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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양김시대’ 역사속으로…새로운 정치 리더십 과제로

등록 2015-11-22 21:15수정 2015-11-22 21:57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2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자택(오른쪽 건물)의 이웃 주민들이 조기를 내걸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22일 오전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자택(오른쪽 건물)의 이웃 주민들이 조기를 내걸어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970년 40대 기수론으로 전면등장
박정권·신군부 체제서 민주화 투쟁
대중지지 힘입어 잇단 대통령 역임
제왕적 권력…임기말 자식들 구속
2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나라에서 ‘양김씨’로 불렸던 대중 정치인의 시대가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야당의 역사는 1955년 9월 출범한 민주당에서 출발한다. 민주당에는 한민당과 민국당 출신의 ‘구파’, 새로 창당에 참여한 ‘신파’가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구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신파였다.

두 사람은 1970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40대 기수론’으로 전면에 등장한 이후 30년 동안 우리나라 정치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1970년대에는 대선후보, 야당 총재, 재야인사로 신분을 바꿔가며 함께 반독재 투쟁을 펼쳤다. 두 사람의 투쟁은 결국 박정희 정권의 몰락을 앞당겼다.

1980년 신군부 쿠데타와 전두환 정권 출범 뒤 두 사람은 각각 미국과 국내에서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 목숨을 건 단식과 목숨을 건 귀국을 감행했다. 그리고 1987년 6월항쟁과 직선제 개헌이라는 결실을 이끌어냈다. 두 차례의 군사 쿠데타로 더럽혀진 우리나라 헌정사가 민주화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던 데는 양김씨의 공이 절대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2일 오전 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계마을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에 걸려 있는 김 전 대통령 사진을 관계자들이 내리고 있다. 이 사진은 이 지역 분향소에 영정으로 걸렸다. 거제/연합뉴스
22일 오전 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계마을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에 걸려 있는 김 전 대통령 사진을 관계자들이 내리고 있다. 이 사진은 이 지역 분향소에 영정으로 걸렸다. 거제/연합뉴스
두 사람이 오랫동안 민주화의 견인차 구실을 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대중의 사랑과 지지 때문이었다. 군 엘리트 출신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달리 두 사람은 국회의원을 지냈고 정당에서 잔뼈가 굵었다. 권력은 선거에 의해 창출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체득하고 있었고 민심의 흐름에 매우 밝았다.

거기다가 각각 부산·경남과 호남이라는 지역 기반이 있었다. 대중의 지지와 지역 기반이라는 정치적 자산은 두 사람을 각각 1992년과 1997년에 대통령 자리로 밀어올렸다.

하지만 ‘양김시대’는 빛이 화려한만큼 그림자도 짙었다. 독재 권력과 싸우며 양김씨는 조금씩 독재 권력을 닮아갔다. 두 사람은 공천과 정치자금을 한손에 주무르는 ‘제왕적 총재’였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집권여당 총재를 맡아 공천과 창당에 개입했다.

견제받지 않는 절대권력은 반드시 탈이 난다. 두 사람 모두 임기 말에 자식들이 구속되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지지율은 급락했고 자신이 만든 정당에서 탈당까지 해야 했다.

양김시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한 2003년 2월24일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 훨씬 이전에 이미 정치적 영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김씨가 남긴 정치적 유산은 지금까지 우리 정치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첫째, 지역갈등이다. 양김씨의 1987년 분열과 1990년 3당합당으로 격화된 영호남의 지역갈등은 지금까지 거의 해소되지 않고 있다. 선거 때마다 극심한 표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서도 권력기관장을 영남 출신이 싹쓸이하고 있다.

둘째, 리더십 공백의 후유증이다. 제왕적 총재는 사라졌는데도 많은 국민들이 양김시대의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대통령에게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책임을 양김씨가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등 후임자들이 새로운 시대 상황에 걸맞은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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