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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박종철에게 빚진 ‘새정치’…그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등록 2015-03-22 19:41수정 2015-04-09 00:49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제청 철회를 촉구하는 손팻말과 1987년 당시 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씨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대법원에 제청철회 요구서를 제출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제청 철회를 촉구하는 손팻말과 1987년 당시 고문으로 숨진 서울대생 박종철씨의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대법원에 제청철회 요구서를 제출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상옥 청문회에 대한 입장 곧 결정 하는 새정치
[현장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박종철에게 빚진 정당이다. 안정적 제1야당의 지위에, 두차례의 정권 획득 기회를 누려본 것 역시, 박종철의 죽음이 기폭제가 된 6월항쟁과 그 제도적 타협물인 직선제 개헌 덕분이다. 그들이 ‘대법원 길들이기’, ‘운동권 정당의 갑질’이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대법관 후보자 박상옥의 청문회 개최를 한사코 거부해온 것은 박상옥의 인생 궤적에 드리운 박종철의 흔적 때문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알려진 대로 박상옥은 서울지검 형사부 재직 시절인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수사팀에 ‘막내 검사’로 참여했다. 수사팀 ‘말석’에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라는 게 그의 항변이지만, 축소·은폐 논란으로 얼룩진 1차 수사 때 고문 경찰관 3명을 박상옥이 직접 조사했다는 사실에는 다툼의 여지가 없다. 1차 수사는 박상옥이 수사한 강진규와 그의 선배 검사 안상수(현 창원시장)가 담당한 조한경을 기소하는 선에서 나흘 만에 마무리됐다. 하지만 4개월 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로 박상옥이 ‘혐의 없다’고 판단한 반금곤·황정웅 등 3명의 고문 가담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수사는 박상옥이 참여한 서울지검 수사팀에서 대검 중수부로 넘어갔다. 수사팀으로선 수치심을 가졌어야 정상이다.


제1야당 지위 누리고, 정권 획득해 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죽음이 기폭제 된 ‘6월 항쟁’과 ‘직선제 개헌’ 덕분



그런 박상옥을 ‘검찰 몫’ 대법관 후보자로 인준해 달라고 국회에 요청서를 들이밀었다. 새정치연합은 그가 공범의 존재를 알고도 윗선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의심했다. 새누리당은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을 뿐인 말석 검사에게 정치적 책임을 지우는 건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한달 넘게 청문회가 열리지 못하는 사이 여야 논쟁은 고문경찰 공판 조서에 등장하는 박상옥의 역할 해석 공방으로 변질됐다. 하나의 기록에서 야당은 ‘정치검사의 은폐 의도’를, 여당은 ‘진실을 향한 젊은 검사의 고뇌’를 읽어낸 것이다.

지난주를 고비로 새정치연합 안에선 청문회 개최론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우윤근 원내대표 등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진 청문회 불가피론의 논리는 ‘문제점을 충분히 부각시켰으니 더이상의 일정 거부로 국정 발목잡기라는 역공에 휘말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문제를 원점으로 돌려보자. 박상옥의 박종철 사건 수사는 진실에 접근했는가? 공범 3명의 존재와 경찰 상부의 은폐 지시를 밝혀내지 못했으니 박상옥은 실패한 검사다. 게다가 당시 검찰은 사건을 축소·은폐하라는 장세동 안기부장 주도의 관계기관 대책회의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종철 사건 이후 검사 박상옥은 승승장구했다. 여주지청 발령(1987년) 2년 만에 재경지청에 복귀했고, 같은 해 검찰총장 표창(1989년)까지 받았다. 2007년에는 ‘검찰의 꽃’ 검사장에 올랐고, 검사복을 벗은 뒤엔 재벌기업 사외이사와 국책연구원장을 거쳐 대법원 재판관 지위까지 넘보게 됐다. 민주주의의 기초를 뒤흔든 반인권적 사건의 한복판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의심받는 ‘1987년 말석 검사’가 28년 뒤 ‘정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인 대법관 후보자로 등장한 오늘의 상황을 훗날의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이세영 기자
이세영 기자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매년 6월이면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을 찾는다. 박종철의 묘도 그곳에 있다. 새정치연합은 24일 박상옥 청문회 개최 여부에 대한 최종 입장을 결정한다. 3개월 뒤 그들은 박종철 묘비 앞에 선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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