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형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장(단상 앞)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공론화 결과를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김지형 위원장은 20일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와 원전 축소 에너지 정책’이라는 권고안을 발표하면서 “밤낮없이 제 어깨를 줄곧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을 벗게 되었다는 홀가분함보다는 주어진 책무를 제대로 수행한 것인지 자꾸자꾸 되돌아보게 된다”며 그간의 부담감을 담담하게 토로했다. 김 위원장은 “시민을 대표하는 참여단 471명의 이름으로 발표하는 것”이라며 3개월 동안 토론과 설득을 거치며 숙의된 보고서 내용을 소개했다. 다음은 김 위원장의 발표문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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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참여단 최종결론 나오기까지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두고 공론화 절차가 진행됐습니다. 공론화 과정의 중심에는 ‘시민참여단’과 이분들의 ‘숙의 과정’과 ‘설문조사’가 있었습니다. 위원회는 공론화를 위해 ‘시민참여형 조사’ 방식을 설계했습니다. 그리고 모두 네 번에 걸쳐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최종 조사 내용을 정밀하게 분석·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에 관해, 시민참여단의 뜻에 맞는 합당한 정책을 정부에 권고하기 위해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이번 공론화에서 풀어야 할 과제는 참으로 무겁고 어려웠습니다. ‘건설 재개’와 ‘건설 중단’을 주장하는 양측의 ‘입장’은 서로 너무나 달랐습니다. 위원회는 기본적으로 그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출범했습니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은 각각의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각각의 가치는 하나하나 절실하고 절절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단순히 그중 어느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여 그에 담긴 가치만을 수호하게 된다면, 다른 하나의 입장과 그에 담긴 가치는 전혀 보호받지 못한 채 소외·배제되고 말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정의로운 것인지, 두 입장과 가치는 서로 조율될 수는 없는 것인지, 고민이 깊었습니다. 그런 만큼 더욱 시민참여단의 힘과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마침내 2박3일의 종합토론회까지 모두 마친 471명의 시민참여단이 위원회에 지혜롭고도 현명한 답을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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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 국가권력의 민주적 행사 함의” 우리 사회는 서로 다른 가치를 옹호하며 입장을 달리하는 개인이나 집단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갈등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갈등을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인다면 오히려 사회발전의 추진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갈등상황에 대한 적절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공론화는 정부정책 등을 둘러싼 갈등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조율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공론화는 갈등관리라는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고 봅니다.
공론화는 또한, 시민대표가 참여해 그들로부터 숙성된 의견을 수렴하는 민주적 의사 형성의 절차를 취합니다. 이 점에서 공론화는 국가권력의 민주적 행사라는 정치적 함의를 가집니다.
공론화 절차에서 시민대표들의 숙의 과정은 자신의 주장이나 의견을 말하는 기회가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주장이나 의견도 경청할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이 점에서 숙의는 매우 합리적이고 효과 높은 의사소통의 과정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단순히 어느 하나의 주장이나 의견을 선택하고 다른 하나의 주장이나 의견을 완전히 버리는 식이 아니라, 양자의 주장이나 의견을 절충하는 대안을 모색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런 쌍방소통의 논의 과정은 시민대표들 사이에서 최종 판단에 대한 승복 가능성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최종 정책 결정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위원회로서는 적어도 ‘이번 공론화를 계기로 숙의 과정의 이러한 장점들을 매우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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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축소·확대’ 문제까지 공론조사 시민참여단은 종합토론회 이후 시행한 4차 설문조사에서 건설 재개와 중단 중 어느 하나를 최종 선택했습니다. 따라서 ‘471명의 시민참여단분들이 선택한 양쪽 의견의 차이가 표본추출 오차범위를 벗어났는지 여부’가 관건입니다. 최종 설문조사에서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3.6% 포인트로 산출되었습니다. 양쪽 의견의 편차는 정확히 19%포인트 차이가 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표본추출 오차범위를 벗어나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 공론화의 의제 설정의 경과를 보면 이렇습니다. 현 정부가 출범하면서 채택한 원자력발전 정책의 방향은 원자력발전을 점차 축소해서 2080년경에 이르러 영(0)으로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신규 원전건설 계획의 전면 백지화, 원전 설계수명의 연장 금지, 연장가동 중인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 등의 탈원전 정책을 실행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이미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에 대해서는 탈원전 정책에도 불구하고 건설을 중단하기로 한 당초 공약에 대신해, 안전성과 함께 공정률과 투입비용, 보상비용, 전력설비 예비율 등을 종합 고려해 건설 중단 여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로 했습니다.
탈원전 정책을 전제로 공론화가 시작되기는 했지만, 기존의 원자력산업계와 원자력학회 등을 중심으로 ‘정부는 탈원전 정책이 아니라 원자력발전을 계속 유지·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고, 따라서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됐습니다.
이런 연유에서 정부의 애당초 공론화 의도와는 달리 ‘원자력발전을 축소해 나갈 것인지, 아니면 유지·확대해 나갈 것인지’가 건설 중단 또는 재개의 이유로 주장되는 등 그에 대한 논란이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함께 촉발된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따라 이번 공론화에서 이런 논란을 피해갈 수 없어, 시민참여단 설문 문항에도 ‘원자력발전의 정책방향으로 원전 축소·유지·확대 세 가지 중 어느 것에 동의하는지’를 포함시켜 조사하게 됐습니다. 조사 결과, 이에 대해서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의견 차이가 있는 것으로 최종 확인됐습니다.
다음,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줄이고 통합과 상생의 길을 찾자는 점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위원회는 ‘이번 공론화가 건설 재개와 중단, 양측 주장 중 어느 쪽이 전적으로 옳고 그르거나 그 주장들의 선악과 승패를 구분하자는 데 최종 목표를 두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거듭 표명했습니다. 그보다는 ‘우리 사회가 두루 승자로 남을 수 있을 길을 모색함으로써 분열과 대립을 넘어 통합과 상생의 길을 찾자’고 호소드렸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최종 조사 설문문항에 ‘건설 중단 쪽으로 결정되더라도 건설 재개를 주장하는 쪽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떠한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반대로 ‘건설 재개 쪽으로 결정되더라도 건설 중단을 주장하는 쪽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떠한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를 포함시켰습니다. 단순히 예시로 든 보완 조치를 선택하는 것 외에도 추가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조치를 직접 서술하도록 하는 개방형 설문을 더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시민참여단 거의 대부분은 이 문항에 꼼꼼히 빠뜨리지 않고 빈칸을 가득 메워주셨습니다. 시민참여단 스스로 숙의가 탄탄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통합과 상생의 길 찾기에도 깊이 공감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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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재개, 원전 축소, 보완 조처” 권고 위원회는 이상의 최종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정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권고안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첫째,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쪽을 최종 선택한 비율이 59.5%로서 건설 중단을 선택한 40.5%보다 19%포인트 더 높았습니다. 이 결과는 오차범위인 ‘95% 신뢰수준에서 ±3.6%포인트’를 넘습니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로 인정된다는 뜻입니다. 더구나 최종 조사 이전에 했던 1차 조사에서부터 건설 재개의 비율이 오차범위를 넘어 유의미한 차이로 건설 중단 쪽 비율보다 높았고, 이후 조사 회차를 거듭할수록 그 차이가 더욱 커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연령대별 의견 분포의 변화 추이도 주목할 만합니다. 모든 연령대에서 조사 회차를 거듭할수록 건설 재개의 비율이 증가했습니다. 특히 20·30대의 경우 증가폭이 더욱 컸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원회는 현재 공사가 일시중단 중인 신고리 5·6호기에 대해 건설을 재개하도록 하는 정책 결정을 정부에 권고합니다.
둘째, 원자력발전을 축소하는 쪽을 선택한 비율이 53.2%로서 가장 높았습니다. 원전을 유지하는 쪽 비율이 35.5%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확대하는 쪽 비율은 9.7%로 낮은 편입니다. 이 결과 역시 모두 오차범위를 넘습니다. 따라서 위원회는 원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정책 결정을 정부에 권고합니다.
셋째,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할 경우 ‘원전의 안전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보완 조치에 가장 높은 선호도를 보였습니다. 전체의 33.1%입니다. 이어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기 위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와 ‘사용 후 핵연료 해결 방안을 가급적 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보완 조치에 엇비슷한 선호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각각 27.6%와 25.3%입니다. 그 외 서술형 답변을 통해 ‘원전비리 척결 및 관리에 대한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시민참여단 74명이 주셨습니다. 또 ‘원전 주변의 부산·울산·경남 등 지역 주민들의 생명·건강·안전·보상 등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시민참여단 59명이 모아주셨습니다. 따라서 위원회는 이를 구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세부 실행 계획을 조속히 추진해줄 것을 정부에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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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현자 471명, 감동 그 자체” 위원회를 마치면서 감사드려야 할 분들이 많습니다. 누구보다 ‘작은 대한민국’으로 불러도 좋을 시민대표이자 우리 시대의 현자 471분 시민참여단은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치유와 위로라는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번 공론화가 성공을 거둔다면 모든 공은 그분들의 몫입니다. 양측 소통협의회와 지역 주민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분들은 소통의 중요함과 어려움을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특히 ‘시민행동’ 여러분들에게는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비록 시민참여단분들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여러분은 원전 문제에 대해 시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 자체가 큰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정리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