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 3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2019년도 정부 예산안 원안과 기금운용계획안 원안 등을 안건으로 올렸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내년도 예산안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계제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말이다. 내년도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12월2일)을 이틀이나 넘겼지만, 여야가 예산 처리를 위한 본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 하고 있는 상황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민주당에선 지난해보다 하루라도 당겨 5일까지는 예산안을 처리하겠다고 별렀지만, 5일 처리는 사실상 물건너갔고 6, 7일 본회의 처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예산안 처리가 난항을 겪고 있는 세가지 이유를 짚어봤다.
1. 야3당 “예산안과 선거제도 개편안 함께 처리”
여야가 예산안 처리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 3당이 내년도 정부 예산안과 선거제도 개혁안을 정기국회에서 함께 처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3당은 이날 오후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뼈대로 하는 선거제도 개편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농성에 들어간다. 세 정당 중에서도 민주평화당이 가장 적극적으로 동시 처리 요구를 하고 있다. 민주평화당은 국회에서 천막농성을 하며 내년도 예산과 선거제 개편의 동시 처리에 사활을 거는 모양새다. 정의당은 전날 문희상 국회의장이 정부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했을 때 본회의장에 입장하는 등 다소 유보적인 입장이지만, 원칙적으로 내년도 예산안과 선거제도 개편이 함께 논의돼야 한다는 데 결을 같이 하고 있다.
민주당에선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이라고 맞서고 있다. “예산안을 볼모로 선거법을 관철시키는 것에 어느 국민도 동의하겠느냐”(홍영표 원내대표), “선거법이 예산 부수법안도 아닌데, 내년도 나라 살림살이 예산과 연결시키는 건 매우 부당한 일”(김태년 정책위의장)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각 당의 이해는 물론, 국회의원 300명(고 노회찬 의원 제외 299명) 모두의 이해가 얽혀있어, 통일보다 더 어려운 게 선거제도 개편”이라며 “이걸 예산안과 함께 처리하면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동시 처리는 물리적 시간으로도 가능하지 않다’는 게 민주당의 얘기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전날 선거제도 개편 방안 세가지를 제시하며, 이제부터 본격적 논의에 물꼬를 텄다. 정기국회 일정(9일 폐회)은 이제 6일 남짓 남았다. 그 사이 국회의원 299명의 이해가 얽힌 고차방정식을 풀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3당은 4일 국회 본청 로텐더홀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며 국회에서 공동 농성에 돌입했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2. 자유한국당 “세수 결손 4조원 대책 내놔라”
자유한국당이 예산안-선거제 개편안 동시 처리에 목소리를 높이는 야3당과 공조 행보에 나서지 않으면서, 예산심사가 전면 중단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또 하나의 걸림돌은 남아있다. 한국당이 유류세 인하 등으로 인한 정부 세수 4조원 결손 대책이 없다는 것을 문제 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 예결위 간사인 장제원 의원은 전날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애초 정부가 소소위 시작 전까지 해결 방안을 가져오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최소한의 신뢰도 헌신짝처럼 내버린 예산 폭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민주당에선 ‘일자리, 남북경제협력기금 등 핵심 예산의 조정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결손 대책을 내놓느냐’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민주당 간사인 조정식 의원은 같은 날 맞대응 기자간담회에서 “여러가지 예산 부수법안에 대해 논의해야 윤곽이 드러나는데 이런 게 현재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것만 떼서 얘기하자는 것은 코끼리 몸통은 보지 않고 다리만 만지고 끝나는 형태가 된다”고 말했다. 일자리·남북경제협력기금 등 큰 쟁점에 대해 원내대표단이 논의하며 최종적으로 마무리해야 할 사안인데, 한국당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야3당이 예산안과 선거제도 개편을 동시 처리해야 한다고 전선을 펴자, 한국당이 한발짝 뒤에서 지역예산을 최대한 챙기기 위해 세수 결손 4조원 대책을 지렛대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3. 예산 부수법안 논의도 제자리 걸음
여야가 줄다리기 끝에 내년도 예산 수정안을 만든다고 해도, 곧장 예산안 처리에 청신호가 켜지는 건 아니다. 내년 세입·세출과 직접 연관이 있는 세법 개정안 협상도 좀처럼 진척을 보지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 쟁점은 종합부동산세법과 법인세법, 부가가치세법 개정안 등이다. 여야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들은 지난 2·3일 비공식 조세소위를 열어 예산 부수법안을 비롯한 세법 개정안 담판에 나섰지만 입장차를 크게 좁히지 못 하고, 5일 논의를 다시 이어가기로 했다.
여야의 의견이 가장 첨예하게 갈리는 법은 종부세법 개정안이다. 민주당은 현재 0.5~2%인 종부세를 다주택자가 아닌 경우 세율을 최대 2.7%까지 올리고, 3주택자 이상 소유자엔 최대 3.2%의 세율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한국당은 종부세 인상에 반대해왔다.
법인세법의 경우, 자유한국당이 세율 인하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법인세 과표를 단순화하고 25%인 법인세 최고 세율을 20%로 낮추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여당은 법인세를 인상한지 1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다시 낮추는 건 일관성 측면에서 맞지 않는다고 맞서고 있다.
또 민주당은 부가가치세의 11%인 지방소비세 비율을 내년 15%, 2020년 21%로 올리려고 하고 있지만, 야당은 유류세 인하로 인한 4조원의 세수 추계 변동 대책과 연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여야 이견이 많은 쟁점 법안들은 상임위 차원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결국 여야 원내 지도부 담판을 통해 최종 조율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