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본 YS리더십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는 군사정권을 극복한 민주화의 기억과 함께 ‘대도무문’으로 상징되는 ‘와이에스 리더십’을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과거 ‘보스 정치’ 시대의 리더십이지만, 민주주의 퇴행과 정치의 무기력이라는 2015년 현실이 ‘와이에스 리더십’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결단과 용기’를 와이에스 리더십의 첫번째로 꼽는다. 엄혹한 박정희 유신정권과 전두환 군사독재에 ‘23일 단식 투쟁’ 등 목숨 걸고 싸운 점, 대통령이 된 뒤에도 단칼에 군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고 금융실명제를 전격 시행한 점 등을 일컫는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이 1990년 내각제 각서 파동으로 민정계의 공격을 받자 당무를 거부하고 마산으로 내려갔다가, 청와대로 ‘쳐들어가’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이름을 부르며 거칠게 치받고 오히려 당을 장악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김영삼 정부에서 청와대 공보비서관을 지낸 박진 전 의원은 25일 “한마디로 대도무문”이라며 “옳고 그름의 방향이 정해지고 나면 정면돌파해서 목적을 성취해냈다. 민주화, 금융실명제, 역사 바로세우기 등이 그런 것들이다”라고 말했다. 박성민 민컨설팅 대표는 “지도자는 국면이 꽉 막혔을 때 돌파해내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하다”며 “와이에스는 모두가 군사정권에 숨죽이고 있을 때 선두에 서서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돌파해냈다”고 말했다.
군사정권 치하 23일간 단식투쟁
대통령 된 뒤 하나회 단칼 척결
옳고그름 방향 정해지면 정면돌파 DJ 파트너 예우·한완상 부총리 기용
‘소통과 포용’ 꼽는 이들도 많아
직관의존형 임기말 부작용도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이를 ‘긴 호흡의 큰 정치’로 표현하며 현 정치권의 리더십 부재에 깊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손 교수는 “와이에스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정치자금과 공천권, 지역주의 기반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면서도, “시대정신을 끌어안고 목숨을 걸고 진정성을 보이는 ‘큰 정치’는 와이에스로부터 배울 점”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예를 들어 역사교과서 국정화 국면에서 와이에스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본다”며 “지금의 정치 지도자들은 계파 리더 이상의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소통’과 ‘포용’의 면모를 와이에스 리더십으로 꼽는 이들도 많다. 김영삼 정부에서 공보수석을 지낸 윤여준 전 장관은 “김 전 대통령은 끝까지 참모들의 직언을 듣고 심기를 거스르는 이야기에도 불편한 내색을 안 했다”며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을 보였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총선 참패로 위축된 김대중 당시 새천년민주당 총재를 여러 차례 청와대로 불러 영수회담을 하며 야당을 ‘파트너’로 예우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 전 장관은 “영수회담 뒤 야당이 사실과 다르게 언론 브리핑을 했길래, 와이에스에게 ‘바로잡을까요’ 했더니, ‘냅둬라. 야당이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 했었다”고 전했다. <한반도 삼국지>의 저자 이충렬씨는 “김 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자였기에 야당을 물리적으로 탄압하거나 정치공작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인재 등용에서도 폭넓게 문을 열었다. 보수정권과 잘 맞지 않을 듯한 한완상 교수를 초대 통일부총리에 기용했고, 1996년 총선 때는 민중당 출신인 이재오·김문수 등을 공천해 여당 의원으로 끌어들였다. 물론 직관에 의존한 스타일은 임기 말 크나큰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본인의 감각을 중시하고 법치가 아닌 인치에 의존하는 스타일은 비선정치로 이어졌다”며 “이것이 차남 현철씨 등 측근비리와 노동법 날치기, 구제금융 사태로 이어져 통치력에 아노미 상태가 왔다”고 말했다. 김호진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대통령과 리더십>이라는 저서에서 “감에 의한 승부사형 리더십은 순발력을 요하는 정치게임에는 강하지만 국가경영에는 적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관련 영상] YS 서거 특집, 민주의의의 길을 묻다
대통령 된 뒤 하나회 단칼 척결
옳고그름 방향 정해지면 정면돌파 DJ 파트너 예우·한완상 부총리 기용
‘소통과 포용’ 꼽는 이들도 많아
직관의존형 임기말 부작용도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이를 ‘긴 호흡의 큰 정치’로 표현하며 현 정치권의 리더십 부재에 깊은 아쉬움을 나타냈다. 손 교수는 “와이에스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은 정치자금과 공천권, 지역주의 기반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면서도, “시대정신을 끌어안고 목숨을 걸고 진정성을 보이는 ‘큰 정치’는 와이에스로부터 배울 점”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는 “예를 들어 역사교과서 국정화 국면에서 와이에스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본다”며 “지금의 정치 지도자들은 계파 리더 이상의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소통’과 ‘포용’의 면모를 와이에스 리더십으로 꼽는 이들도 많다. 김영삼 정부에서 공보수석을 지낸 윤여준 전 장관은 “김 전 대통령은 끝까지 참모들의 직언을 듣고 심기를 거스르는 이야기에도 불편한 내색을 안 했다”며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을 보였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총선 참패로 위축된 김대중 당시 새천년민주당 총재를 여러 차례 청와대로 불러 영수회담을 하며 야당을 ‘파트너’로 예우하는 모습을 보였다. 윤 전 장관은 “영수회담 뒤 야당이 사실과 다르게 언론 브리핑을 했길래, 와이에스에게 ‘바로잡을까요’ 했더니, ‘냅둬라. 야당이 원래 그런 것 아니냐’고 했었다”고 전했다. <한반도 삼국지>의 저자 이충렬씨는 “김 전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자였기에 야당을 물리적으로 탄압하거나 정치공작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인재 등용에서도 폭넓게 문을 열었다. 보수정권과 잘 맞지 않을 듯한 한완상 교수를 초대 통일부총리에 기용했고, 1996년 총선 때는 민중당 출신인 이재오·김문수 등을 공천해 여당 의원으로 끌어들였다. 물론 직관에 의존한 스타일은 임기 말 크나큰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본인의 감각을 중시하고 법치가 아닌 인치에 의존하는 스타일은 비선정치로 이어졌다”며 “이것이 차남 현철씨 등 측근비리와 노동법 날치기, 구제금융 사태로 이어져 통치력에 아노미 상태가 왔다”고 말했다. 김호진 고려대 명예교수는 <한국의 대통령과 리더십>이라는 저서에서 “감에 의한 승부사형 리더십은 순발력을 요하는 정치게임에는 강하지만 국가경영에는 적합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황준범 기자 jaybee@hani.co.kr [관련 영상] YS 서거 특집, 민주의의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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