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가운데)이 12일 오후 서훈 안보실장, 김유근 안보실 1차장, 김현종 안보실 2차장과 함께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선엽 씨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며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10일 밤 세상을 떠난 백선엽씨는 대한민국 건국에 공을 세운 ‘친일파’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를 두고 우리 사회를 양분해놓았다. 백씨의 장지는 대전현충원으로 결정됐다. 다만 국회엔 국립묘지에 안장된 친일파의 묘를 강제 이장하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어, 법안 처리가 시도될 경우 극한 대립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육군은 백씨가 숨진 지 하루 만인 11일 자료를 내어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이 10일 밤 향년 100세로 별세했다. 영결식은 15일 오전 7시30분 서울아산병원에서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열리며, 안장식은 11시30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육군장으로 거행한다”고 밝혔다. 관심을 모았던 매장지는 동작동 서울국립현충원이 아닌 대전현충원으로 정해졌다. 유족은 부인 노인숙씨, 아들 남혁·남홍씨, 딸 남희·남순씨 등이고,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이다.
백씨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정치권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날 선 공방이 이어졌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11일 백씨를 “진정한 국군의 아버지”라 이르며 “백 장군을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모시지 못한다면, 이게 나라인가”라고 되물었다.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도 12일 정부가 대전현충원에 안장하겠고 발표한 데 대해 “영웅의 마지막 쉴 자리조차 정쟁으로 몰아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종철 정의당 대변인은 “백선엽씨는 일본이 조선독립군 부대를 토벌하기 위해 세운 간도특설대에 소속되어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 장본인”이라며 현충원 안장 자체를 반대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냈고, 노영민 비서실장과 서훈 안보실장, 김유근 안보실 1차장 등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1920년 11월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태어난 백씨는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에서 특이한 삶의 궤적을 남겼다. 1940년 만주 봉천군관학교 9기로 입교한 백씨는 이후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에서 조선인 특수부대인 ‘간도특설대’의 장교가 되어 독립군을 무력으로 탄압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 행적을 문제 삼아 2009년 그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공식 단죄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 뒤인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터지자 그해 8월 국군 제1사단장으로 낙동강의 ‘다부동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고, 10월 한·미 양국군을 합쳐 가장 먼저 평양에 입성했다. 새로 부임하는 주한미군 사령관은 최근까지 백씨를 찾아가 한-미 동맹의 상징으로 추어올렸고, 보수세력은 그를 ‘구국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왔다. 백씨를 둘러싼 이런 인식 차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1945년 8월 ‘해방’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찾으려는 세력과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향한 이승만의 결단과 그 결과물인 1948년 8월 ‘건국’에 두려는 세력 사이의 대립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백씨는 생전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사죄나 유감 표명을 한 적이 없다. 1993년 일본에서 펴낸 자서전에서 간도특설대 경력에 대해 “한국인이 독립을 요구하며 싸우고 있는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의 책략에 그대로 끼인 모양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진지하게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진 것도 아닐 것”이라고 언급했을 뿐이다.
논란은 백씨의 사후에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친일파 파묘’ 등의 내용을 담은 국립묘지법 개정안 처리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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