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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문재인, 노무현 아닌 박근혜에게 배우라

등록 2015-12-25 15:10수정 2016-01-06 14:52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23일 오전 국회에서 비정규직 처우개선 예산확보기념행사를 하기에 앞서 생각에 잠겨 있다. 뒤편 왼쪽은 유승희 최고위원, 오른쪽은 이용득 최고위원.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23일 오전 국회에서 비정규직 처우개선 예산확보기념행사를 하기에 앞서 생각에 잠겨 있다. 뒤편 왼쪽은 유승희 최고위원, 오른쪽은 이용득 최고위원.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김의겸의 우충좌돌
노무현, ‘03시계’ 차고 상도동에 머리 조아렸다 ‘내리막’
문 대표가 정동영 찾아 복당 요청한 것도 ‘구태’의 반복
4년전 김종인·이상돈 내세운 ‘박근혜 비대위’ 발상 필요
2002년 4월30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자택.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김 전 대통령을 찾았을 때 기자도 현장에 있었다. 여름이 멀었는데도 두 사람이 마주한 거실은 카메라 불빛과 취재 열기로 후끈거렸다. 억지로 어깨를 밀치고 들어가 김영삼, 노무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노 후보는 머리를 조아린 채 손목에 찬 시계를 김 전 대통령에게 내보였다. 과거 통일민주당 시절 인연을 상기시키려는 듯, 김 전 대통령을 ‘총재님’이라고 불렀다. “총재님이 일본 출장 가셨다가 사다 준 세이코 시계입니다. 총재님을 비난하고 다닐 때는 시계를 풀어서 장롱 안에 넣어두기도 했지만 총재님 생각날 때는 꼭 차고 다녔습니다.” 그 정도 숙이고 들어갔으면 시원하게 “꼭 이겨야 한대이~”라고 한 마디 하면 좋으련만, 김 전 대통령은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할 뿐이었다. 끝내 지지선언을 하지 않았다.

노 후보는 상도동 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뭔가 모를 옛날 정치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힘 있는 정치인들과의 합종연횡을 통해 세력을 키우던 관행 말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국민적 열기로 기적을 일궈낸 노무현 후보였으니 실망감이 더 컸을 수 있다.

‘제2의 최기선’이 있었나

얼마 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를 또래 기자들과 함께 볼 기회가 있었다. 13년 전 김영삼 노무현의 만남이 화제로 올랐는데 처음 듣는 말을 하는 거다. “그때 저희들도 참 아쉬웠습니다. 상도동계인 최기선 인천시장이 ‘와이에스(YS)하고 얘기가 다 됐다. 와서 인사만 하면 지지선언을 할 거다’라고 해서 찾아간 건데…”

문재인 대표가 18일 전북 순창에서 칩거하고 있는 정동영 전 의원을 만나러 달려갔다. 복당을 요청했지만, 정 전 의원은 사실상 거절했다. 막걸리를 나눠 마신 것 말고는 별 소득이 없었다. 누군가 중재에 나선 ‘제2의 최기선’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문 대표는 또다시 ‘빈틈’을 보였다. 광주에서부터 올라오는 안철수 바람을 전북에서 저지하기 위해 정 전 의원에게 고개를 숙인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혼자서는 자신이 없구나’하는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다.

문재인 대표는 23일 “선대위를 조기에 출범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대표직을 내놓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됐다. 기자들은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하루종일 전화를 돌려야 했다. 가까운 의원들도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고 한다. 오후 늦게 소란은 가라앉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분은 더 꼬였고 지루한 소모전은 더 연장됐다. 아마도 문 대표는 김한길 의원 쪽에 “내가 이렇게 내려놓는데도 탈당하겠다는 거냐”고 묻고 싶었을 것이다. 중재에 나선 의원들에게도 최대한 성의를 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 눈에는 그저 비슷한 다툼이 재탕 삼탕 반복되는 것일 뿐이다.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는 집안 싸움에 지지자들의 가슴은 동짓달 추위처럼 싸늘하게 얼어가고 있다. 오히려 이건 탈당을 준비하는 의원들의 노림수일 수 있다. ‘여의도 격투기’는 탈당하려는 이들에게 익숙한 경기 종목이다. 조중동과 종편을 중심으로 하는 언론 지형은 압도적으로 유리한 경기장이다. 이곳에서 ‘문재인 물러가라’고 공격하고, 문재인 대표가 일일이 여의도 경기 규칙에 따라 받아주면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게다가 문 대표는 얼마나 서툰 선수인가. 야당 지지자들은 문 대표의 무능에 진절머리를 낼 테고, 떨어지는 지지율 소리에 의원들은 좌불안석일 것이다. 더 많은 의원들이 탈당파 쪽으로 넘어가고 문 대표가 설 자리는 송곳 끝 같아진다. 비주류 의원들이 흔드니 문 대표가 흔들리는 거겠지만, 문 대표가 흔들리니 비주류 의원들이 ‘흔들어볼 만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문 대표는 이제 그만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서툰 여의도 정치에 매달리지 말고 국민만을 보고 나가야 한다. 탈당하려는 의원들에게는 충분한 예를 갖췄다. 이제 진짜 섬겨야 할 것은 국민이다.

국민들은 그 신호를 보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정당사상 최초로 온라인당원을 받기 시작하자 바람이 일었다. 1주일만에 7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당원이 되었다. 7만명이 작다면 작은 숫자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권리당원이 25만명인 점에 비춰볼 때 크다면 큰 숫자다. 적어도 문 대표가 나가야 할 방향은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문 대표도 24일 ‘국민이 함께 하실 것이라 믿습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나 말만으로는 공허하다. 국민들에게 손에 잡히는 희망을 보여줘야 한다.

여의도 밖으로 눈을 돌릴 때

우선 선거대책위원회 구성부터 달라져야 한다. 당내에서 논의되는 방향은 두가지다. 각 계파의 수장들을 두루 내세워서 ‘화합형’으로 가자는 안이 있고, 비교적 젊은 의원들로 ‘세대교체형’으로 가자는 안이 있다. 둘 다 의원 중심이다. 하지만 여의도 밖으로 눈을 돌릴 때다. 현재의 시대정신은 불평등 해소다. 이를 책임지고 해결해 줄 인물들을 내세워야 한다.

4년 전 한나라당에서 박근혜 비대위를 내세워 위기를 극복한 적이 있다. 그때 김종인, 이상돈, 이준석 등 비대위원들은 파격적이었다. 경제민주화 등 그동안 한나라당이 내던 목소리와 전혀 다른 주장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여의도의 틀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물론 안철수 신당 등 다른 야권과 손을 잡을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 원론적인 연대의 수준을 넘어서서 언제 어떻게 힘을 합칠 것인지 국민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심리적인 안전판이 있어야 지지자들이 불안해하지 않는다. 문재인을 믿고 따라가면 이길 수 있다는 신념이 생긴다. 각 당이 인물과 혁신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다 보면 국민이 심판해 줄 것이다. 하지만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각 지역구별로 안심번호를 이용한 후보단일화는 유용한 수단일 수 있다.

아마 문재인 대표도 두려울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유리하지 않고 당내 의원들의 여론 지형도 어려워지는 듯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놓아버리고 싶은 생각도 들 법하다. 하지만 그럴 경우 당은 밑바닥부터 붕괴할 것이다.

<한겨레> 성한용 기자의 25일치 기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호남과 피케이(부산·경남) 분리는 티케이(대구·경북)에 기반을 둔 기득권 세력의 30년 정치기획이다. 1987년 양김씨 단일화 실패, 1990년 3당 합당이 그들의 작품이다. 최근 호남과 문재인의 불화도 그 연장선에 있다.”

<조선일보>의 김대중 고문도 지난해 3월 김한길 민주당대표와 안철수 의원의 통합선언을 전폭 지지하며 ‘친노 숙정’을 적극 주문하고 나섰다. 그는 “친북 좌파에 얽매인 친노의 집권은 물론이고, 친노에게 볼모 잡힌 야당의 존재마저도 해악적이다”라며 “이번 야권 재편에서 핵심적 관건은 민주당내 친노세력을 어떻게 정리하느냐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이간책’대로 문재인이 주저앉으면 호남과 피케이는 다시 만나기 힘들 것이다. 호남과 이른바 ‘친노’의 분열을 통해 이득을 취하려는 기득권 세력이 승리의 축포를 쏘아올릴 것이다. 당내 분열주의자들도 남몰래 미소를 띨 것이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공황의 암울함 속에서 좌절하고 있는 미국 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단 한가지는, 바로 그 두려움 그 자체이다.” 문 대표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관련 영상] 연대와 분립, 야권경쟁 막 올랐다/ 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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