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이 20일 오후 춘추관에서 박근혜 정부 문건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가 20일 공개한 ‘박근혜 청와대’ 문건은, 그동안 특별검사팀 수사 등을 통해 산발적으로 드러났던 지난 정부의 ‘아스팔트 우파’ 지원 작업을 청와대가 진두지휘했음을 보여준다. 우익단체와 고령층 관제데모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나아가, 보수논객 및 청년·해외 보수 등 ‘글로벌 보수’ 육성 프로그램까지 마련해 보수여론의 진지를 구축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이날 공개한 ‘2015년 4~6월 국정환경 진단 및 운영기조’ 문건에 △보수논객 육성 프로그램 활성화 등 홍보역량 강화 △보수단체 재정 확충 지원대책 △청년과 해외 보수세력 육성방안 등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그간 관련자들의 진술·증언으로만 있던 청와대의 탈법·불법한 보수단체 지원(우파 화이트리스트)이 청와대가 직접 관리하는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체계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문건이 작성된 2015년 4~6월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지나며 박근혜 정권이 대반격을 시도하던 때였다. 그해 6월 메르스 사태가 터지면서 ‘국정 환경’이 다시 나빠지자 우파를 동원한 여론전이 시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추가 공개된 문건에는 2015년 7월 이병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 결과 문건도 있는데, 여기에는 “신생 청년 보수단체들에 대한 관련기금 지원을 적극 검토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특정 이념 확산 방안을 청와대가 직접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앞서 공개된 민정수석실 문건에도 ‘건전 보수권을 국정 우군으로 적극 활용’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실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후 보수·청년단체들을 전면에 내세운 국정운영을 본격화했다. 2015년 10월 역사교과서 국정화 의지를 드러낸 국회 시정연설 때는 이례적으로 한국자유총연맹, 국민행동본부, 청년리더양성센터, 청년이만드는세상 소속 인사 등 80여명을 초청했다. 이듬해 1월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참여했던 ‘경제활성화 입법촉구 1천만 서명운동’에도 경제단체 외에 어버이연합 등 보수단체도 직접 서명을 받는 등 적극 움직였다.
박근혜 정부 때는 보수단체가 직접 나서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를 ‘단죄’하기도 했다. ‘보수단체 고발→검찰 수사’ 패턴이 더욱 노골화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 의혹을 제기한 시민단체 인사 등을 보수단체가 고발하면 검찰은 어김없이 기소했다.
앞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시절이던 2014년을 전후로 청와대가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함께 ‘보수우익단체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삼성 등이 재정을 지원하도록 한 사실을 확인하고 관련 내용을 검찰에 이첩했다. 김기춘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에게 2014년 3~4월께 “좌파에 대한 지원은 많은데 우파에 대한 지원은 너무 없다. 중앙정부라도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좌파들은 잘 먹고 잘사는 데 비해 우파는 배고프다”며 우파 육성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가 이날 공개한 두 문건의 내용은 김 전 실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지던 기존 육성 프로그램을 더욱 활성화하려 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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