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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여야·정파를 넘어…YS 기억 떠올리며 ‘조문정치’

등록 2015-11-23 21:33수정 2015-11-23 22:57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이날 오후 김영삼 전 대통령 조문을 한 뒤 빈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이날 오후 김영삼 전 대통령 조문을 한 뒤 빈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정·재계 인사 잇단 조문행렬

김무성·손학규 이틀째 빈소로
이회창, 방명록에 ‘음수사원’ 적어
“물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야”

동교동계 ‘맏형’ 권노갑 빈소 찾아
노건호씨 “아버님도 존경해온 분”
김상현 “포용과 결단 본받아야”

이재용·구본무·박용만 등
재계서도 조문 발길 이어져
김영삼 전 대통령의 국가장 이틀째인 23일에도 상도동계 인사들은 빈소를 찾아 상주 역할을 자임하며 이틀째 그의 곁을 지켰다. 한때 한국 정치의 중심에 있던 인물들의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고인과 애증이 얽힌 정치인들도 빈소를 찾았다. 정파와 여야를 넘어선 ‘조문정치’가 펼쳐졌다.

여당 내부 계파다툼도 ‘일단 멈춤’으로 변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전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하루종일 조문객을 맞이한 데 이어 이날도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를 마치자마자 빈소로 달려왔다. 김 대표와 공천 룰을 둘러싼 신경전을 벌이던 서청원 최고위원도 전날에 이어 빈소를 지켰다.

빈소는 맺힌 악연을 푸는 자리도 됐다. 김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지만 탈당 요구와 ‘와이에스(YS) 허수아비 화형식’ 등으로 관계가 멀어졌던 이회창 전 총리는 방명록에 ‘음수사원’이라는 사자성어를 썼다. 이 전 총리는 “물을 마시면 물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라는 뜻이다. 민주주의가 생활화되어 존재를 잊기 쉬운데, 김 전 대통령과 같이 역할을 한 분들이 있었기에 (민주화가)가능했다”고 덕담을 했다.

동교동계 ‘맏형’ 권노갑 전 의원도 빈소를 찾았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이 신민당 총재에 당선됐을 때 축하하러 김대중 대통령과 나, 김홍업 의원이 차를 타고 상도동으로 가는데 마포경찰서에서 경찰이 차를 끌고 가서 결국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지 못하게 했다. 그 후에 김대중 대통령 가택연금돼서 3개월 뒤에야 정치적으로 풀려났다”고 인연을 소개했다. 손학규 전 새정치연합 고문도 이틀째 빈소를 찾았다. 윤장현 광주시장도 빈소를 찾아 “광주 5월 폭거를 민주화운동으로 역사 속에 세워주신 고인에 대한 흠모와 애도의 뜻을 깊게 새기고 있다. 말씀하신 화합과 통합을 이루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앞줄 왼쪽)이 23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맨오른쪽)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앞줄 왼쪽)이 23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맨오른쪽)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저녁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씨가 중국에서 귀국해 빈소를 찾았다.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 곁을 지킨 김경수 전 비서관과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김영배 성북구청장, 차성수 금천구청장이 건호씨와 동행했다. 건호씨는 조문하기 전 ‘심경을 말해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화의 투사로서 아버님께서도 항상 존경해온 분”이라며 “삼가 조의를 표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건호씨와 김무성 대표의 6개월 만의 만남도 눈길을 끌었다. 건호씨는 지난 5월23일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서 인사를 하던 중 그 자리에 참석한 김 대표를 향해 “‘전직 대통령이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면서 내리는 빗속에서 피 토하듯 대화록을 줄줄 읽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셨다”며 면전에서 비난을 퍼부은 적 있다. 이날 빈소에서 안내자가 “우리 김무성 대표에게 좀 잘 해주세요”라며 건호씨를 김 대표 옆자리로 끌고가자 김 대표는 “쓸데 없는 소리”라며 웃었고, 건호씨는 고개를 숙이며 악수를 청해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김상현 민주화추진협의회 이사장은 추도사를 내 “김 전 대통령은 상도동계 인사들의 반대에도 나를 민추협 공동의장으로 만들 만큼 포용력과 결단력이 있는 정치인이었다. ‘나는 정치밖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고, 후배 정치인들에게 스승과 같은 역할을 하신 그분을 우리가 본받고 따라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추도사에서 “분열과 갈등의 중병을 앓는 상황에서, 화합과 통합을 이루라는 고 김 전 대통령의 뜻을 제대로 받들어야 한다”고 말했다.김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고 김동영 의원의 부인 차길자씨는 빈소를 찾아 오열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조문했다.

 재계에서도 조문 행렬이 잇따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엘지그룹 회장과 구본준 엘지전자 부회장,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조문했다. 박용만 회장은 조문 뒤 기자들에게 “굵은 결정 많이 하셨고… 금융실명제도 하셨는데 이런 게 우리 경제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조카인 현정은 회장과 따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주한 외교사절들도 애도를 표했다. 마크 리퍼트 미국대사는 “미국을 대표해 가장 진심 어린 조의를 표한다”고 방명록에 썼다. 추궈훙 중국대사는 방명록에 “김 전 대통령은 생전 한국 사회 발전과 중한관계의 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으며, 영원히 역사에 기억될 것이라 생각합니다”라고 적었다.

 이날 밤 9시까지 9100여명이 조문하는 등 이틀 동안 1만2300여명이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았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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