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한국 지명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이 평창(Pyeongchang)에 가려다 엉뚱한 비행기에 올라타서 평양(Pyeongyang)에 내리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가 있었다. 우스개가 실화가 될까 걱정스럽다.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이 전세계를 상대로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고 홍보하고 나선 때문이다. 평창겨울올림픽 조직위원인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은 “평양올림픽”을 거론하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남북한 단일팀 반대 서한을 보냈다. 나 의원이 아이오시로부터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고 밝힌 22일, 아이오시 인터넷 누리집은 ‘평창(Pyeongchang)겨울올림픽 남북한 단일팀’ 소식을 온종일 헤드라인으로 전했다.
평창을 평양으로 뒤엎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집요하다. 이번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원에 나섰다. 그는 새해 기자회견에서 “주사파 세력이 장악한 문재인 정권의 평양올림픽”이라고 주장했다. 평창군민들은 지난 10년, 삼수 끝에 겨우 올림픽을 유치했다. 그런데 남한 보수정치인들의 도움으로 평양이 거저 23번째 겨울올림픽 유치 도시로 국제사회에 홍보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평양올림픽’ 홍보에 같은 당 소속인 평창군수만이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며 애처롭게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이오시에 엄청난 액수를 후원하는 국내외 글로벌 기업들도 자유한국당 덕에 졸지에 평양올림픽 파트너사가 될 판이다. 자유한국당은 유엔 대북제재 위반을 주장할 셈인가.
2014년 1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새해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다. 그 며칠 전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신년사에서 “북남관계 개선”을 언급했고, 박 대통령은 북핵 해결 등 한반도 평화 정착, 대북 인도적 지원 등 보따리를 마구 풀어냈다. 불과 11개월 전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했지만, 박 대통령은 과감했다. “국민들 중에는 통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지 않겠느냐, 굳이 통일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한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유일 영도체제’ 아래 새누리당은 갑작스러운 통일대박론을 ‘렬렬히’ 환영했다. <조선일보>는 발맞춰 ‘통일은 미래다’ 캠페인을 시작했고, 기업 등으로부터 2000억원이 넘는 통일나눔펀드를 거뒀다. 그런 <조선일보>가 이제는 자유한국당과 함께 ‘평양올림픽’ 홍보에 나섰다. 홍 대표의 새해 기자회견을 그대로 돌려주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위한 김정은의 시간벌기용 위장평화 공세와 정치쇼에 끌려다녔다”는 얘기다.
보수진영은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해법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강원도민과 평창군민이 어렵게 유치하고 준비한 국제대회를 ‘평양겨울올림픽’으로 역사에 남기려는 ‘이적행위’는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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