을 절감했기에 그는 “엄청난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재보선 직후 터져나온 2030 초선 의원들의 반성문은 그 변화의 신호탄이었기에 박 의원은 “비난과 질책을 각오한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며 그들의 의견에 힘을 실었다.
재보선 참패에서 비롯된 반성·쇄신론에 강성 당원들은 반발하고 있지만, 박 의원은 집권을 목표로 한다면 “국민상식과 눈높이가 우리의 기준이어야 한다”고 했고 ”당심과 민심이 틀어지는 구조라면 이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2030 초선 의원들을 향한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에는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거나 내 의견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입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 당장 관둬야 한다”고 했다. 재보선 패인으로 거론되는 ‘조국 사태’에 대해서는 “야당 시절에 공직자들의 행동거지와 관련해 민주당이 중심이 돼 기준을 세웠던 일들”이라며 “국민들의 ‘내로남불’ 비판에 대해 뼈아프게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1시간 동안 진행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재보선 평가와 향후 민주당 쇄신 방향 등에 대해 본인의 소신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조국 전 장관을 지키는 일이 왜 검찰개혁인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기분이 어땠나.
“이게 어느 정도의 패배냐… 우리는 회초리인 줄 알았는데 거의 몽둥이로 맞은 거다. 이렇게 서울에서 5개 동을 제외하고 다 질 수 있나. 거의 전무후무한 일이다. 국회의원 선거였으면 다 떨어졌다는 얘기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국민들의 엄청난 실망·배신감·분노가 있었다. 훈육을 위해서 치는 회초리가 아니라 화가 나서 때리는 몽둥이 찜질이라는 느낌이다. 맞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렇다. 정말 엄청난 태도 변화가 필요한 거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그러고 있나. 사실 국민의힘도 2017년 대선 지고 나서 계속 헤맸다. 말로는 반성한다고 했지만 같은 세력, 같은 인물, 같은 구도, 똑같은 주장, ‘박근혜도 불쌍하다’고 계속 주장하면서 지금까지 왔던 거다. 그런데 우리가 엄청난 패배 얻은 뒤에 같은 인물로 같은 세력으로 똑같은 주장으로 입으로만 반성한다고 하는 거면, 진짜 큰일이다. 지난번에 깎았던 뼈 어디 갔냐 해서 뼈를 또 깎고 하는 건, 국민들이 동의 안 할 것 같다. 이것이 새로운 투표 성향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가장 주요한 패인은 무엇인가.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이니까 민생 무능에 대한 철저한 심판이라고 본다. 민생 무능에 대한 분노, 내로남불에 대한 실망 이런 부분들이다. 정치인들이나 정당이 실수할 수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가 이전에 보여줬던 것과 다른 기준, 다른 잣대 그야말로 내로남불, 위선이니까. 야당 때는 그렇게 도덕적·정치적으로 정밀한 잣대를 들이대더니 정부 여당이 되고 나서는 그런 면에서 자기들에게는 봄기운처럼 하고 남한테는 추상같이 대하고. 이런 느낌을 받으면서 국민들이 대실망한 거다.”
—초·재선에서 3선까지 쇄신을 논의했지만, 구체적인 대안은 찾기 힘들다는 비판이 나온다.
“있는 대로 다 얘기가 나와야 할 거 아닌가. 길거리에서 무슨 얘기 들었는지까지. 그래서 제가 2030 초선 5명의 의견 표명을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한 거다. 솔직히 말하면 재선·3선 입장문 등 최종 논의 결과 보면, 착한 모범생의 일기다. ‘오늘은 엄마의 말을 잘 듣지 못했다. 내일부턴 잘 들어야겠다’ 이 수준이다. 뭘 잘못했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지금 우린 넘어진 자리를 딛고 일어서야 할 손으로 계속 남탓을 한다. ‘언론 탓이야, 검찰 탓이야, 야당 탓이야, 거짓말 탓이야.’ 이렇게 얘기하면 영원히 못 일어나고 땅바닥에 엎어져 있는 거다. 구체적으로 얘기했어야 한다.”
—이른바 ‘조국 사태'에 대한 평가 등에 대해서도 당내 의견이 갈리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민주당에서 조국이란 단어는 금기어인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웠던 이슈였다. 다만 초선의원들이 다른 여러 사안도 짚었는데 조국 전 장관 이름을 넣었나 안 넣었나로 논란이 되면 제한된 반성이 되기 때문에 이렇게 가면 안 된다. (초선 의원들이 당을) 진짜 사랑하니까 (조국 사태도 반성해야 한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는 거다. 좋아하고 사랑하니 그렇게 얘기하지, 뭐 좋은 게 있다고 남 싫은 얘기를 하겠나.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게 당에서 없어지면 큰일이다. 제한 없는 토론이 필요하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텨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지금도 당내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조국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나.
“‘대한민국의 공직자는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바라봤을 때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다. 조국 전 장관 관련 문제 제기들은 사실은 우리가 야당 시절에 공직자 청문회에서 혹은 공직자들의 행동거지와 관련해 기준을 세웠던 일들이었다. 민주당이 중심이 돼 기준을 세웠던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걸로 국민들이 ‘내로남불하는 거 아니야? 자기편에 대해서만?’이라고 하는 걸 뼈아프게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조국 전 장관을 지키는 일이 왜 검찰개혁인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격하는 일이 왜 검찰개혁인가. 국민들께서는 납득을 못 하는 거다. 제도를 바꿔 국민 인권을 지키고 검찰의 무분별한 권력 남용을 막아내고, 자의적 수사 막아내겠다는 거 아닌가. 그걸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조국 전 장관에 제기된 여러 공직자의 기준과 잣대, 이런 문제들을 다 ‘아니다, 잘못 알고 있다, 오해다’ 이렇게 얘기하는 걸로 왜 시간을 우리가 보내야 했는지. 국민들은 검찰개혁이라는 방향은 동의했다. 의원들도 동의하고. 개인의 문제, 사람의 문제로 갇히게 되면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본다.”
“소통 막는 ‘문자 폭탄’…욕 먹더라도 할 말 해야”
—최근 2030 초선의원들의 반성에 대한 일부 강성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 행위를 어떻게 보나?
“소통의 방식이 틀렸다. 처음에 당원들의 문자나 댓글 등도 의견 표현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이런 권리당원들, 적극적 지지층, 당원들의 문자나 댓글이 사실은 일방적인 얘기로 끝나버린다. 소통이 안 되는 거다. 다양한 의견의 표출이나 공론장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사실 그런 눈치를 보고 댓글을 보고 사안을 판단하면 안 된다. 그럼 점점 더 센 주장, 점점 더 날선 주장들만 당 내부에서 커질 수밖에 없다. 정치인들이 용기를 내서 욕을 좀 먹고 문자 폭탄 받아도 할 말 하고 할 일 하고 그래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용기있게 얘기해야 한다.”
—조응천 의원은 ‘문자 폭탄 자제’를 당이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2030 초선 5인의 용기에 대해서 경의를 표한다고 했을 때 나도 그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한 거다. 그리고 문자 보내시는 분들과 대화도 하고 싶다. 어떨 때는 그분들이 왜곡된 정보 가지고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나도 지난 5년 내내 문자 많이 받은 사람 중의 하나다. 문자를 받는다고 박용진이 달라지진 않는다. 그러나 굉장히 화날 때가 있었다. 일방적 욕설, 동의되지 않는 잘못된 정보를 기반으로 한 문자 이런 것들. 다시 말씀드리는데 이게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일 수 있는데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게 하거나 내 의견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상대 입을 막기 위한 것을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당장 관두셔야 한다.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민주 사회와 민주 정당은 그런 게 아니다. 박용진에 대해 동의하지 않으면 여러 방법 있을 수 있다. 그분들이 모인 커뮤니티에 초청해서 오라고 하는 거다. 국민들과 당원들이 정치인에게 모진 소리 하고 비판하겠다는데 들어야죠. 최소한의 것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성공, 그리고 정권 재창출이라는 목표가 같다면 서로 교감하고 소통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고 제안하고 싶다.”
—이번 선거 결과를 ‘당심’과 ‘민심’의 괴리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선거 결과는 민주당의 책임이고 더 좁히면 지도부의 책임이다. 당심과 민심의 괴리로 보긴 그렇다. 다만, 당심과 민심이 같이 가기 위한 여러가지가 있다. 당원들로서는 속상하고 억울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맞다고 본다. 전제가 뭐냐면 집권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대한민국의 중심정당이고 책임 정당이다. 4·19 혁명 이후 어수선한 상황, 외환위기 그 힘들었던 상황, 박근혜 국정농단 탄핵 이후 혼란했던 상황에 민주당이 국민과 함께 대한민국의 중심정당으로 책임져왔다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지금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권여당인 상황에 국민의 뜻을 잘 받들고 앞으로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무조건 민심이 우리 한가운데, 국민 상식과 눈높이가 우리의 기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손댈 수 없는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당심과 민심이 구조적으로 틀어지게 만드는 구조가 있다면 그건 무조건 바꿔야 한다.”
“당대표? 인물이 그대로면 주장이라도 달라져야”
—원내대표 경선도 있고 5·2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함께 선출한다. 이번에도 ‘친문 지도부’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나.
“우리가 살려면 역동성을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다. 오늘도 재선 의원 몇몇 모여서 얘기 나누고 서로가 듣고 있는 정보를 공유해서 보면 꿈틀꿈틀한다. 뻔한 결과가 나오지 않길 바라고 있다. 구체적인 선거가 진행되고 있으니 특정 인물을 말하지 않겠다. 뻔한 인물, 뻔한 구도(로 가면) 뻔한 패배다. 원내대표 선거나 당대표 선거에서 국민들이 갖는 기대가 있을 거다. 의원들끼리 만나서 들어보면 공감하고 모아지고 있는 흐름은 있는 것 같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일반당원과 국민의 투표 반영 비율(현행 15%)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전당대회 때는 어려울 수 있지만 정치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 방향으로 가는 건 맞다고 본다. 우리가 ‘당직은 당원이 (뽑고) 공직은 국민이 (뽑는다)’가 원칙이었다. 이 안에서의 당원의 (의견이) 너무 많으면, 일반 국민들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으면 그 지도부가 너무 당내 정치로만 의견이 기울게 되면 국민들 바라보는 정치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이건 합의되면 조정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과 당원들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있다. 변화를 만들어낸다. 일부 계파, 일부의 세력이 좌지우지 못할 거라고 본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비주류 인사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고 대통령으로 만들고 성공하게 만드는 과정에 우리 당원들의 열정, 상식, 미래에 대한 낙관,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다고 본다. 지난번 서울·부산시장 후보 내자고 할 때 권리당원 중 23%밖에 투표 안 했다. 나머지 4분의 3의 당원들을 움직여야 한다.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고. ‘저 사람이랑 같이 하면 당이 변하겠네’ 일부의 몇몇 목소리 큰 세력의 의견만 반영되는 게 아니라 상식적인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겠구나 하는 걸 열어줘야 한다. 그걸 만들어내는 게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텨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이 당대표가 돼야 하나.
“뻔한 인물로는 뻔한 구도와 목소리밖에 나오지 않을 거라는 게 제 생각이다. (당권주자인 송영길·우원식·홍영표) 세 분 다 내온 목소리가 있다. 이분들이 지난해 이낙연 대표가 나오는 바람에 불출마해서 상당히 오랜 기간 얘기해왔다. 그런데 민주당으로서는 지금 비상상황이다. 회초리 아니고 몽둥이 맞았는데 똑같이 얘기할 수는 없다. 적어도 인물이 그대로면 목소리라도 주장이라도 달라지길 바란다. 가장 달라지려고, 적극적으로 책임지려고 하는 사람을 밀어줄 거다.”
—당의 쇄신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민주당이 뭘 얘기한다고 한들 국민들이 귀담아들으실 것 같지는 않다. 정말 간절하게 새로운 인물과 함께 새로운 노선, 전면적인 변화를 주창하는 게 필요하다. 정치에서 100마디 말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인물로 표현하는 거지. 그리고 그 인물이 무슨 주장하느냐가 중요하다. 토니 블레어가 아닌 노동당 8선 정도 되는 사람이 ‘제3의 길’ 얘기했다고 생각해보라. 재미없다. 전혀 아닌 거다. 새로운 가치를 담을 만한 인물이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다 잠자고 있을 때 깨어 있었던 인물, 변화에 대해서 얘기하고 외롭고 손해 보더라도 그 부분에 대해서 지적해오고 준비해왔던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별로 없다.”
—최근 민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가운데 가장 잘 한 건 뭔가.
“지금 우리가 가장 잘하고 있는 일? 어려운데…(웃음) 최근 우리 민주당에서 가장 잘한 일은 2030 초선 5명이 낸 입장문이다. 패배 이후에 민주당이 ‘어디서 넘어졌다는 걸 알고 있구나’라고 국민에 말씀드린 첫번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가 경의를 표했고 ‘(비판할 게 있으면) 저한테 문자 보내시라’고 한 거다. 전 이 사람들 편이라고. 100% 동의하고. 민주당 안에 이런 사람 많다. 천만다행으로 재선 모임 전체에서 공감한다고 했다.”
—잘못한 일은?
“부동산 등 민생문제와 관련해서 너무 우리가 일방적으로 했다. 시장에서의 반응, 국민이 느끼는 정책 변화에 있어서의 체감, 온도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채로 해서, 이번 선거에서 그 부분에 대한 비판과 질책도 상당히 담겨 있다고 본다. 국회 운영, 그리고 법 개정이라는 제도 개선의 문제에서 면밀히 좀 짚었어야 하는데. 야당이 도와주거나 대응하지 않거나 법안 심사 자체를 아예 거부하고 있었으니까 일방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럴 때 국민들은 ‘180석 줬으니 책임 있게 해라’ 이러는 거다. 그 ‘책임 있게’가 중요하다. 부작용, 문제점, 시장에서의 역반응 이런 것까지 다 점검하는 게 ‘책임 있게’다. 일방적으로 밀고 갈 수는 있으나 그 ‘책임 있게’ 하는 게 사실은 능력을 보여주는 거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