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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닭 모가지” 부터 “우째 이런 일이” 까지…거침없던 YS 어록

등록 2015-11-22 21:37수정 2015-11-23 15:28

1993년 2월24일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후 식장을 떠나기 앞서 참관인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김영삼 대통령. 연합뉴스
1993년 2월24일 대통령 취임식을 마친후 식장을 떠나기 앞서 참관인들을 향해 손을 흔드는 김영삼 대통령. 연합뉴스
김영삼 전 대통령 어록…거침없는 발언 퇴임 이후에도 이어가
“나를 해외로 보내려면 시체로 만든 뒤에 부쳐라”(전두환 정권)에서
“깜짝 놀랬재, 굶으면 죽는다,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까지
현직 대통령, 대선후보에게도 “독재자”, “칠푼이” 거침 없어

22일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주투사 시절부터 대통령 퇴임 이후인 최근까지 숱한 어록을 남겼다. 김 전 대통령은 야당 시절은 물론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주변의 눈치를 전혀 보지 않는 거침없는 발언을 이어갔다.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말들이다.

<야당 시절>( ~1990)

△“머리는 빌릴 수 있어도 몸은 빌릴 수 없다”
-평소 건강을 강조하면서



△“한국에는 통치가 있을 뿐이고, 정치가 없다. 정치가 없는 곳에 민주주의는 없다.”(1973년 9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대중 납치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대도무문”(大道無門, 정직하게 나가면 문을 열린다.”)(1979년 5월)
-신민당 총재 재선 직후



△“이 정권(박정희 정권)은 필연코 머지 않아서 반드시 쓰러질 것이다. 쓰러지는 방법도 무참히 쓰러질 것이다.”(1979년 8월)
-서울 마포 신민당사에 들어와 농성을 벌이던 YH무역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여성 노동자 1명이 추락하는 사건이 발생한 뒤 ‘YH사건 백서’를 발표하면서. 두 달 뒤 10.26 사건이 일어났다.



박정희는 김영삼 총제를 국회에서 제명 시킨다.
박정희는 김영삼 총제를 국회에서 제명 시킨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1979년 10월)
-유신정권이 당시 신민당 총재이던 그에 대해 국회의원직 제명을 하자



△“하나님도 원수를 용서하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를 용서해야 합니다”(1979년 10월)
-10.26 뒤 박정희 대통령 청와대 빈소를 찾아



1983년 5월, 23일 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던 김영삼 전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1983년 5월, 23일 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던 김영삼 전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나를 해외로 보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시체로 만든 뒤에 해외로 부치면 된다.”(1983년 5월)
-가택연금중인 당시 광주민주화운동 3주기에 민주화 요구 성명을 발표하고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을 때, 병실을 찾은 민정당 사무총장 권익현에게 내뱉은 말



△“박종철군 사건으로 온 국민이 우울한 지금, 민정당의 6·10 전당대회에서 하는 대통령 지명대회는 초상집에서 춤을 추는 격이다.”(1987년 6월)
-국회의사당 단식농성 중 인터뷰에서



△“100만명이 뭐꼬, 1000만명은 해야지.…누가 세리(헤아려) 보나?”
-1987년 전두환 정권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 투쟁을 벌일 때, DJ가 YS에게 ‘100만인 서명운동’을 제안하자, YS가 역제안 하면서. DJ가 “1000만명을 어떻게 채우느냐”고 하자. ‘1000만명’으로 최종 결정



△“노태우씨는 쿠데타를 한 사람이다. 쿠데타한 사람이 대권을 잡는 것은 군정의 연장이다.”(1987년 대선 당시)
-1987년 대선 후보 자격으로 관훈클럽 토론회에 나와



198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대규모 군중 유세하는 김영상 당시 민주당 후보의 모습. 연합뉴스
1987년 12월 대선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대규모 군중 유세하는 김영상 당시 민주당 후보의 모습. 연합뉴스
△“선거혁명을 통한 민주화가 내 지론이었으나, 이 정권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젯밤과 오늘 내내 생각한 끝에 이 정권을 완전히 타도할 것을 결심했다. 나는 박정희 정권을 타도시킨 사람이다. 기필코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타도할 것이다.”(1987년 12월)
-대통령 선거 직후 기자회견에서



1990년 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가운데)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왼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오른쪽)가 청와대에서 긴급 3자회동을 갖고 민정, 민주, 공화 3당을 주축으로 신당창당에 합의했음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1990년 1월 당시 노태우 대통령(가운데)과 김영삼 민주당 총재(왼쪽), 김종필 공화당 총재(오른쪽)가 청와대에서 긴급 3자회동을 갖고 민정, 민주, 공화 3당을 주축으로 신당창당에 합의했음을 발표하는 모습. 연합뉴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 (1990년 1월)
-3당 합당을 하면서 언급한 말


<대통령 재임시>(1993~98) 

△“명예가 아닌 부를 택하려면 공직을 떠나라.”(1993년 2월27일)
-첫 국무회의에서 ‘고위 공직자 재산 공개’를 선언하면서. 이후 서울시장, 법무·건설·보사부 장관 재산이 논란을 낳아 교체했고, 김재순·박준규 의원에게도 불똥이 튀어 김재순 의원은 ‘토사구팽’이라는 말을 남긴 뒤 의원직을 던졌고, 박준규 의원은 ‘격화소양’이라는 말을 남기고 민자당을 탈당했다.



△“정치자금을 단 한 푼도 받지 않겠다. 떡값이 아니라 찻값이라도 받지 않겠다.”(1993년 3월4일)
-취임 직후 첫 청와대 출입기자 오찬 간담회에서



재판정에 선 전직 대통령 전두환(오른쪽)·노태우씨. ‘하나회’의 원조인 ‘적폐’가 죗값을 치르는 순간이었다.  자료사진
재판정에 선 전직 대통령 전두환(오른쪽)·노태우씨. ‘하나회’의 원조인 ‘적폐’가 죗값을 치르는 순간이었다. 자료사진
△“깜짝 놀랬재?”(1993년 3월9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에서. 전날 예고없이 김진영 육군참모총장 경질을 시작으로 ‘하나회’ 숙청을 시작하면서.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릴 수 밖에 없다”(1993년)
-하나회 척결에 대한 반발에 대해



△“우째 이런 일이…”(1993년 5월)
-최형우 민자당 사무총장 아들의 대입 부정과 관련해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대통령 취임식 뒤 카퍼레이드를 하면서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22일 새벽 0시22분에 서거했다.  연합뉴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대통령 취임식 뒤 카퍼레이드를 하면서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22일 새벽 0시22분에 서거했다. 연합뉴스
△“문민정부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정부다.”(1993년 5월13일)
-5·18 특별담화문에서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을 갖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하겠다.”(1993년)
-신경제계획 민간위원과의 조찬에서 부동산실명제를 소개하면서



△“대통령으로서 부덕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 관련 대국민 특별담화에서



1995년 7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 교민환영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연합뉴스
1995년 7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 교민환영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번 기회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1995년 11월)
-1995년 한·중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당시 일본 총무상이 “식민지 시절 좋은 일도 있었다”고 한 망언을 겨냥해 일본을 강도높게 비판하면서



△“북한이 국지전을 일으키면 전면전으로 갈 수 있다” (1996년)
-여야 및 국회 지도자들과의 회담에서



△“아들의 허물은 곧 아비의 허물이라 여기고 있다.”(1997년)
-‘소통령’으로 불리던 아들 현철씨가 구속되자 대국민사과를 하면서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1998년 2월)
-퇴임사에서


<퇴임 이후>(1998~2015)

△“박정희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남았으며 결코 미화될 때가 아니다”(1999년 5월)
-시국성명에서. 김대중 정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시작되는 것을 비판하면서. 그러자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하면 옳다고 주장하고 남이 하는 것은 부정하는 반사회적 성격의 인물이 다시는 정치 지도자가 돼서는 안 된다”며 김 전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공격했다.



△“23일간 단식한 사람인데 점심 한끼 굶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2000년 10월)
-특강을 위한 고려대 방문을 학생들이 가로막자 승용차에서 기다리겠다며



△“노벨상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2000년 10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소식을 듣고  



△“나도 23일간 단식해 봤지만, 굶으면 죽는 것은 확실하다.”(2003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 의혹 특검법 통과를 위해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10일간 단식하자 단식 중단을 종용하며



△“일본이 상당히 우경화되고 교만해졌다.”(2005년)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의 예방을 받으면서



△“(한나라당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한다.”
-2008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김무성 의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나라당 공천심사가 엉망이라고 비판하면서



△“하나회가 그대로 있었다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2008년)
-자신이 단행한 군내 사조직 ‘하나회’ 숙청을 언급하면서



△“그렇게 (화해했다고) 봐도 좋다. 이제 그럴 때가 온 것도 아니냐.”(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일 전 문병 뒤 ‘화해한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영삼 전 대통령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에서 헌화를 마친 뒤 이희호 여사에게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영삼 전 대통령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에서 헌화를 마친 뒤 이희호 여사에게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아쉽고도 안타깝다. 나라의 큰 거목이 쓰러졌다고 생각한다.”(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쿠데타 세력이 제일 나쁘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긴급조치로 국민들을 괴롭혔던 것을 다 잊어버린 것 같다.”
-2010년 5월 취임 인사차 들른 김무성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에게



△“사자도 아니다. 칠푼이다. 별 것 아닐 것”(2012년 7월)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김문수 경기지사가 김영삼 대통령을 예방해 “이번에는 토끼(김문수)가 사자(박근혜)를 잡는 격”이라고 하자 박근혜 의원을 비난하면서. 당시 김 전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을 해서는 안 된다. 역사의 흐름과 맞지 않는다”(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비판하며



△“잘 해래이”(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은 김무성 대표가 자신을 예방하자, ‘열심히 하라’며  



권태호 김원철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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