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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의원들 ‘특권 지키기’…예외조항 만들어 빠져나가

등록 2015-03-03 17:46수정 2015-03-11 10:51

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의원들의 표결 결과가 전광판에 표시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의원들의 표결 결과가 전광판에 표시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되짚어본 ‘김영란법’ 심의 과정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안)은 여야가 의견을 모은 합의안으로, 1년7개월 전 국민권익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정부안에서 달라진 부분이 적지 않다. 두 법안 사이 바뀐 내용은 대부분 국회의원의 직무와 연관성이 높아, 의원들이 법안 심사·의결 과정에서 자신들의 특권만 지나치게 보호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013년 8월5일 국회에 넘어온 ‘김영란법 정부안’은 국회의원과 같은 선출직 공무원 등이 공익 목적으로 ‘직접’ 공직자에게 의견을 제안·건의하는 행위만 ‘부정청탁 예외 사유’로 규정했다. 국회의원이 국회 상임위 활동 등 공식 업무가 아니라, 지역 유권자나 이익단체의 각종 ‘민원’을 받아 정부에 압력을 행사하는 관행을 뿌리뽑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는 ‘선출직 공무원 등이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도 부정청탁 예외로 집어넣었다. 오경식 강릉대 법학과 교수는 “(김영란법의 취지 중 하나가) 과거처럼 이익단체가 국회의원 로비를 통해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례를 막자는 것인데, 국회의원들이 이를 쏙 빠져나갔다”며 “(부정청탁 예외 사유에는) ‘공익 목적’이라는 단서 조항을 달았지만 의원 활동에 대해 ‘공익 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입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공직자에게 제3자 민원 전달’
‘불허’에서 ‘허용’으로 바꿔
‘가족’ 범위 배우자로 축소도
유예기간 1년6개월로 확장
내년 총선 고려한 결정 ‘뒷말’

김영란법 적용 대상 가족 범위가 애초 ‘배우자, 자녀,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하는 며느리·사위 등’에서 ‘배우자’로 대폭 축소된 것도 의원들이 정부안에 손을 댄 결과다. 특히 이 부분은 여당이 주도했다. 새누리당은 공직자가 금품을 받은 가족을 신고해야 하는 규정을 ‘가족해체법’, ‘가족관계 파괴법’이라고 주장하면서 규제 대상을 ‘배우자’로 국한시켰다. 이에 따라 김영란법이 시행되더라도 금품을 받거나 권력형 비리에 연루됐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상득씨의 사례는 제재 대상에서 빠진다. 도지사 시절 동생이 로비 자금을 받아 문제가 됐던 이완구 총리도 마찬가지다.

3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통과된 뒤 이상민 위원장(가운데)이  홍일표 새누리당 간사(왼쪽),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간사(오른쪽)의 손을 잡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3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통과된 뒤 이상민 위원장(가운데)이 홍일표 새누리당 간사(왼쪽),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간사(오른쪽)의 손을 잡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국회는 ‘공직사회 부패 근절’이라는 법안 실효성을 약화시키면서 대신 이 법안의 규제 대상은 대폭 늘렸다. 공직자 외에 언론사 종사자와 사립학교 교원 등 민간인을 추가시킨 것이다. 이때 민간언론사는 공영방송인 <한국방송>(KBS)과 업무가 비슷하고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는 이유 등으로 포함됐다. 이러한 심사 과정에서 공직과 민간의 구분, 민간영역에 대한 과도한 침해 등에 대한 진지한 검토는 없었다. 이에 대해선 새누리당 안에서도 비판이 나온다. 검사 출신인 권성동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이 법의 취지는 공공부문에서 부정행위를 하지 말라는 건데, (규제가) 민간영역까지 넘어간 부분이 있다”며 “의사나 변호사 등의 업무도 기자나 사립학교 교원처럼 공공성을 띠지 않느냐”고 했다.

‘사립학교 이사장·이사’가 이날 본회의 직전 법사위에서 법 적용 대상으로 뒤늦게 들어간 것도 이 법안이 졸속 처리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앞선 정무위 논의 과정에서 ‘사학 비리’로 자주 구설에 오르는 사립학교 이사장·이사가 교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법 규율 대상에서 누락된 사실이 밝혀졌지만 정무위가 ‘법사위 때 넣자’며 막판까지 미뤄놓은 결과다. 더군다나 새누리당은 이날 법사위에서도 “사학재단 이사진을 법 제정 뒤에 넣자”고 주장했다.

김영란법의 유예기간이 애초 1년에서 1년6개월로 늘어난 것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여야 합의 과정에서 유예기간이 6개월 더 늘어나면서 시행 시점이 내년 4월 총선 뒤인 9월로 밀려 현행 19대 의원들은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게 됐다. 또 김영란법 시행이 총선에 미칠 파장도 원천배제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대해 유승민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여야 협상 과정에서) 시행은 1년 뒤, 처벌은 2년 뒤에 하자는 안이 있었지만 그것을 합쳐서 1년6개월로 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의원은 “(지도부가) ‘내년 총선 때 표를 잃을 수 있다’며 김영란법 처리를 서둘렀는데, (이제 와서) 시행 시기를 내년 총선 이후로 늦춘 건 너무 속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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