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를 수사 중인 검찰이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조사하고, 이완구 전 총리도 곧 소환하기로 하는 등 개인별 정치자금 의혹에 대해서는 속도를 내고 있지만, 대선자금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는 ‘새누리당 선거캠프 2억원 전달 의혹’ 수사에선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과거 공천헌금 수사 등에 견줘봐도 검찰의 수사 의지가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은 최근 경남기업 재무담당 한아무개 전 부사장한테서 “2012년 11월께 경남기업 회장실로 찾아온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 김아무개씨에게 2억원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씨는 그 돈이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갔고 어떻게 쓰였는지는 모른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성 전 회장은 목숨을 끊기 직전인 지난달 9일 언론 인터뷰에서 ‘2012년 대선 당시 홍문종 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에게 2억원 정도를 줬다’고 했는데, 한씨가 김씨에게 건넸다는 돈이 홍 의원에게 전달된 돈을 가리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하지만 수사팀은 아직 김씨나 새누리당 대선 캠프 쪽에 대한 압수수색은 물론 김씨 소환 등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은 과거 현영희 전 새누리당 의원의 공천 로비 수사에서 검찰이 보인 태도와 비교된다. 현 전 의원은 2012년 총선 당시 부산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으려고 비서 정아무개씨를 시켜 조기문 전 새누리당 부산시당 홍보위원장에게 3억원을 전달한 혐의를 받았다. 조씨를 통해 공천심사위원이던 현기환 전 의원에게 공천헌금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당시 선거관리위원회는 현영희 전 의원과 현기환 전 의원을 각각 고발·수사의뢰했고, 부산지검은 5일 뒤 현기환 전 의원과 조기문씨 집을 압수수색하는 등 적극 수사에 나섰다. 조씨는 혐의를 부인했지만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기소 단계에서는 조씨가 받았다는 돈이 5000만원으로 줄었지만, 조씨는 지난해 1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6월이 확정됐다. 다만 검찰은 현기환 전 의원에 대해서는 혐의점을 찾지 못해 기소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이번 사건보다 제보자 진술이나 정황증거가 더 구체적이기는 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일반 사건 기준으로 보면 성 전 회장의 메모나 녹취록 정도의 첩보만 있으면 리스트에 나온 인사들을 상대로 압수수색영장 청구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수사팀은 돈을 받았다는 쪽에 대한 강제수사는 전혀 진행하지 않고 있다. 경남기업을 압수수색하고 성 전 회장 측근 2명만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했을 뿐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돈 전달자가 살아 있는 사건도 내사 기간이 한달 정도면 그리 느린 수사가 아니다. 수백만개의 퍼즐을 맞추는 작업과도 같아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는 대선자금 수사에 대해서는 단서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기보다는 ‘단서가 나오면 수사하겠다’는 소극적 태도로 임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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