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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인사가 망사, 딸이 아버지보다 한 수 위

등록 2013-02-22 20:21수정 2013-02-23 11:18

박정희의 첫번째 총리인 최두선이 대화와 포용의 ‘책임총리’였다면, 마지막 총리 최규하는 그저 대통령에게 묵묵히 충성을 바치는 ‘대독총리’였다. 박근혜가 발탁한 정홍원은 최두선이 아닌 최규하에 가깝다. 1975년 12월19일 박정희에게 국무총리 서리 임명장을 받는 최규하. <한겨레> 자료사진
박정희의 첫번째 총리인 최두선이 대화와 포용의 ‘책임총리’였다면, 마지막 총리 최규하는 그저 대통령에게 묵묵히 충성을 바치는 ‘대독총리’였다. 박근혜가 발탁한 정홍원은 최두선이 아닌 최규하에 가깝다. 1975년 12월19일 박정희에게 국무총리 서리 임명장을 받는 최규하. <한겨레> 자료사진
[토요판] 한홍구의 유신과 오늘 <30>박정희의 용인술, 박근혜의 용인술
아버지에게 없고 딸에게만
있는 것은 ‘인의 장막’
박정희는 측근을 데리고 놀았지
그들에게 휘둘린 적은 없었다
딸한테만 없는 것은 대화
아버지는 초기에 재떨이 던지고
부들부들 떨지언정 얘길 들었다 

아버지 사람들은 어쨌든
능력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딸의 사람들은 자기 동네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니 어쩌랴
이만섭과 윤창중을 비교해보라
김정렴과 허태열을 비교해보라

5년 전 이명박 정부 출범을 앞두고 ‘아륀지’ 파동이 일었을 때는 낄낄대는 즐거움이라도 있었다. 인사가 만사라는데 국민들은 국무총리 후보자부터 낙마하는 모습을 보며 박근혜 정부의 ‘쪽대본’ 인사 발표를 불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박근혜의 인사를 둘러싼 수구언론의 논조를 가만히 살펴봐도, 여러 가지 계산에 따른 초장의 길들이기 차원이 아니라 근원적인 불안감이 깔려 있는 듯하다. 2012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후보 박근혜에 대한 검증을 완전히 손놓아버렸던 수구 언론은 당선인 박근혜에게 동지도 없고 참모도 없고 직언도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새삼스럽게 발견했다. 2007년도 한나라당 내부의 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박근혜 후보의 자질과 주변 문제를 둘러싸고 친이명박계 의원들이 온갖 이야기를 다 끄집어냈다. 이와는 달리 2012년 대선에서는 기자들이 그때의 흥미로운 자료들조차 다 덮어버렸던 모양이다. 박근혜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 박정희의 딸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박근혜의 연설을 둘러싼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많은 언론에서는 박근혜의 용인술, 인사 스타일과 박정희의 용인술을 비교하는 글들을 쏟아내고 있다.

육참총장 출신 경호실장의 격상과 차지철

박근혜는 남들 하기 힘든 일을 해냈다. 자신의 지지율을 선거 때 득표율보다 아래로 끌어내린 것이다. 발단은 당선인으로서 행한 첫 인사였다. 정말 그렇게 사람이 없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런 사람을 대변인 자리에 앉혔을 때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것일까, 아니면 남들 보라고 일부러 행한 것이었을까? 막말의 화신 윤창중에 이어 지역감정 조장에, “‘섹스 프리’하고 ‘카지노 프리’한 금기 없는 특수 지역” 발언에, 부동산 투기하고 땅값 오르면 좋은 것 아니냐는 과감한 발언에 박사논문 표절까지 한 허태열을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하는 것을 보면 박근혜의 막말 발탁은 철학적 신념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김용준에 이어 정홍원으로 이어진 국무총리 인선은 박근혜가 호언했던 ‘책임 총리’를 구한 것이 아니라 ‘대독 총리’를 찾은 것이다. 박정희의 첫번째 총리는 최두선이었다. 앞서(2012년 5월5일치) 살펴본 것처럼 1963년 대통령 선거 당시 동아일보와 박정희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선거 막바지에 동아일보가 박정희의 ‘빨갱이’ 전력과 여순사건으로 박정희가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사실을 폭로하는 호외를 뿌렸기 때문이었다. 선거 사흘 전 동아일보 정경부장과 인터뷰를 하던 박정희는 부르르 떨다가 재떨이를 집어 던지고 나갈 만큼 동아일보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런 박정희가 바로 몇 달 전까지 햇수로 17년간이나 동아일보 사장을 지낸 최두선을 직접 집으로 찾아가 설득하여 총리로 모신 것이다. 박근혜가 찾고자 했던 총리의 모델은 박정희의 첫번째 총리 최두선이 아니라 마지막 총리 최규하였다. 김용준도, 정홍원도 야당에 대한 대화와 포용의 상징인 최두선이 아니라 총리를 최고의 영광으로 여기고 대통령에게 묵묵히 충성을 다 바칠 최규하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대독 총리’를 찾을 거면 애초부터 발음 좋고 외모 되는 아나운서 출신에서 고르는 것이 나을 뻔했다.

대통령 한 사람에 대한 경호 책임을 지는 경호실장을 국민 전체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청장(차관급)보다 높은 장관급으로 격상한 것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이 많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따로따로 저격당한 끔찍한 기억과 자신도 테러를 당했던 생생한 악몽을 겪은 당선인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야박하게 경호실장 직급 격상을 문제 삼고 싶지는 않다. 다만 국민들은 경호실장이라는 자리에 악몽을 갖고 있다. 경호실장 차지철의 전횡과 발호는 박정희의 죽음을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공수부대 대위 출신인 차지철은 낮은 계급 때문에 군사정권의 다른 군 출신 요인들에 대해 심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차지철은 경호실장의 위상을 대장급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박정희를 졸라 경호실 차장과 차장보를 현역 중장과 소장으로 보임했다. 한때 전두환이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노태우가 행정차장보로 근무하기도 했다. 전두환·노태우 시절에도 경호실장에는 장세동, 안현태, 이현우 등 실력자들이 임명되었지만 육군참모총장 출신이 임명되기는 박흥렬이 처음이다. 이건 아니다. 5대 장성의 하나인 병장 출신인 나도 육군참모총장 출신이 경호실장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에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현역들은 오죽했을까. 군인은 명예를 먹고 산다는 말은 말짱 황이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이라면 국방부 장관이면 모를까, 다른 자리를 탐해서는 안 된다.

박근혜는 국방부 장관에는 외국 무기상인의 고문질을 하던 김병관이라는 자를 지명했다. 요즘 개콘에서 유행하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가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황교안도 여러모로 문제투성이다. 공직과 로펌과 공직의 회전문은 넌더리난다. 공직에 있던 사람이 돈과 명예를 다 가지려 해서는 안 된다. 국가보안법은 절대화하고 세속법과 교회법이 충돌할 때 교회법이 우위여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자가, 삼성 엑스파일 수사 깔아뭉개 떡값검사는 보호해주고, 떡검 명단 올렸다가 의원직을 빼앗긴 노회찬에게는 경기고 동창이라고 후원금 내는 일관성 없는 자가, 한 나라의 법 집행을 책임질 수 있는가? 민정수석에 임명된 곽상도는 유서대필 사건의 수사 검사였다. 유서대필 사건이란 검찰이 개떼가 되어 노태우 정권의 보위를 위해 진실과 무고한 시민을 물어뜯은 최악의 인권침해 사건이다. 곽상도의 임명은 박근혜의 과거사 사죄가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을 보여준다.

‘용인술의 천재 박정희’는 유신 전 얘기

김정일, 김정은의 김일성 따라 하기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의 권력운용 방식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따라 하고 있다. 기질적으로 아버지를 닮은데다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것이 그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지만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박근혜의 ‘아빠 따라 하기’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박근혜는 박정희가 아니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인 것처럼 박정희는 아무리 몇 번의 대통령 선거로 세탁했다고 한들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장악한 독재자였다.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한 자의 권력운용 방식을 따라 하는 것은 참으로 바보 같은 짓이다.

또 지금은 21세기이지 유신시대가 아니다. 박정희의 가치관과 권력운용 방식은 지금부터 40년 전에도 시대착오적이었다. 박근혜가 흉내내는 박정희의 용인술이란 박정희가 민주주의의 원칙과 룰을 처음부터 무시한 토대 위에서야 가능한 것이었다. 박근혜는 어쩔 수 없이 민주주의의 원칙과 틀 속에서 움직여야 한다. 박정희의 권력운용 방식은 죽을 때까지 권력을 움켜쥐고 있으려는 자의 방식인데, 박근혜는 5년이라는 임기가 정해져 있으니 그에 맞추어 자신만의 권력운용 방식을 만들어 내야 한다. 박근혜가 임기 중에 4년 중임제 개헌을 한 뒤 형식적으로 물러나고 허수아비 대통령을 내세워 8년간 수렴청정을 한다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다면 모를까, 박정희의 종신형 권력운용 방식을 모델로 했다가는 5년 만기를 채우지도 못하고 부도가 나기 쉽다.

많은 언론에서 박정희의 용인술을 이런저런 각도에서 다뤘다. 대개의 경우 한 가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박정희는 18년이라는 기간 동안 집권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의 박정희 따라 하기의 가장 큰 문제는 이미(2012년 12월7일치) 지적한 바와 같이, 박근혜가 보고 배운 것은 18년 동안 집권한 박정희가 최악의 상태일 때였다는 점이다. 박정희가 ‘용인술의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은 유신 전의 일이었을 뿐이다. 10·26 사건이란 절대권력자가 자신의 오른팔, 왼팔과 함께 술 먹다가 오른팔이 머리와 왼팔에 총을 쏜 사건이다. 박정희는 용인술의 천재가 아니라 잘못된 용인술로 인해, 자신의 용인술의 파탄으로 인해 가장 믿었던 부하에게 자신의 목숨을 빼앗겨야 했던 비극을 자초한 자였다.

박정희나 박근혜나 다 꼼꼼히 수첩에 사람을 메모해 두었다가 요직에 임명한다 하지만, 박정희와 박근혜가 처한 상황은 너무나 달랐다. 인사 문제에 관한 한 5·16 직후 박정희가 처한 상황은 지금의 박근혜에 비해 훨씬 유리했다. 지금이야 4·19와 5·16을 완전히 대립되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그때는 꼭 그렇지 않았다. 50년 세월이 흐르다 보니 4·19의 계승자와 5·16의 계승자 사이에 민주 대 반민주 또는 민주화 대 산업화라는 확연한 대립구도가 생겨버렸다. 당시에는 4·19나 5·16이나 낡아빠진 이승만 체제를 뒤엎고 무언가 새로운 시대를 열어보려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공유하고 있었다. 이것은 박정희에게 행운이었다. 비록 박정희가 민주주의를 짓밟은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해도, 50년 전의 상당수 대중들은 엄격한 민주주의의 잣대를 들이밀기보다는 혹시 그가 터키의 케말 파샤나 이집트의 나세르의 집권 초기와 같은 역할을 해주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박정희는 이런 기대를 철저히 배신했지만, 집권 초기 그가 동원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의 토대는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되게 단단했던 것이다. 그때는 아직 진보와 보수는 물론이고, 민주와 독재조차 제대로 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인재풀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었다. 반면 박근혜는 박정희가 씨 뿌리고 빨아먹은 독재와 양극화와 지역대립이 초래한 첨예한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물려받았기에 대한민국이 가진 인재의 상당 부분을 애초부터 활용하기 어려웠다.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는 정통성이 없었기 때문에 권모술수와 용인술과 정보정치와 공작정치로 권력을 유지했다. 선거로 선출되어 최소한 절차적 정통성에서 아무런 하자가 없는 박근혜는 박정희의 용인술 따위를 따라 배울 필요가 없다. 따라 배울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따라 배우려 해도 배울 수 없다. 박정희에게는 임기 같은 것이 없었지만, 박근혜에게는 임기가 있다. 박정희에게는 청문회 같은 거추장스러운 절차를 따를 이유가 없었지만 박근혜는 그 절차를 지켜야 한다.

가장 나쁜 모습의 ‘아버지상’을 지워라

박정희에게 없고 박근혜에게 있는 것으로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인의 장막’을 들 수 있다. 박정희는 아랫사람들이나 측근들을 데리고 놀았지 그들에게 휘둘린 적은 없었다. 박정희의 비서실장 김정렴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던 시절 자신의 회고록에 남긴 일화는 충격적이다. 어느 날 ‘큰따님’께서 자신의 집무실로 찾아와 몇몇 기업의 이름을 거론하며 최태민의 구국선교단을 지원하고 있는 기업이니 현안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깜짝 놀란 김정렴은 박정희에게 바로 달려가 ‘큰따님’이 자금이 필요하면 대통령의 정치자금을 관리해온 자신이 자금을 추가로 마련할 터이니 대통령이 ‘큰따님’에게 직접 지원하고 ‘큰따님’이 금전 문제에 다시는 개입하는 일이 없도록 원천봉쇄해 달라고 건의했다고 한다. 이런 개입은 사실 법이 제대로 서 있다면 형사처벌을 받아 마땅한 사안이었다. 반면 과거 박근혜는 육영재단과 영남대에서 모두 측근들의 부정부패 때문에 이사장이나 이사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육영재단과 영남대와 같이 국가기구와는 비교할 수 없이 작은 기관의 운영에서도 측근들이 박근혜의 눈을 피해 엄청나게 해먹었던 것이다. 불통의 리더십만을 보여준 박근혜가 과연 측근들의 호가호위를 억누르고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전횡을 일삼은 그 측근들의 대부분이 예나 지금이나 최태민이라는 근본을 알 수 없는 목사와 연결된 사람들이라는 점은 깊은 우려를 낳게 한다.

반대로 박정희에게는 있고, 박근혜에게는 없는 것도 많다. 박정희의 용인술이 먹혀들던 집권 초기에는 재떨이 던지고 부들부들 떨지언정 대화와 토론이 있었다. 박근혜는 불통만 있을 뿐 대화와 토론이 없다. 박정희는 자신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듣기 싫더라도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을 등용해야 한다는 정치적 감각이 있었다. 박근혜에게는 그런 감각이 없다. 박정희의 사람들은 도덕성 문제는 별개로 치더라도 능력은 확실히 있었다. 박근혜의 사람들은 자기 동네 내부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가 많다. 박정희는 자신이 직접 장악한 군부의 경우, 국방장관이나 육군참모총장에 꼭 유능한 사람을 쓰진 않더라도, 다른 분야에서는 대개 에이스급을 골라 썼다. 같은 기자 출신이라도 박근혜의 대변인 윤창중과 박정희의 대변인 임방현, 윤주영, 김성진 등이나 이만섭, 최영철이 같은 체급은 아니지 않은가. 박근혜가 장고 끝에 비서실장으로 선택한 허태열에게서 이후락 같은 지략이나 김정렴 같은 묵직한 믿음을 볼 수 없지 않은가. 박근혜가 선택한 경제장관들 중에서 김학렬, 장기영, 김정렴 같은 사람은 없지 않은가.

독재자 박정희는 손에 쥔 카드가 많았기에 사람을 잘라도 자기가 자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자원을 동원할 수 있었다. 박정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반혁명이라는 모함을 씌워 감옥에 보냈고,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토사구팽 시켰는가. 김형욱 같은 극단적인 사례를 제외하고는 박정희에게 버림받은 뒤 끝내 박정희와 대립한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다시 불러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자신의 만주군관학교 선배이자 5·16 군사반란의 동지인 김동하를 반혁명으로 잡아넣긴 했어도, 곧 풀어주고 정말 물이 좋다는 마사회장 자리에 오랫동안 앉혀 놓았다. 박정희는 1971년 이른바 10·2 항명파동의 주역인 김성곤을 중앙정보부로 잡아다가 족집게로 콧수염을 뽑는 모욕을 주었지만 그의 소유인 쌍용그룹을 건드리지는 않았다.

나는 박근혜의 당선을 결코 바라지 않았다. 그래도 기왕에 대통령이 된 이상 이명박처럼 국민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대통령 박근혜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21세기 지도자답게 일본 군국주의의 모델을 답습한 박정희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박정희는 박근혜의 모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박근혜가 유신정권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며 보고 배운 박정희는 누누이 강조한 바와 같이 가장 나쁜 모습의 박정희, 권력의 동맥경화증이 심하게 악화된 박정희였다. 박근혜가 따라 하는 박정희의 용인술은 결국 그의 리더십의 총체적 붕괴뿐 아니라 그 자신의 죽음까지 가져온 글자 그대로 치명적인 것이었다. 똑같이 수첩을 들고 있어도 지금까지의 인사로 볼 때 박근혜의 사람 보는 눈은 박정희의 사람 보는 눈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박정희는 정상적인 정당과 정부의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정보기관과 경호실에 기대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부디 박근혜는 검증된 바 없는 측근들에 의존하지 말고 내가 참 싫어하는 당이지만 새누리당과라도 협의하고 토론하여 불통의 리더십을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 한홍구의 유신과 오늘 연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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