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과 ‘이완구 거취’ 등 40분 독대…결단 미뤄
오전엔 팽목항 갔지만, 유족들 자리 떠 못만나
분향소 폐쇄…돌아서는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낮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있는 분향소를 방문했으나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위와 관련한 정부 조처 등에 항의하며 임시 폐쇄해, 분향소 앞에서 돌아서고 있다. 박 대통령은 유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채 남미 순방을 떠났다. 진도/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현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완구 국무총리의 거취에 대해 “(중남미 순방을) 다녀온 뒤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또 “의혹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길이라면 어떠한 조치라도 감수할 용의가 있다”고 특검 수용 의사도 내비쳤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9박12일간의 중남미 순방길에 오르기 직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40분간 독대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김 대표가 밝혔다.
앞서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인 이날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하지만 팽목항에서 유족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박 대통령의 방문 소식을 접한 가족들이 참사 이후 보여준 박 대통령의 그간의 행보와 세월호특위를 둘러싼 정부의 조처 등에 항의하며 현지 분향소를 임시 폐쇄하고 자리를 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폐쇄된 분향소 문 앞에 놓인 실종자 9명의 사진과 실종자 가족들의 임시 숙소 등을 둘러보는 데 그쳤다.
박 대통령은 이날 팽목항 방파제 중간에 서서 세월호 선체 인양에 착수하겠다는 대국민 메시지를 밝혔다. 박 대통령은 “9명의 실종자들과 가족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며온다”며 “빠른 시일 내에 선체 인양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요구하고 있는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폐지 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이어 출국 직전 출발시간까지 늦춰가며 오후 3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급히 회동을 했으나, 이완구 국무총리의 거취 문제 등에 대한 결정은 미루고 국정운영에 대한 협조만을 당부하는 데 그쳤다. 이 총리 거취 결정은 박 대통령이 남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27일 이후까지 미뤄지게 됐다.
박 대통령이 김 대표와의 회동을 갑자기 정하는 바람에 애초 예정보다 3시간30분 늦은 오후 5시30분께 출국했고, 첫 방문지인 콜롬비아 현지 환영 행사는 취소됐다. 여당 대표와의 독대를 이유로 박 대통령이 당일 출국을 연기한 것을 보면, 역설적으로 박 대통령의 세월호 1주기 출국이 절박한 게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날 청와대가 준비한 세월호 1주기 추모 일정은 박 대통령과 정부가 공들여 준비했다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청와대는 그동안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가장 진정성 있게 유가족을 위로하는 행보가 무엇일지 다양한 형태의 추모 행사들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해왔다. 하지만 정작 박 대통령은 희생자·실종자 가족을 만나지도 못했고, 이런 상황을 예상해 미리 유족들을 설득하려는 시도조차 없어 결국 ‘나홀로 추모’라는 상황을 빚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신설된 국민안전처는 경찰과 군인, 소방관, 공무원 등을 불러 모아 서울 코엑스에서 25분짜리 ‘국민안전 다짐대회’라는 행사를 열었지만, 식순에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추모 순서는 없었다.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관련영상] ‘비타3000’ 대통령은 몰랐을까? / 돌직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