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세월 동안 한결같이 그러했듯,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마지막까지 ‘그림자 수행’을 한 이들이 있다.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닷새 내내 빈소를 지킨 이들이다. 이중엔 김기수 전 대통령 수행실장이 첫손에 꼽힌다. 대학생 때 민주화운동을 하다 김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그는 1981년 민주산악회에서 시작해 35년 동안 김 전 대통령의 굴곡진 정치 인생을 함께했다. 민자당 총재 시절엔 보좌역, 당선 이후엔 대통령 수행 실장을 맡았고, 당선 이후엔 대통령 수행실장을 맡았고,퇴임 이후엔 전직 대통령 비서관 자격으로 곁을 지켰다. 김 전 대통령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기수야 어딨노”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지난 22일 서울대병원을 찾은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김 전 실장을 ‘충신’이라 부르며 “긴 세월 동안 일편단심 잘 모셨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장례 기간 중 조문객들을 살뜰히 챙겼던 김 전 실장은 김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칼국수집, 헤질 때까지 하나의 조깅화만 신었던 검소한 모습, 함께 백두산에 가기로 했던 약속 등 김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기자들에게 간간이 들려줬다. “비서는 귀만 있다”며 공식적인 발언을 삼갔던 그는 빈소의 마지막날 밤인 25일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굳건한 기반을 세우신 어른 뜻에 따라 더 성숙된 민주주의가 진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과 친척이자 거제도 이웃이었던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도 장례식장을 떠나지 않았다. 1977년 “덩치가 크고 인물이 좋아” 김 전 대통령의 경호원으로 뽑힌 홍 전 수석은 20대 초반부터 김 전 대통령의 지역구(부산 서구)를 관리하며 ‘김영삼의 금고지기’로 불렸다. 청와대 총무수석으로서 청와대 살림과 김 전 대통령의 친인척 관리를 맡았다. 1996년 부산 서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이후 한보비리사건 등으로 징역을 살았던 그는 1998년 쓸쓸히 퇴임하는 김 전 대통령을 옥중에서 보면서 “보필할 사람이 없다”며 눈물지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문민정부 시절 실세로 불렸던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가신’의 마지막 역할에 충실했다. 공보 비서로 시작해 42년동안 김 전 대통령과 함께했던 그는 지금도 집 전화번호 끝자리를 김 전 대통령의 이름 영삼을 숫자로 바꾼 ‘0003’을 쓴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의 입관과 발인 예배를 모두 집전한 김장환 목사도 묵묵히 장례를 도왔다. 김 목사는 김 전 대통령이 생전에 농담조로 “나 죽으면 예배 봐달라”고 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22일 서거했을 때도 유족은 불과 30분 뒤에 김 목사에게 전화해 모든 일정을 주관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주현 이경미 기자 edig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