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하지 않았습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 이후 권력형 성폭력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전문가들에게 물었습니다. “2018년 ‘미투’ 이후 많은 법·제도가 개선됐지만 이것이 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직 고위 권력자들에 대해선 적용되지 않는다. 일종의 사각지대인 셈이다.” “피해자가 문제를 발고할 수 있는지, 발고하고 나면 제대로 처리되는지 여부가 이 문제의 핵심이다.” “누구나 권력자가 되면 심리적으로 둔감해질 수 있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추가 질문이 필요했습니다.
“도덕적인 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민주·진보 진영에서 성범죄가 되풀이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피해자를 공격하는 민주·진보 진영의 일부 유력자들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소셜 미디어 등 온라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2차 가해는 어떻게 봐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을 던진 것은 특정한 세력이나 정파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젠더 문제는 가장 중요한 갈등 전선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진지하고 깊이 있게 성찰하지 않으면 진정한 민주주의도 진보도 이룰 수 없습니다.
한겨레TV <내손안의 Q> 갈무리
제작진은 14년 전 시민운동권에서 벌어졌던 ‘시민의신문 사장 성폭력 사건’을 떠올렸습니다. 시민사회의 대표적 명망가였던 사장이 여성 활동가를 상습 성추행했던 사건입니다.
사태 해결의 열쇠는 이사진이 쥐고 있었지만, 그들은 옹호 또는 침묵으로 그를 비호했습니다. 이사진은 당시 시민운동에서 내로라하는 인사들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 중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도 들어 있었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많은 전문가가 인터뷰를 고사했습니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이고, 첨예한 갈등을 낳고 있는 이슈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 이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공론의 장에 올려야 합니다. ‘내 손안의 Q’ 특집 편이 작은 보탬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 김도성 피디 kdspd@hani.co.kr 김현정 피디 hope021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