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AS] ‘부정 청탁’ 예외조항, 김영란법 원안과 최종안은 어떻게 다른가 고충 민원 전달, 불허→허용…이권단체들의 민원 전달 용인한 셈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간사(오른쪽)의 손을 잡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국회의원을 브로커로 만들 수 있다.”
김영란법 제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대국민 특강’에 나섰습니다. 김 전 위원장은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2012년 자신이 제안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의 입법예고안(이하 원안)이 ‘축소 수정’된 데 대한 아쉬운 뜻을 밝혔습니다.
김 전 위원장은 생중계한 기자회견에서 “김영란법은 더치페이법”, “세상에 공짜는 없다”, “국민 69.8%가 찬성해 위헌이 아니다” 등 인상적인 발언을 남겼습니다. “국회의원의 브로커화 현상을 용인할 수 있다”고 비판하는 대목이 정점이었습니다.
김 전 위원장이 국회의원들에게 민감할 수 있는 ‘브로커’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비판한 대목은 부정청탁의 예외조항입니다.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 최종안은 “누구든지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하여 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 등에게 15가지 유형의 부정청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예외조항을 7개 두고 있는데 그 중 한 대목이 김 전 위원장, 여러 언론과 국민들에게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② 아래 사항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3. 선출직 공직자·정당·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기준의 제정·개정·폐지 또는 정책·사업·제도 및 그 운영 등의 개선에 관하여 제안·건의하는 행위
선출직 공직자, 즉 국회의원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누군가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김영란 전 위원장이 2012년 제안한 ‘원안’에는 이 대목의 내용이 어떻게 나와 있을까요?
② 아래 사항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7. 선출직 공직자·정당·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을 위하여 공직자에게 법령·조례·규칙 등의 제정·개정·폐지 또는 정책·사업·제도 및 그 운영 등의 개선에 관하여 제안·건의하는 행위
원안은 국회의원이 공익적 목적으로 공직자에게 법령이나 정책 등에 대한 의견을 내거나 제안, 건의하는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원안인 7과 최종안인 3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이는 원안의 취지를 보면 파악이 가능합니다. 김영란법 원안이 부정청탁을 금지한 취지는 국회의원이 국회 상임위 활동 등 정상적이고 공식적인 업무가 아니라 지역 이익단체나 힘 있는 유권자들의 민원을 받아 압력을 행사하는 관행을 뿌리뽑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원안은 “공직자에게 법령을 위반하게 하거나 지위·권한을 남용하게 하는 등 공정한 직무수행을 저해하는 행위”를 부정청탁이라고 정의한 뒤, ‘부정한 청탁을 금지한다, 다만 몇가지 (허용되는) 예외 조항을 두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쉽게 말해, “법령을 위반하거나 지위·권한의 남용을 초래하지 않는 국회의원의 정상적인 활동은 금지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외 조항 7의 내용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3으로 바뀐 겁니다. 7과 3의 결정적인 차이는 ‘고충민원’입니다.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를 허용하느냐 마느냐입니다. 최종안은 고충민원을 허용하기로 한 것이고 원안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고충민원이란 무엇일까요?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권익위법)은 “고충민원이란 행정기관 등의 위법·부당하거나 소극적인 처분 및 불합리한 행정제도로 인하여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국민에게 불편 또는 부담을 주는 사항에 관한 민원”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최종안에서 고충민원 전달 행위를 합법으로 규정했다라는 것은, ‘공익적인 목적’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사실상 각종 이권단체들의 민원 전달을 용인한 셈이 되는 겁니다. 쉽게 말하자면, 국회의원들이 허용가능한 행위를 더 ‘친절하게’ 정해준 셈이지요. 김영란법의 애초 취지에 어긋나는 겁니다. 그래서 김 전 위원장과 많은 언론들이 “국회의원들이 자기네 특권을 지켜려 예외조항을 만들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학교에서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공익적인 목적’이란 단서 역시 “의원 활동에 대해 ‘공익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관련 기사: 의원들 ‘특권 지키기’…예외조항 만들어 빠져나가) 김영란 전 위원장의 최종안 비판에 힘이 실리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다만, 의원들의 심의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원안을 최종안으로 고친 의도가 이해되는 대목이 보이기도 합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속기록을 보면, 이 법의 대상자들인 국회의원들은 혼란스러워 합니다. ‘우리 업무가 유권자들의 민원을 전달하는 일인데 그걸 하지 못하는 거냐?’, ‘합법인지 위법인지 경계가 애매한 내용도 있을텐데 그럴 땐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을 해야하나?’,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더 강화할 것이다’ 등등입니다.
김 전 위원장은 아울러 최종안이 ‘부정청탁 개념을 15가지 유형으로 축소한 점’에 대해서도 비판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안 역시 국회 정무위원회의 법안 심사 과정에서 ’부정청탁’ 개념의 구체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참가자들이 이 비판에 공감한 결과 수정된 조항입니다. 애초 김영란법 원안은 “부청청탁이란 공직자에게 법령을 위반하게 하거나 지위·권한을 남용하게 하는 등 공정한 직무수행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정의하면서 “특정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에게 부정청탁을 해서는 안 된다”가 ‘전부’였습니다. 명확하게 처벌의 대상을 정하기 위해 “어떤 행위가 부정청탁이 되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해 5월23일 열린 정부위 법안소위에서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이 한 지적을 그대로 옮깁니다.
“자, 이게 형사처벌인데 공정하고 청렴한 직무수행이라고 하는 이런 추상적 개념으로 형사처벌을…, 그러면 검사가 ‘나는 공정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라면 기소하는 거고 판사가 원님 재판하듯이 앉아 가지고 이게 공정한가 안 한가….
도대체 공정성의 기준이 뭐냐? 죄형법정주의라는 것은, 형사처벌은 법이 명료해야 되잖아요. 그래야 판결에서의 자의성 공방이 아니라 공직자가 자기 행위의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될 것 아니에요. 내가 이 행위를 하면, 도둑질을 하면 처벌받는다는 걸 알면서도 도둑질을 하는 거예요.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한 거고, 살인을 하면. 그런 거예요.
그러면 내가 이 행위를 하는 게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국민이 사전에 예측할 수 있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공정한’이라고 얘기를 하면 이게 도대체, ‘내가 보기에는 공정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에요? 그리고 판사는 ‘네가 보기에는 공정할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불공정해’, 이래 가지고야 승복이 되겠냐는 말이지요.”
김 의원의 이런 지적에 많은 의원이 동의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에 이른 겁니다. 물론 김 전 위원장을 비롯해 이 같은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법령을 위반하게 하거나 지위·권한을 남용하게 하는 등 공정한 직무수행을 저해하는 행위” 정도면 충분히 구체성이 확보되고 무엇이 위법인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겁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