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를 떠나 김영삼까지는 ‘서거’로 인정함”
김영삼 대통령만큼 지지율에서 부침이 심했던 국가원수가 있었을까. 초기 금융실명제 전격 실시하고 하나회 척결을 단행했을때는 대학생이었던 나도 매일 신문보는 것이 정말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정말 신나고 희망적이었다. 지지율이 90%쯤 됐던 기억.
— 임정욱 / Jungwook Lim (@estima7) November 22, 2015
독재자 박정희에 맞서 가장 강렬하게 싸웠던 정치인은 김영삼이 맞다. 심지어 김대중보다도 더 강렬하게.
따라서 나는 그의 모든 과오를 잊어 버리고, 삼가 옷깃을 여미고 그에게 조의를 표한다.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정신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박성호 (@murutukus) November 21, 2015
김영삼이 죽었다. 어떤 인물의 죽음은 어떤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느낌이다. 그는 재미난 사람이었다. 나는 김대중을 가장 좋아라 하지만, 김영삼이야 말로 가장,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인간에 가장 가까웠다.
— 임재영/글라인 (@rmffkdls) November 21, 2015
김영삼은 업적 중에 제일 좋아하는건 사실 대통령 시절 업적보다 YH 여공들에게 신민당사를 내주고 보호했던 것이지. 박정희의 폭력진압 후 노조원들이랑 같이 붙잡혀나오고 그 일로 제명도 당함.
— 포샤 (@Cerisier_B) November 21, 2015
"김영삼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93년 6월3일): 5.16은 분명히 쿠데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역사를 얼마나 후퇴시킨 하나의 큰 시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 Gls0o (@Gls0o) November 22, 2015
김영삼, 집권 기간에는 몹시 싫어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조문갈 의향도 있다.
금융실명제, 토지공개념, 하나회 숙정. 그리고 무엇보다 대선에 굳이 개입하지 않았고, 평화적 정권교체에 의한 민주정부가 들어서는데 기여했다.
명복을 빈다.— 여행자까 환타 (@trimutri100) 2015년 11월 21일
공.과를 떠나서 김영삼까지는, 서거로 인정함...! pic.twitter.com/U0TzWDr9cM
— 다반향초(茶半香初) (@Davan_Khan) November 22, 2015
'공과 과를 논한다'고 하려면 김영삼 정도가 좋은 대상이지. 독재자들은 그런 평가 대상조차 아님.
— 하회탈 (@highlighter15) November 21, 2015
부산 경남, 영남권 전체를 정치적 보수화의 덫에 갇히게 한 사건이 삼당합당이고 그 주역이 김영삼이다. 한 세대 가량 정치 퇴화를 불러왔다. 이명박 박근혜와의 이 혹독한 불화, 불필요한 퇴행의 뿌리도 삼당합당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원죄다.
— 저너머 (@dasidoro) 2015년 11월 22일
진짜 김영삼 대통령이 그나마 잘 한 일도 많은 대통령이었다고 추모하는 거 보니 기분 묘하다. 나는 대통령들 다 그 정도는 할 줄 알았어, 솔직히.
— 명정(酩酊) (@redparco) November 22,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