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손명순 여사가 빈소를 찾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빈소 유가족 표정
건강 나빠 임종 자리 못지켜
현철씨 등 4남매가 조문객 맞아
건강 나빠 임종 자리 못지켜
현철씨 등 4남매가 조문객 맞아
“춥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내 손명순(87)씨가 22일 아침 뒤늦게 남편의 부고를 듣고 한 첫마디였다. 김 전 대통령의 셋째 딸 혜숙(54)씨는 이날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머니가) 평소에도 말을 잘 안 하시는데 (소식을 듣고) 별로 추운 날씨가 아니었는데 춥다고 하시더라. 손을 덜덜 떠시면서 무척 힘들어하셨다”고 전했다.
손씨는 64년을 해로한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키지는 못했다. “(어머니가) 받을 충격을 고려해 오늘 아침에야 소식을 알렸다”는 게 차남 현철(56)씨 얘기다. 손씨는 오전 10시15분께 검은 상복 차림으로 휠체어를 타고 빈소에 도착했다. 거친 숨을 내쉬며 현철씨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의 부축을 받아 힘겨운 모습으로 입장한 그는, 침묵 속에서 남편의 영정 앞에 흰 국화를 바쳤다. 그를 알아본 정치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머리 숙여 위로를 전했지만 손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내실로 들어갔다. 내실에서 비서관 등을 통해 등받이 쿠션을 찾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손씨는 오후 4시께 장례식장을 떠났다.
손씨는 이화여대에 다니던 1951년, 김 전 대통령과 중매로 결혼했다. 결혼을 금지했던 당시 이화여대 학칙에 따라 몰래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이 27살 나이로 ‘최연소 국회의원’이 된 이후로는 줄곧 ‘정치인의 아내’로 살았다. 가택연금 등 정치적 풍파를 함께 겪었지만 막상 퍼스트레이디가 된 뒤에는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런 아내에게 “화를 잘 내는 저에게 언제나 져줬고, 한번도 자신을 내세운 적이 없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결혼 60주년을 맞은 2011년의 일이다.
손씨는 김 전 대통령의 병세가 심해진 3년여 전부터 말수가 부쩍 줄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의 여동생 김호아(81)씨는 “언니(손씨)는 오빠가 아픈 뒤로 말수도 적고 많이 우울해했다”고 전했다.
22일 빈소의 조문객들은 김 전 대통령의 자녀인 혜영(63), 은철(59), 현철, 혜숙씨가 맞았다. 미국에 머물고 있던 딸 혜경(61)씨는 이날 오후까지 도착하지 못했다. 차남 현철씨는 각계의 조문객들과 아버지와 겪은 추억을 나누며 앞으로의 장례 절차를 논의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오전 8시50분께 빈소를 찾자 현철씨는 “입원하신 뒤 말씀을 잘 못하시던 아버지가 2013년 붓글씨로 평소에 안 쓰시던 ‘통합’과 ‘화합’을 쓰시더라. 자세한 설명은 없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말씀만 하셨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표 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을 만난 자리에서는 오랜 기간 야당 의원으로 험난하게 살아온 삶을 이야기하며 “1954년 당시 여당이었던 자유당을 7개월 만에 탈당하고 야당의 길로 가셨다. 정치 인생을 가른 기점이 됐다”고 했다.
자녀들은 갑작스레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을 비통해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현철씨는 “너무 쉽게 가셨다. 지난 목요일 갑작스럽게 혈압이 80 아래로 내려가 입원한 뒤 3일 만에 가시게 된 것”이라고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사흘을 설명했다. 빈소는 이날 새벽부터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에 있는 500㎡ 면적 1호실에 차려졌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1987년 9월, 당시 김영삼 민주당 대선 후보가 상도동 자택에서 부인 손명순 여사와 아침 식사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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