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리스트 파문
10일 공개된 ‘성완종 리스트’는 박근혜 정권의 심장부를 정면으로 겨누고 있다. 리스트 등장인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 ‘친박 실세’들이다. 역대 어느 ‘뇌물 리스트’보다 면면이 화려하다. 리스트의 신빙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나올 경우 ‘역대 최대의 정치권력 부패 스캔들’로 기록될 수도 있다. 박 대통령 본인과 이완구 국무총리가 ‘부정부패 척결’을 천명한 마당에, 박 대통령의 ‘턱밑’에서 일해온 인물들이 ‘검은돈’의 수령자였던 것으로 확인되면 박근혜 정권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명단에 실린 허태열, 김기춘 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초대, 2대 비서실장 출신이다. 허태열 전 실장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직능총괄본부장을 맡고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경선자금 7억원을 건넸다”고 밝힌 시점이다. 친박 내부 사정에 밝은 정치권의 한 인사는 “대선후보 경선 때 허태열 전 실장이 자금모집책 역할을 한 건 맞다”고 전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2007년 경선 때 박근혜 경선후보 비서실장이었고 2012년 대선 때엔 선대위 직능총괄본부장을 했다. 정당의 직능총괄본부는 각종 경제단체나 업종별 협회 등 직능별 이익단체들의 ‘민원창구’ 구실을 하는 조직이다. 선거 때면 자금을 조달하는 ‘수금창구’ 구실을 하기도 한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사무총장이었고 홍문종 의원 역시 그 뒤를 이어받아 사무총장을 했다.
김기춘 전 실장 이름 옆에는 10만달러란 액수와 함께 ‘2006년 9월26일’이란 날짜가 적혀 있다. 이에 대해 김 전 실장은 “2006년 9월26일엔 독일에 있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김 전 실장은 당시 박근혜 의원의 독일 방문(9.23~10.2)을 수행했다. 당시에도 김 전 실장에 대한 박 대통령의 신뢰가 각별하다는 사실이 널리 퍼져 있었다. 김 전 실장은 독일 출장에서 돌아온 뒤 동행했던 기자들과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해단식’을 주재하는 등 독일 방문단의 실질적 좌장 구실을 했다.
성완종 전 회장은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특보단장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이완구 총리는 자민련 원내총무를 하며 성 전 의원과 친분을 쌓았으나 충남도지사 시절엔 사이가 벌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 총리는 이날 낸 해명자료에서 “최근 성 회장이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와 총리의 담화가 관련 있는 것 아니냐고 오해를 하고 있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으며, 이에 검찰 수사가 총리 취임 이전부터 진행되어온 것이라고 주변에 답변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성 전 의원이 ‘부정부패 척결 담화’를 발표하며 검찰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듯한 모양새를 보인 이 총리에 대한 섭섭함을 주변에 토로했을 정황이 엿보인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은 “검찰 수사와 관련해 내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하자 인간적으로 섭섭했던 것 같다”고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해명했다. 이 실장은 경남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가 언론에 보도될 무렵 성 전 회장과 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직접 전화 통화를 할 정도로 친분이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1억’이라고 적힌 홍준표 경남지사를 제외하면 리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들이다. 당사자들은 펄쩍 뛰며 부인하고 있지만 그대로 덮을 경우 박근혜 정권이 끝날 때까지 파장이 이어질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지게 됐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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