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당선인(왼쪽에서 넷째)이 9일 밤 광화문 광장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왼쪽부터 최성 고양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김부겸 의원, 문 당선인, 안희정 충남지사, 박원순 서울시장,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문재인 대통령의 마지막 유세는 광화문이었다. 지난 8일 저녁 연단 주위는 파란 풍선을 든 청중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까치발로 사람들의 머리 위를 겨우 볼 수 있었다. ‘10년을 기다렸소’라고 쓴 작은 손팻말과 ‘촛불혁명’이라고 새긴 거대한 깃발이 잘 어울렸다.
5월9일 대통령 선거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은 세 번째 민주정부가 출범했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이후부터 따지면 ‘보수 기득권 세력’과 ‘민주개혁 세력’이 10년 주기 교대로 정권을 잡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은 어떤 시대적 의미를 갖고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시대적 과제를 안고 출발하는 것일까? 현장에 밀착한 기자가 알기 어렵다.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치학자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1987년 민주화 10년 만에 야당으로의 정권교체는 구체제를 개혁할 수 있는 첫 번째 모멘트였다. 그러나 양극화·빈곤화 심화로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이번 정권교체는 두 번째 모멘트다. 시장경제를 공정하고 자율적이게 만들고, 노사관계를 좋게 하고, 분배와 복지체계를 개선하는 유능한 개혁 정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유능할 수 있을까? 박상훈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로서 책임정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정치인으로서 역사적 의미와 안목을 유난히 강조하는 사람이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4·19, 5·18, 6월항쟁 등 고비마다 우리 국민이 들고 일어나 역사를 바꿨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그동안은 ‘절차적 민주주의’에 치중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국민이 ‘내용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진화’를 요구하고 있다. 평등, 공정, 법치, 진정한 안보 등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강하게 희망하는 국민의 목소리가 선거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임채정 전 의장은 박정희 시대의 극복을 강조했다. 그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특권주의, 기득권 우세, 빈익빈 부익부, 불공정, 비민주적 통치 등 박정희 시대의 유습이 되살아나는 역행이 이뤄졌다”며 “촛불과 이번 대통령 선거는 우리 국민이 이런 역사적 퇴행을 거부하고 박정희 시대를 극복해내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는 사설 정부 운용으로 국가의 공공성을 파탄 냈다. 80%에 이르는 탄핵 찬성 여론은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공공성을 회복하라는 요구였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 책임제에 국무총리 책임제와 장관 책임제를 결합해 국가 운용을 정상화(공공화)하고 공적 권위와 공적 질서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권력을 잡은 ‘개혁세력’이 일정 지분을 양보해 ‘기득세력’을 끌어들이고 순치시켜야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고 오랫동안 주장해 온 학자다. 김대중-김종필, 노무현-정몽준, 정동영-문국현 때는 연합정부를, 문재인-안철수 때는 공동정부 구성을 위한 정치연합을 말했다. 이번에는 통합정부를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통합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까? 그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박명림 교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는 민주세력이 행정부나 의회 권력을 확보했지만 거대한 관료기구와 보수적인 재계·언론계·학계 등에 둘러싸여 섬처럼 갇혀 있었다”며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한계와 실패를 넘어서서 사회구조를 개혁할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과제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 비해 유리한 환경에서 출발한다고 진단했다. 촛불, 탄핵, 선거 과정에서 정치지형이 1990년 3당 합당 이전으로 복원됐고, 그 덕분에 온건진보, 중도진보, 개혁진보 세력을 문재인 대통령이 거의 다 흡수해 세력 기반을 넓혔다는 것이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대해 “부와 권력의 독점체제(기득권층의 사익추구 체제)를 허물고 국민통합을 이룰 정치혁신과 사회적 기반의 조성이 가능한지를 시험하는 시기”라고 진단했다. 냉정한 평가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