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오른쪽)가 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주승용 최고위원이 “친노패권주의가 선거 참패의 원인”이라며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하는 동안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재보선 책임을 둘러싸고 최고위원회에서 공개 설전이 벌어진 지난 4일 아침 문재인 대표의 표정은 슬퍼 보였다. 주승용 최고위원의 날선 공격에도 문재인 대표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는 최고위원회를 마치고 광주로 내려가 서구 서창동 발산마을회관과 풍암동 부영2차 경로당을 방문했다. 광주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더 크게 혁신하고 더 크게 통합하겠다. 길게는 야권통합도 이루어서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로 반드시 보답하겠다.”
“우리 당이 그동안 누려온 여러 기득권을 다 내려놓겠다. 환골탈태해서 완전히 새로운 정당으로 만들어 나가겠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는 분명하다.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것일까? 야권통합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환골탈태를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최고위원회에서 문재인 대표는 “공천혁신, 지역분권 정당, 네트워크 정당 등 3대 혁신추진단을 중심으로 국민과 당원에게 약속한 혁신에 속도를 더 높이겠다”고 했다. “인재영입위원회를 통해 새로운 인재들을 영입하고 수권정당에 걸맞은 인물들을 키워 나가겠다”고 했다.
제목뿐이지만 뭔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또 궁금하다. 공천혁신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일까? 지역분권 정당과 네트워크 정당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을 어떻게 영입하겠다는 것일까?
4·29 재보선 이후 문재인 대표에게 쏟아지는 당 안팎의 주문을 요악하면 “기득권을 내려놓고 근본적인 혁신을 하라”는 것이다. 지금 문재인 대표가 하는 말과 똑같다. 그런데 ‘어떻게’를 제시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결국 ‘어떻게’는 문재인 대표가 찾아야 할 몫이다.
비판자는 본래 좀 무책임하다. 언론과 정치학자들의 진단과 처방도 내용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 ‘친노부터 넘어서야 살 길이 열린다’, ‘비선라인에 사로잡힌 문재인’ 등의 표현은 공허하거나 사실이 아니다.
필요 이상의 가혹한 비판은 상대의 기를 꺾으려는 노림수일 수도 있다. 도달할 수 없는 수준을 목표로 제시하고 “역시 너는 안 돼”라고 상대를 좌절시키는 수법이다.
생각해보자. 정치에서 ‘근본적 혁신’이라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우리나라 정당이 근본적 혁신을 한 적이 있었을까?
김영삼의 민자당, 이명박의 한나라당, 박근혜의 새누리당이 근본적 혁신을 해서 집권한 것일까? 1997년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 2002년 노무현의 민주당은 근본적 혁신으로 집권했을까? 솔직히 말해보자. 정말 그럴까?
최근 종합편성채널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나 출연자들은 문재인 대표에 대한 호남의 비판 여론을 반복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을 호남-친노 분열 프레임에 가두려는 의도다.
새정치연합 내부에 “문재인은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문재인 불가론’이다. 어쩔 수 없다. 문재인은 제1야당 대표이면서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다. 선거에 졌으면 이 정도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
불가론은 옛날에도 있었다. 1995년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은 야심적으로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해 1996년 4·11 총선에 나섰다. 겨우 79석을 차지했다. 신한국당의 ‘잠룡’들은 아무나 나가도 김대중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야권에서는 ‘디제이 불가론’과 ‘제3후보론’이 들끓었다. 그러나 1997년 12월18일 대통령 선거 당선자는 김대중이었다.
2002년 3월 새천년민주당은 노무현을 대선 후보로 선출했다. 3개월 뒤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참패했다. 노무현 후보 지지율은 반토막이 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탈당해서 후단협(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을 만들었다. ‘노무현 불가, 정몽준 대안’을 외쳤다. 12월19일 대통령 선거 당선자는 노무현이었다.
문재인은 김대중·노무현이 아니다. 불가론의 벽은 매우 높다. 그러나 넘지 못할 장애물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는 막판 6개월의 기획과 집중력으로 승부가 난다. 평소에는 기초체력을 길러야 한다. 기초체력은 국민들의 신뢰다.
문재인 대표가 2017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그건 먼 훗날의 얘기다. 그에게는 당장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과 후보들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떨어져 있다.
문재인 대표가 공천혁신, 지역분권 정당, 네트워크 정당, 인재영입에 성공할 수 있을까? 없다.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원들, 당직자들의 저항이 극심할 것이다. 그의 정치적 경험과 주변 참모들의 능력을 생각하면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차피 정치에서 화려한 개혁은 반드시 실패한다.
문재인 대표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집중력이다. 볼링의 킹핀처럼 파급효과가 가장 큰 ‘바로 그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
제도 개혁일 수도 있고, 인적 청산일 수도 있다. 다른 정치인과의 연대일 수도 있다. 선택은 문재인 대표가 해야 한다. 그리고 과감하게 실천해야 한다. 시간은 문재인 대표와 새정치연합을 마냥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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