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가 한사람의 책임인가”
“87년 거산·후광 단일화했다면…”
“87년 거산·후광 단일화했다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과 ‘과’를 두고 전문가들과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김 전 대통령만큼 공과가 뚜렷한 대통령도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은 가운데, ‘대통령 김영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다.
김 전 대통령의 ‘공’으로 평가받고 있는 부분은 ‘군부독재 청산’과 ‘금융실명제 실시’ 등이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전 대통령이 취임한 뒤) 하나회 숙청, 5·18 특별법 제정, 금융실명제 실시 등 역사적 성과를 전격적으로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같은 날 김낙호 미디어연구가도 트위터에 “매력과 돌파력으로 오랜 민주화운동, 하나회 청산과 금융실명제 등 군부 청산”을 했다고 김 전 대통령의 공적을 꼽았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김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와이에스(YS), 디제이(DJ)라고 (대통령을) 친근하게 부를 수 있고 공공연하게 대통령 욕을 해도 잡혀가지 않을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고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시작돼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으로 이어진 ‘막걸리 보안법’에 대한 공포 없이 대통령을 풍자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의 ‘과오’에 대한 비판의 결은 다양했다. 정호희 전 민주노총 대변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전 대통령의 ‘반노조’ 태도에 대해 비판했다. “1997년 1월 민주노총 총파업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김영삼 대통령은 ‘선진국에서는 파업 안 합니다’ 드립(발언)으로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고 ‘세계화’ 집착으로 아이엠에프(IMF)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3당 합당과 이후 지역주의 고착화 책임론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과오라는 쪽에 방점을 찍은 이들은 “내가 아는 와이에스는 부산·경남을 통째로 들어 친일, 군부, 반민주 세력에게 헌납한 사람”(권혁웅 문학평론가), “‘우리가 남이가’가 경남을 대표하던 와이에스계와 대구·경북 기반의 군부독재 세력이 주고받은 말이라는 걸 사람들이 싹 잊은 듯”(자유기고가 노정태)이라는 평을 내놨다. 하지만 “3당 합당은 정치적으로 잘못된 선택이지만 합당 직후 선거가 있었고, 그 선거에서 부산·경남은 와이에스를 선택한다. 그게 통째로 부정선거가 아니었다면, 부산·경남은 자발적으로 그 길을 택한 것”(박성호 딴지일보 정치부장)이라는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역사에는 가정이 의미 없지만, 1987년 대선 전후 ‘거산’(巨山·김영삼)과 ‘후광’(後廣·김대중)이 단일화와 권력배분에 합의하고 공동정부를 추진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조국 교수)는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외환위기 책임론에 대해서도 재평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트위터에선 김 전 대통령을 ‘아이엠에프의 원흉·주범’ 등으로 묘사한 사람이 많았지만, ‘정경유착 등의 다른 원인을 내버려두고 김영삼 대통령 탓만 하긴 어렵다’는 반응도 있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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