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별로 다른 ‘YS 소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느끼는 소회는 세대별로 갈렸다. 김 전 대통령 재임 동안 유년 시절을 보낸 2030세대는 게임이나 만화, 문구용품 캐릭터 속 ‘친근한 와이에스(YS)’의 모습을 기억하며 아쉬워했다. 반면 아이엠에프(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의 극심했던 ‘취업난’과 1996년 ‘연세대 사태’와 ‘노동법 날치기’를 경험했던 3040세대들 가운데선 김 전 대통령을 ‘민주화의 큰 산’으로 재조명하는 지금의 분위기가 마냥 편치만은 않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초등학생이었던 강혜경(31)씨가 서거 소식을 듣자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와이에스 지우개’였다. 뒷주머니에 손을 넣고 줄무늬 파자마 바지를 입은 김 전 대통령이 그려진 이 지우개는 ‘지우개 따먹기’가 잘되는 지우개라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강씨는 “대통령의 영정사진이 오히려 낯설었다. 나에게 김 전 대통령은 ‘삼등신 캐릭터’로 더 크게 남아 있다”고 말했다.
YS 재임때 유년시절 20대~30대 초반
“YS 지우개 갖고 놀았죠
정치는 몰라도 YS는 알아” 당시 대학 다녔던 30대 후반~40대
“학생운동 토끼몰이 진압했는데
민주화 투쟁 칭송 편치 않아
구제금융 위기 부른 무능한 대통령”
2030세대들은 어른들이 대통령 풍자 유머집을 보며 ‘개그감각’을 익히는 동안 콩알 같은 눈에 커다란 콧구멍을 부각한 대통령 캐릭터에 빠져들었다. ‘와이에스를 찾아라’, ‘와이에스는 내 친구’ 등의 제목을 단 ‘게임북’은 특히 인기였다. 김유진(29)씨는 “문제를 풀며 답에 따라 적힌 페이지로 이동하며 문제를 푸는데 주인공이 김영삼 대통령과 대전엑스포 마스코트 꿈돌이였다”고 회고했다. 이들은 망토 뒤에 달린 고리를 움직이면 주먹이 나가는 김 전 대통령 인형 ‘03펀치’, 전세계의 지도자들과 김 전 대통령이 대전액션을 펼쳤던 ‘와이에스는 잘 맞춰’ 등을 떠올리며 “정치는 몰라도 와이에스는 알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당시에도 ‘머리 굵은’ 청년이었던 3040세대들은 김 전 대통령을 ‘민주화의 큰 산’이나 친숙한 대통령으로 기억하는 것은 아니다. 1994년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연달아 무너지는 걸 목격하고, 1996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학생들을 한 건물로 고립시켜놓고 경찰 ‘백골단’ 등을 투입해 무차별 연행한 ‘연세대 사태’ 등을 겪었기 때문이다. 그해 말엔 정리해고 등 노동유연화를 가능케 했던 ‘국회 노동법 날치기’ 사건도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직장인 전아무개(38)씨는 “나에게 김 전 대통령은 구제금융 위기를 불러 취업을 어렵게 한 ‘무능’한 대통령이고, 학생들을 토끼몰이로 진압했던 ‘탄압’의 대통령일 뿐”이라며 “돌아가신 분한테 좋은 말만 하는 게 우리 관례라지만, 1970~80년대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만 갖고 칭송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직장인 김아무개(36)씨도 “금융실명제·하나회 숙청 같은 성과로 김 대통령이 인기가 좋았지만 거기까지였다”며 “‘노동법 날치기’로 그를 비판했던 사회적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한때 ‘엑스(X)세대’ ‘신인류’로 불리기도 했던 이들은 ‘풍자가 가능했던 최초의 대통령’이었다는 데 대해서는 좋은 점수를 줬다. 김승환(40)씨는 “그래도 대중문화가 풍요로웠던 것은 사실”이라며 “와이에스가 조롱과 풍자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독재시절처럼 비판이나 원망의 대상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고 했다.
방준호 박태우 기자 whorun@hani.co.kr,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엠엘비파크·웃긴대학 게시글 갈무리
[관련 영상] YS 서거 특집, 민주의의의 길을 묻다
와이에스 지우개
“YS 지우개 갖고 놀았죠
정치는 몰라도 YS는 알아” 당시 대학 다녔던 30대 후반~40대
“학생운동 토끼몰이 진압했는데
민주화 투쟁 칭송 편치 않아
구제금융 위기 부른 무능한 대통령”
와이에스는 잘 맞춰
와이에스는 내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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