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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지금 유신체제로 돌아가…YS 제자들은 뭐하고 있는가”

등록 2015-11-24 21:40수정 2015-11-25 10:22

김영삼 전 대통령(앞줄 왼쪽)이 1998년 2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서 김 전 대통령(앞줄 오른쪽)과 함께 걸어나오며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삼 전 대통령(앞줄 왼쪽)이 1998년 2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서 김 전 대통령(앞줄 오른쪽)과 함께 걸어나오며 이야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민정부 첫 통일부총리
한완상 전 교수 인터뷰

김영삼 정부 첫 통일부총리를 지낸 한완상 전 부총리는 수십년 전 김영삼 대통령의 말투와 몸짓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1993년 대통령 당선 직후 단둘이 만났을 때 “내 5년 동안 멋지게 개혁할끼다”라며 두 주먹을 불끈 쥐던 모습을 여러번 흉내내 보였다. 그만큼 아쉬움과 미련이 짙다는 얘기다. 하긴 한완상의 좌절은 김영삼의 한계이기도 했다. 인터뷰는 24일 자택에서 이뤄졌다.

“5년 동안 멋지게 개혁할끼다”라며
두 주먹 불끈 쥐던 YS 모습 생생해
‘여백의 미’랄까 소탈한 게 좋아

유신체제의 딸 밑에서 충성하려 경쟁
YS를 정치적 대부라 말하는 사람들이
YS를 가장 모르고 오해하고 있어

이인모 송환뒤 색깔론 극성
YS ‘남북관계 악화땐 개혁 좌절’ 몰라
냉전 수구세력이 그 여백 메워버려

김영삼 정부에서 통일원장관,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했던 한완상 전 부총리가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김영삼 정부에서 통일원장관,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했던 한완상 전 부총리가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빈소는 다녀오셨나?

“어제 갔다. 옛날 상도동 사람들 여럿을 봤는데 그 가운데 제일 반가워하고 나를 껴안고 울먹이는 사람은 최형우였다. 나도 최형우의 뺨을 어루만지면서 탄식했다. ‘와이에스(YS) 왼쪽에 김동영이가 살아 있고, 오른쪽에 당신이 건강하게 있었더라면 와이에스가 역사에서 더 빛나는 삶을 보여주었을 텐데…’ 그렇게 말하면서 내 마음이 찢어지더라.”

-왜 그리 가슴 아팠나?

“지금 완전히 유신체제로 돌아갔다. 유신의 딸이 아버지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노력이 끈질기다. 그런데 와이에스한테 정치를 배웠다는 사람들, 스스로 정치적 아들이니 제자니 말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태를 보면 와이에스의 과감하고 뚝심있는 개혁 정치인으로서 모습들은 다 망가지고 말았다. 와이에스를 국회에서 제명하고 탄압했던 유신체제의 딸 밑에서 충성을 다하려고 서로 경쟁하고 있지 않나. 정치적 허무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정치적 후퇴로 인해서 우리가 또 당해야 할 고통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 세대에서 이 고통은 끝났으면 좋겠다. 와이에스를 정치적 대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와이에스를 가장 모르고 오해하고 있다.”

-수십년을 모셨던 분들인데.

“코끼리 만지는 셈이다. 와이에스의 정치역정 가운데 와이에스가 스스로 자랑스럽게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은 안 보고, 물려주고 싶지 않은 유산만 확대재생산해서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서 활용하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인연은?

“육문회(育文會)라는 게 있었다. 서울대 문리대를 육성하자는 문리대 출신 인사들의 모임이다. 여기서 와이에스를 1970년대초에 만났다. 여백의 미랄까, 소탈한 게 참 좋았다. 79년도에는 이철승씨와 당권경쟁을 벌일 때인데, 이철승씨가 미국에 가서 유신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해 조선일보 칼럼에다 ‘야당의 당수냐, 여당의 선전부장이냐’는 글을 썼다. 이철승씨 쪽으로부터 협박도 많이 당했는데, 와이에스가 격려를 많이 해줬다.”

-93년에 통일원 장관 겸 부총리가 되셨다.

“애초에는 비서실장을 제안하셨다. 1월초 신라호텔에 불러서 갔는데 ‘한 박사 나 도와줘야지’라며 비서실장 얘기를 꺼냈다. 서동권 안기부장의 건의사항을 전하는데, 인화단결하려면 이홍구, 밀어붙이려면 최병렬, 정말 개혁하려면 한완상을 쓰라는 거야. 그러면서 ‘서 부장 말이 논리가 있고 맞아. 마누라한테도 얘기하면 안 돼’ 그러는 거야. 겁이 덜컥 났지. 감당할 수 없었어. 최형우가 냄새를 맡고 와서 ‘잘 모셔야 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조심해라’고 말을 했어. 최형우 예감대로 됐지. 결국 그 사람들이 중요한 자리를 다 차지했어.”

-그때 맡으셨으면 김영삼 정부도 많이 달라졌을 텐데.

“하하 그럴지도 모르지.”

-통일부총리 시절 이인모 송환 문제 등으로 공격을 많이 받으셨다.

“3월2일 조찬을 했다. 통일문제를 물으시길래 ‘대통령도 기독교 장로 아니냐,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면 원수 속의 악이 근원적으로 약화되는 거다’라고 했더니 팍 알아들으시더라. 이인모를 북한 품으로 보냄으로써 인도주의의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가만히 듣기만 하셨는데, 9일 갑자기 언론사 사장들과의 만찬에서 기분이 좋으셨는지 ‘특종 줄게’ 하면서 이인모 북송을 발표해버렸다. 차곡차곡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그렇게 불거지니 내가 총대를 멜 수밖에 없었다.”

-와이에스에게 섭섭하지 않았나?

“조선일보 등이 나를 친북좌파로 몰 때 대통령이 한두번쯤은 전화로 위로해주실 줄 알았다. 한 부총리 애쓴다고. 그런데 일체 없었다. 나도 아무 말 않고 있다가, 97년 12월 청와대 들어오라고 하길래 가서 말을 했다. ‘왜 특정 언론사 색깔론에 한마디 안 하셨나요.’ 어린아이처럼 웃으시면서 ‘한 박사 쫓아내라고 수백통씩 편지가 오는데, 참 어렵더라’고 하시는 거야. 그러니 뭐 더 말할 게 없지.”

-주변사람만의 책임인가?

“와이에스가 적대적 공생관계를 깨달았으면 그렇게 안 하죠. 체제의 권력 엘리트들은 남북 모두 악화를 빌미로 해서 자기 권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그 사람들은 남북관계 악화를 기다리는 거야. 그 프레임에 대통령이 갇힌 거야.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민주화 인권실현 복지 경제민주화 등 모든 개혁의 내용이 좌절된다는 진실을 와이에스가 몰랐어. 진실을 깨달을 만한 가슴이나 머리의 능력이 있었다면 달라졌겠지. 냉전수구 세력들의 여러 가지 참새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 거야. 나중에는 냉전수구 세력들이 ‘와이에스는 드디어 우리 손안에 잡혔다’고 환호작약했지. 그래도 와이에스는 여백이 있는 인간이니, 주변에 정말 철학과 비전, 용기 있는 사람이 채워졌으면 달라졌을 텐데, 수구냉전 세력이 그 여백을 메워버렸지.”

김의겸 선임기자 kyummy@hani.co.kr

[관련 영상] YS 서거 특집, 민주의의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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