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국무총리 후보자, 국정원장 후보자, 대통령 비서실장, 경호실장 인선안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오후 서훈(63)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를 소개하며 “국정원 출신으로, 제가 공약했던 국정원 개혁을 구현할 최적임자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따로 설명자료를 내어 “1980년 국정원에 입사해 2008년 3월 퇴직할 때까지 28년여 근무한 정통 국정원맨으로, 국정원이 해외와 북한 업무에 집중하도록 이끌 최적의 인물로 평가한다. 앞으로 국내정치 관여 행위를 근절하고 순수 정보기관으로 재탄생시킬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취임사에서 “어떤 기관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견제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힌 문 대통령이 국정원을 개혁 수술대에 맨 먼저 올려놓은 셈이다.
서 후보자는 청와대 기자회견에서 “국정원의 정치개입 근절은 어제오늘의 숙제가 아니다. 많은 정부에서 시도를 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오늘까지 왔다”며 “개인적으로 이번이 마지막 기회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건강한 국정원 구성원들이 가장 원하는 상태가 정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반드시 국정원을 정치로부터 자유롭게 만들겠다”며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다만 “제도 문제는 (국정원에) 들어가서 살펴보겠다.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정치로부터 떼어놓을 방법을 찾겠다”고 했다.
서 후보자가 말한 ‘제도 문제’는 국정원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과 맞닿아 있다. 국내 정보수집 업무와 대공수사 기능 전면 폐지, 불법사찰·정치개입 등에 가담한 조직과 인력에 대한 처벌 등을 약속했다. 가장 많은 인력과 예산을 쓰는 국내파트 폐지와 인적 청산까지 하겠다는 구상이 실현된다면, 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재탄생’ 수준을 넘어서는 변화가 국정원에 불어닥치게 된다.
역대 정부에서 첫 국정원장 인선은 개혁 의지를 가늠하는 기준이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첫 국정원장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출신인 고영구 변호사를 지명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자신의 국정원 개혁 구상을 총괄 집행하는 자리에 인권변호사 출신을 앉힌 것이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검찰 출신(김성호),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군인 출신(남재준)을 첫 국정원장에 임명했고 이후 국정원은 불법사찰과 정치·선거개입 논란으로 개혁 대상으로 전락하는 처지가 됐다.
국정원 개혁의 실무 키를 쥔 기획조정실장에 누가 임명되는지도 관심사다. 국내파트 폐지·축소 등 조직 개편이 공약의 뼈대인 탓에 1·2·3차장을 새로 임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대신 국정원의 인사·예산·조직을 관장하는 기조실장을 우선 임명해 개혁 의지를 보여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추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문 대통령은, 당시 국정원 3차장(북한파트)으로 10·4 남북공동선언을 막후에서 조정한 서 후보자에게 큰 신뢰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가장 자주 만난 ‘남한 사람’인 서 후보자는, 1997년 경수로 건설을 위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 당시 현장사무소장으로 2년간 북한에 머물렀고, 2000년 김대중 정부의 6·15 남북공동선언 때도 막후 역할을 했다. 서 후보자는 “남북관계 경색에도 정상회담은 필요하다. 북핵 해결을 위한 물꼬를 틀 수 있는 조건이 성숙되면 평양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 후보자의 조속한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요청했다. 서 후보자는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 교육학과를 나왔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와 동국대에서 석·박사를 했다. 국정원 3차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정보관리실장, 남북총리회담 대표를 역임했다.
김남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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