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 열어젖힌 조기대선을 통해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 대해 성공적 개혁 완수를 위한 전략·전술을 제언한 보고서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국민의나라위원회와 민주연구원이 공동으로 작성한 ‘신정부의 국정 환경과 국정운영 방향’ 보고서다. 지난 17일 완성된 보고서에는 임기 초반 즉시 시행할 수 있는 개혁으로 촛불민심을 국정에 반영한 뒤 국정수행 지지도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개혁을 완성한다는 치밀한 구상을 담았다. 이 문건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발언을 기반으로 작성돼, 문 대통령 취임 뒤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진행형 보고서’라는 점에서 세부적인 내용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촛불의제 등 즉시 가능한 개혁 ‘선제적 실행’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즉시 시행 가능한 ‘10대 촛불 개혁과제’다. 세월호 기간제 교사 순직자 인정, 교원노조 재합법화 선언, 세월호 선체 조사위 인력·재정 추가 지원, 4대강 복원 대책기구 구성,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재수사, 최저임금 공약준수 의지 천명 및 근로감독 강화, 노동개악 4대 행정지침 폐기, 개성공단 입주업체 긴급지원, 박근혜 정부 언론탄압 진상조사, 국가정보원 정치개입 금지 선언 등이다. 보고서는 이들 과제에 대해 “촛불민심이 요구하는 개혁과제 중 즉시 시행 가능하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정부가 선제적으로 실행 발표함으로써 시민사회와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강화해야 한다”고 적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세월호 참사 때 제자들을 탈출시키려다 희생된 김초원·이지혜 교사의 순직 처리를 이미 지시한 바 있다. 나머지 촛불 개혁과제의 실천에도 기대가 커지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오후 경남 양산 사저에 도착해 반려견 ‘마루’를 쓰다듬고 있다. 청와대 제공
■ 인사가 만사, 조심조심 인선 보고서는 집권 초기 새 정부의 핵심 과제로 국회에서의 협치와 개헌 문제에 대한 적극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대통령이 당선 이튿날 야당을 방문하고 취임 9일 만에 여야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하는 ‘성의’를 보인 것도 이와 결을 같이한다. 보고서는 또 국회와 시민사회의 개헌 논의를 챙기고 “개헌 발의를 할 수 있는 또 다른 주체로서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했는데, 문 대통령은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반영하자”며 선제적으로 개헌에 운을 뗐고 여야 원내대표와 만난 자리에서도 적극적인 개헌 의지를 강조했다. 또 보고서는 “집권 초기 인사의 실패는 국정동력을 무너뜨리는 최대의 실책”이라며 “지역 대표성, 여성 진출 확대, 세대교체, 탕평 등 개혁의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인사 원칙을 정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문 대통령은 대체로 이런 기준에 부응하는 인선을 진행해왔다.
■ 직접소통으로 ‘국민 대연정’ 취임 뒤 100일 동안 국민에게 보여줘야 할 정부 이미지로 4가지가 제시됐다. 적폐에는 엄정하고 민생 요구에는 ‘따뜻한 정부’, 가능한 것은 과감하게 실천하는 ‘시원한 정부’, 투명한 정부 넘어 개방된 ‘플랫폼 정부’, 국민 지지로 여소야대를 극복하는 ‘국민 대연정 정부’다. ‘국민 대연정 정부’란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적폐청산과 개혁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개혁 대상의 저항, 거짓 선동과 가짜뉴스를 극복”하는 정부를 가리킨다. 또 소셜미디어를 통해 일상적인 소통도 유지하고 외부자의 시선으로 대통령의 통치 행위를 검증하는 ‘레드팀’ 활용도 제안했다.
보고서는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정권 성공의 열쇠이며 자산 관리하듯 치밀하고 과학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국정수행 지지도 관리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이를 위한 3단계 개혁 로드맵도 내놨다. 취임 직후 1단계에선 일자리 창출을 통한 민생안정, 도시재생을 통한 공동체 회복, 광화문 대통령 시대의 열린 정부 등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고 검찰·국정원 등 나라의 정의를 세우는 과감한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취임 100일 이후부터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2단계에선, 추경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혁신도시 시즌2’와 주요 지역 도시재생 착수를 통해 국정운영 지지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3단계로 잡은 지방선거 이후에는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차별 철폐 등 사회경제적 개혁 과제를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나라위원장으로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박병석 의원은 21일 <한겨레>와 만나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과 토론회 발언 등을 종합해 약 30일 동안 보고서 작업을 했다”며 “선대위에서 활동하셨던 분들이 청와대와 정부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보고서 내용이 상당 부분 실현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인수위 격으로 설치된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이 보고서에 약간의 살을 붙인 뒤 차관급 이상 공무원들에게 배포해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할 방침이다.
김태규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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