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은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앞줄 왼쪽)이 23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맨오른쪽)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YS 민주화에 역행하는 YS사람들
당시 청와대민정비서관 김무성
제1정무장관 서청원
YS 뜻과 배치되는 작업에 총대
당시 청와대민정비서관 김무성
제1정무장관 서청원
YS 뜻과 배치되는 작업에 총대
“올바른 길을 걸어온 대다수 군인에게 당연히 돌아가야 할 영예가 상처를 입었던 불행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 잘못된 것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꼭 9일 만인 1993년 3월5일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유신독재·군사정권 시절의 정치군인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군사정권을 종식시킨 문민정부 5년을 관통한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의 예고편이었다.
과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김 전 대통령은 “‘5·16은 분명한 쿠데타라 생각한다”(1993년 6월3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고 못박았다. 또한 “1980년 5월, 광주의 유혈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되었다”(1993년 5월13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담화문’)며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일 제정도 발표했다. “새 문민정부는 임시정부의 빛나는 정통을 이어받고 있다”(1993년 8월15일 경축사)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임시정부에서 찾았다. 김 전 대통령의 ‘올바른 역사’에 대한 이런 신념은 문민정부에서 하나회 척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등 이른바 ‘과거 청산’이 이뤄질 수 있는 배경이 됐다.
당시 김무성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서청원 제1정무장관도 최측근 참모로 ‘역사 바로 세우기’에 앞장선 주역이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새누리당 1, 2인자가 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은 최근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의 ‘선봉’에 서 있다. 당시의 ‘김영삼표 올바른 역사’와 지금의 ‘박근혜표 올바른 역사’가 내용상 대척점에 있다는 점에서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은 역사인식은 극단적 모순을 드러낸다.
특히 김 대표는 최근 ‘국정화 정국’에서 “대한민국 국사학자는 90% 좌파다. 꼭 이겨야만 하는 역사전쟁이 시작됐다”며 국정화에 우려하는 다수의 여론과 ‘전면전’을 선포하는 반민주 행태를 보이고 있다. 나아가 김 대표는 ‘이승만 국부론’을 여러차례 강조하며 뉴라이트계의 ‘1948년 8월15일은 정부수립일이 아닌 건국일’이라는 주장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김 대표의 이런 태도는 “문민정부는 임시정부를 계승한다”는 김 전 대통령의 뜻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서 최고위원도 지난달 ‘교과서 국정화 비밀티에프 운영 의혹’을 제기하며 사무실로 찾아간 야당 의원들을 ‘화적떼’에 견주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정치적 아버지’ ‘정치 대부’라 부르는 김 전 대통령이 평생에 걸쳐 지우려 했던 친일·독재의 잔재를 오히려 미화하고, 김 전 대통령이 목숨 걸고 일군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작업에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는 박 대통령이 국정화 강행 의지를 분명히 밝힌 지난달 8일 트위터를 통해 “친일과 독재를 일방적으로 미화하는 국정화 시도 뿐 아니라 우리 국민의 절반을 졸지에 공산주의자로 만드는 수구세력들이 판치는 현정권이야말로 얼마나 반민주적이고 수구독재적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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