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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독일과 미국의 헌법재판관들을 살펴봤더니요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7-08-25 21:10수정 2022-08-19 15:51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오는 31일로 예정된 김이수(64)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가 또다시 안갯속에 빠지는 분위기입니다. 열쇠를 쥔 국민의당이 이유정(48)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거취와 연계시켰던 당론을 공식적으로는 풀고 인사청문회(28일)에 참석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조건처럼 내걸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후보자 지명철회를 요구하는 야당에 청와대와 여당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김 후보자 표결에 아마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최명길 원내대변인의 발언(21일 의원총회 직후 브리핑)은 국민의당의 기류를 보여줍니다.

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가결되려면 더불어민주당 의석(120석)에다가 인준에 찬성하는 정의당(6석) 및 무소속 의석(3석)을 포함해도 국민의당(40석)에서 최소 21석의 찬성표가 필요합니다. 국민의당 지도부가 사실상의 연계 방침을 철회하지 않고 자율투표를 할 경우 김 후보자 동의안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 3당이 이유정 재판관 후보자를 반대하는 논리는 그가 특정 정치세력과 가깝기 때문에 헌법재판관으로서 부적격이라는 겁니다. 이 후보자는 변호사 시절 노무현 대선 후보(2002년)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2011년), 문재인 대선 후보(2012년)를 지지하고, 총선 때는 민주노동당(2004년)과 진보신당(2008년)에 대한 지지선언을 했습니다. 또 지난 3월에는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된 60명에도 포함됐습니다. “정치적 편향성이 충분하다”(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주장입니다.

헌법재판관은 재판의 공정을 위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얼핏 보면 옳은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야당은 재판관의 정치관여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112조 2항과 헌법재판소법 제9조(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를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헌법이나 헌법재판소법의 ‘정치 관여 금지’ 규정은 재판관으로 재직할 때의 정치활동 금지일 뿐, 전 생애에 걸친 정치 규제가 아닙니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간인일 때의 정치적 활동을 근거로 헌법재판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며 “그런 식이라면 추후 공직에 나갈 의향이 있거나 가능성이 있는 일반인은 평생 정당 가입 등 정치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 가입 등 국민의 기본권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과거 사례를 보면 정치인도 재판관이 됐습니다. 1988년 1기 재판관이었던 한병채(84) 변호사는 4선 의원 출신이었으며, 1994년 2기 재판관에 임명됐던 조승형(83) 변호사는 초선 의원과 김대중 대선후보 비서실장을 지낸 분입니다. 이들을 추천한 당사자는 현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민주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의 뿌리인 민주당이었습니다. 당시 민주당 의원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박지원 국민의당 의원은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알 겁니다. 정치인 출신인 두 재판관의 업무 성적은 아주 뛰어났습니다. 특히 재임 기간 21건의 위헌 결정을 끌어낸 조 변호사는 역대 가장 많은 소수 의견(261건)을 제기했던 재판관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도 헌법재판관의 정치 경력이 문제 되지 않습니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페터 뮐러 재판관은 2011년 재판관이 되기 직전까지 무려 12년 동안 자를란트주의 총리를 지냈습니다. 16명의 재판관 가운데 11명이 법학교수 출신이어서 당시 독일에서는 오히려 헌법재판관의 다양화를 위해 정치인 출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헌법재판을 담당하는 연방대법원의 대법관에 정당의 당원도 가능합니다. 가장 존경받는 연방대법관인 얼 워런 대법원장(공화당원)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헌법을 해석하는 헌법재판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서만 재판하는 법원의 법률재판과는 다릅니다. 헌법 자체가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타협하고 절충한 끝에 ‘정치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헌법을 시대에 따라 해석하는 매우 정치적인 행위가 헌법재판입니다. 정치적 성향이나 경력을 잣대로 헌법재판관의 자격을 따지는 일은 사리에 맞지 않겠죠.

김종철 토요판팀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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