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의장을 맡은 심상정 대표가 첫번째 안건으로 ‘강령 개정안 심의·의결의 건’을 처리하자 참관하던 당권파 쪽 당원과 중앙위원들이 단상을 점거하려 무대로 뛰어오르고 있다. 고양/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심층 리포트] 진보정당 15년, 위기와 기회
① 과거 - 통합과 분열
① 과거 - 통합과 분열
오는 30일은 옛 민주노동당 창당 15주년이다. 민주노동당은 의회 진출 첫 진보정당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고질적 정파 갈등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도 진보정당은 대안세력으로 크지 못했다.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까지 내렸다. 하지만 위기에 맞서 진보정당 혁신 움직임이 다시 일어난다. 진보정당의 과거, 현재, 미래를 짚어본다.
진보정당, 현실정치 참여 꿈 이뤘지만
정파갈등·분열에 사실상 몰락 위기
처음보다 위상 더 쪼그라들어 위기다. 낡은 것은 사멸하는데, 새것의 출현은 기약 없이 지체된다. 위기에 몰린 것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공중분해된 통합진보당만이 아니다. 이들과 다른 길을 걸어온 정의당·노동당도 존망을 우려하는 처지이긴 마찬가지다. 당원이 줄고 활동가는 떠나고 표를 준 유권자는 지지를 철회했다. ‘수권 정당’이 되겠다던 원대한 포부는 가뭇없고, 옛 민주노동당 시절보다 약화된 당의 위상은 선거 때마다 ‘야권 분열’ 논란에 당력을 소진하게 만든다. 남아 있는 3개 진보정당(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가운데 2014년 지방선거에서 가장 많은 정당득표를 한 정의당의 득표율은 3.6%였다. 이 득표율로 2016년 총선에 나선다면 비례대표 2석을 확보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야권연대 무용론’이 힘을 얻는 새정치민주연합 분위기를 고려하면 현재 1석(심상정·경기 덕양갑)인 지역구의 운명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진보정당이 13석을 확보했던 3년 전 총선 당시에 견준다면 ‘몰락’에 가깝다. 진보정당 지지자들 역시 길을 잃었다. 18대 대통령 선거 한해 전인 2011년, 16만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진보정당의 당원 수는 통합진보당 내분과 분당을 겪으며 지난해 12만명 선까지 감소했다. 3년 동안 당원 4명 중 1명꼴로 당적을 버린 셈이다. 여기에 헌재의 정당해산 결정으로 9만명에 육박하던 통합진보당원들은 하루아침에 ‘정치적 미아’가 됐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전문가들은 2004년 4월 민주노동당이 10석을 확보하며 원내에 진출한 그 순간, 지금의 위기가 잉태됐다고 말한다. 당시 정치권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덕에 진보정당은 오랜 숙원이던 ‘원내 진출’의 꿈을 이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권력이 된 당권과 공직 추천권을 두고, 이른바 ‘자주파’와 ‘평등파’로 대표되는 진보정당 내부 정파는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성공의 역설’이었다. 자주파·평등파의 정파 갈등, 자주파의 시대착오적 북한 인식, 빈곤한 정책생산 능력, 조직화된 노동세력의 약화라는 내부 요인에 보수정당의 연속 집권, 남북관계 악화, 신자유주의 만연에 따른 정치적 보수화 경향 같은 외부 요인이 더해졌다. 장석준 전 노동당 부대표는 “여야 구도가 1997년 정권교체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고, 범민주당 세력이 진보진영의 비전과 정책을 상당 부분 흡수하면서 진보정당의 존립 기반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야권연대론’은 이런 위기 상황에 나온 ‘긴급 처방전’이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거셌던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제1야당과의 선거연대는 자주파 진보정당(잔류 민주노동당)에 재기의 발판을 제공했고, ‘정권교체론’ 기조 아래 치러진 2012년 총선에선 민노당의 후신인 통합진보당에 사상 최대인 13개의 의석을 선사했다. 하지만 2004년의 기회가 위기로 작용했듯, 2012년의 기회는 더 큰 위기로 이어졌다. 비례대표 배분을 둘러싸고 ‘정파 갈등’과 ‘패권주의’의 악습이 되살아나면서 폭력 사태와 분당으로 치달았고, 때마침 불거진 ‘경기동부연합’의 비밀회합(RO) 사건은 회복 불능의 치명상을 안겼다.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의 오류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는 전문가와 학자들은 거의 없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같은 중도 성향 연구자들도 “중도-보수 양당 체제로는 국민 의사를 고루 반영하는 데 한계가 뚜렷한 만큼, 진보정치의 기능 회복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혜택이 사회 구성원 전체에 고루 분배되는 국가들에는 대체로 진보(좌파) 정당이 유력한 정치집단으로 존재한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는 “사회경제적 갈등을 정치적 경쟁으로 바꿔 국가 정책에 담아내려면 계층 이익을 대변하는 힘있는 정당들이 일정 숫자 이상 활동해야 한다”며 “양당 구도보다 다당 구도가 정치사회적 약자와 소수 이익을 국가 정책에 반영하는 데 유리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진보정당의 위기를 단기간에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진보적 정책·의제들에 대한 정치적 수요와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세가 여전하다는 점은 진보정치 회생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게 한다. <한겨레>가 올해 초 국민 1000명을 상대로 벌인 ‘가치 선호도 조사’를 보면, ‘사회보장’(47.3%)과 ‘평등’(28%)을 최우선시하는 응답이 10년 전에 견줘 각각 10.0%포인트, 5.5%포인트 늘었다. ‘경제적 풍요’를 꼽은 응답은 같은 기간 31.9%에서 14.8%로 ‘반토막’ 났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진보의 핵심 가치인 복지·분배·형평에 대한 선호가 꾸준한 증가 추세에 있다는 게 최근 사회조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고 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도 “역대 선거의 정당득표율 추이를 보면 우리 사회에는 10~20%의 고정된 진보정당 지지층이 상존한다”며 “미국·일본처럼 ‘진보정당 없는 민주주의’로 갈지, 유럽 복지국가들처럼 ‘진보정당 있는 민주주의’로 갈지는 진보정당 구성원들의 역량과 노력에 달렸다”고 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정파갈등·분열에 사실상 몰락 위기
처음보다 위상 더 쪼그라들어 위기다. 낡은 것은 사멸하는데, 새것의 출현은 기약 없이 지체된다. 위기에 몰린 것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공중분해된 통합진보당만이 아니다. 이들과 다른 길을 걸어온 정의당·노동당도 존망을 우려하는 처지이긴 마찬가지다. 당원이 줄고 활동가는 떠나고 표를 준 유권자는 지지를 철회했다. ‘수권 정당’이 되겠다던 원대한 포부는 가뭇없고, 옛 민주노동당 시절보다 약화된 당의 위상은 선거 때마다 ‘야권 분열’ 논란에 당력을 소진하게 만든다. 남아 있는 3개 진보정당(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가운데 2014년 지방선거에서 가장 많은 정당득표를 한 정의당의 득표율은 3.6%였다. 이 득표율로 2016년 총선에 나선다면 비례대표 2석을 확보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야권연대 무용론’이 힘을 얻는 새정치민주연합 분위기를 고려하면 현재 1석(심상정·경기 덕양갑)인 지역구의 운명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진보정당이 13석을 확보했던 3년 전 총선 당시에 견준다면 ‘몰락’에 가깝다. 진보정당 지지자들 역시 길을 잃었다. 18대 대통령 선거 한해 전인 2011년, 16만명으로 정점을 찍었던 진보정당의 당원 수는 통합진보당 내분과 분당을 겪으며 지난해 12만명 선까지 감소했다. 3년 동안 당원 4명 중 1명꼴로 당적을 버린 셈이다. 여기에 헌재의 정당해산 결정으로 9만명에 육박하던 통합진보당원들은 하루아침에 ‘정치적 미아’가 됐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전문가들은 2004년 4월 민주노동당이 10석을 확보하며 원내에 진출한 그 순간, 지금의 위기가 잉태됐다고 말한다. 당시 정치권이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덕에 진보정당은 오랜 숙원이던 ‘원내 진출’의 꿈을 이를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권력이 된 당권과 공직 추천권을 두고, 이른바 ‘자주파’와 ‘평등파’로 대표되는 진보정당 내부 정파는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성공의 역설’이었다. 자주파·평등파의 정파 갈등, 자주파의 시대착오적 북한 인식, 빈곤한 정책생산 능력, 조직화된 노동세력의 약화라는 내부 요인에 보수정당의 연속 집권, 남북관계 악화, 신자유주의 만연에 따른 정치적 보수화 경향 같은 외부 요인이 더해졌다. 장석준 전 노동당 부대표는 “여야 구도가 1997년 정권교체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고, 범민주당 세력이 진보진영의 비전과 정책을 상당 부분 흡수하면서 진보정당의 존립 기반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야권연대론’은 이런 위기 상황에 나온 ‘긴급 처방전’이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거셌던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제1야당과의 선거연대는 자주파 진보정당(잔류 민주노동당)에 재기의 발판을 제공했고, ‘정권교체론’ 기조 아래 치러진 2012년 총선에선 민노당의 후신인 통합진보당에 사상 최대인 13개의 의석을 선사했다. 하지만 2004년의 기회가 위기로 작용했듯, 2012년의 기회는 더 큰 위기로 이어졌다. 비례대표 배분을 둘러싸고 ‘정파 갈등’과 ‘패권주의’의 악습이 되살아나면서 폭력 사태와 분당으로 치달았고, 때마침 불거진 ‘경기동부연합’의 비밀회합(RO) 사건은 회복 불능의 치명상을 안겼다.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의 오류와 한계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는 전문가와 학자들은 거의 없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 같은 중도 성향 연구자들도 “중도-보수 양당 체제로는 국민 의사를 고루 반영하는 데 한계가 뚜렷한 만큼, 진보정치의 기능 회복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혜택이 사회 구성원 전체에 고루 분배되는 국가들에는 대체로 진보(좌파) 정당이 유력한 정치집단으로 존재한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는 “사회경제적 갈등을 정치적 경쟁으로 바꿔 국가 정책에 담아내려면 계층 이익을 대변하는 힘있는 정당들이 일정 숫자 이상 활동해야 한다”며 “양당 구도보다 다당 구도가 정치사회적 약자와 소수 이익을 국가 정책에 반영하는 데 유리한 게 사실”이라고 했다. 진보정당의 위기를 단기간에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진보적 정책·의제들에 대한 정치적 수요와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세가 여전하다는 점은 진보정치 회생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게 한다. <한겨레>가 올해 초 국민 1000명을 상대로 벌인 ‘가치 선호도 조사’를 보면, ‘사회보장’(47.3%)과 ‘평등’(28%)을 최우선시하는 응답이 10년 전에 견줘 각각 10.0%포인트, 5.5%포인트 늘었다. ‘경제적 풍요’를 꼽은 응답은 같은 기간 31.9%에서 14.8%로 ‘반토막’ 났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진보의 핵심 가치인 복지·분배·형평에 대한 선호가 꾸준한 증가 추세에 있다는 게 최근 사회조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다”고 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도 “역대 선거의 정당득표율 추이를 보면 우리 사회에는 10~20%의 고정된 진보정당 지지층이 상존한다”며 “미국·일본처럼 ‘진보정당 없는 민주주의’로 갈지, 유럽 복지국가들처럼 ‘진보정당 있는 민주주의’로 갈지는 진보정당 구성원들의 역량과 노력에 달렸다”고 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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